노무현 심판론이 대선판세를 결정했다. 노무현이 싫다며 묻지마 표를 이명박 후보에게 몰아줬던 것이다. 그래서 대운하에 대한 점증이 실종된 채 선거가 치뤄졌다. 이번 총선에서는 벼락공천으로 인물검증도 정책검증도 증발해 버렸다. 그 사이 한나라당이 공약에서 대운하를 뺐다. 모든 정당이 나서 선거쟁점화를 통해 국민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

대운하는 한반도의 물줄기를 바꾸고 뒤집어 놓는 국가적 대역사(大役事)이다.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경부운하 540~558km, 영산강을 이용해 광주와 목포를 연결하는 호남운하 84km, 금강을 통해 대전과 군산을 잇는 충청운하 140km를 연차적으로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토목공사는 기술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 한겨레 3월31일자 1면.
하지만 환경재앙을 걱정하는 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거대한 국토훼손에서 파생할 생태계 파괴, 식수원 오염은 인간의 힘으로는 알기 어렵다. 문화재 손실 또한 크다. 배를 다니게 하려면 갑문을 만들어 물을 가두어야 한다. 갑문과 갑문 사이에는 커다란 호수가 생긴다. 여기서 일어나는 생태계 변화도 모를 일이다. 집중폭우에 따른 홍수사태는 가공할 수 있다. 물을 방류하더라도 상류에서 그만한 물이 몰려올테니 말이다.

경제적 가치도 의문이다. 운하건설의 첫째 목적은 물자수송이다. 수출물자라면 공장에서 화물컨테이너를 트레일러에 적재하고 항구 터미널에 가서 하역하고 선박에 선적하면 끝난다. 그런데 운하를 이용하면 공장에서 트레일러에 실은 컨테이너를 운하 터미널에서 내리고 다시 배에 싣고 가서 또 배에서 내린다. 여기서 다시 트레일러에 싣고 항구에 가서 내리고 선박에 싣는다.

이 때 컨테이너를 옮겨 싣고(lift-on), 내리는(lift-off)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고 배에 옮겨 싣는 환적(transship)비용도 발생한다. 공장에서 곧장 고속도로를 타고 항구로 가는 비용보다 크게 싸지 않을 것이다. 육로를 이용하면 서울서 부산까지 7시간이면 충분하다. 철도수송도 10시간이면 된다. 운하는 50시간이나 든다. 시간은 돈이다. 비용이 다소 싸더라도 시간낭비가 5~7배나 크다.

한나라당에서는 보완해서 추진한다, 국민투표에 묻자, 안 할 수도 있다며 입마다 다른 말을 늘어놓는다. 운하가 총선에서는 악재라는 사실을 안다는 소리다. 그 사이 이명박 정부가 내년 4월 착공한다는 방침 아래 국토해양부에 ‘대운하 추진기획단’을 비밀리에 가동하는 사실이 언론보도로 드러났다. 특별법을 만들어 사업타당성 조사, 환경영향 평가를 간소화하겠다고 한다. 국민여론과 상관없이 일방추진-졸속추진을 불사한다는 뜻이다.

반대여론이 높다.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가 성공한다고 믿는다면 오판이다. 앞뒤에서 하는 일이 다르면 이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국가는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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