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 대부분 언론은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전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언론이 현 시점에서 꼭 보도해야 할 사안들이 방송에서, 지면에서 사라졌다. 특히, 방송 뉴스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약 2시간 동안 쟁쟁하게 펼쳐진 특집 메인뉴스 그 어느 곳에서도 디도스 사건 청와대 외압 의혹, 이상득 여비서 계좌 거액 발견, BBK 등 정권의 ‘핵심’과 연결돼 있는 중요 사안들은 찾을 수 없었다.

▲ MBC, KBS, SBS 사옥 ⓒ미디어스
◇ 디도스 사건 청와대 외압 의혹 = 지난 주말, 시사주간지인 <한겨레21>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에 대한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가 외압을 행사해 사건의 중요 사실을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사정 당국의 고위 관계자 발언을 통해 “청와대는 특히 청와대 행정관 박아무개(38)씨가 선거 전날 저녁 디도스 공격 관련자들과 술자리를 함께 한 사실, 그리고 한나라당 관계자들과 해커들 사이에 대가성 돈거래가 있었던 사실을 공개하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났다”고도 전했다.

이 밖에도,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 디도스 공격 사건 수사 발표 이전에 조현오 경찰청장에게 두 차례나 전화를 건 데 이어 정진영 민정수석과도 사건 내용에 대해 상의를 한 정황이 나왔다. 또, 지난 2일 디도스 공격과 관련한 경찰 수사 발표에 대해 청와대 쪽에서 늦추려 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경찰 수사에 개입해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주장을 뒷받침 하는 이 같은 정황은 방송 뉴스가 꼭 취재하고, 보도해야 할 사안이었지만 지난 18일 하루 KBS·MBC·SBS 메인 뉴스에 등장한 이후 김정일 사망 소식에 가려졌다. 유일하게 19일 방송3사 가운데 SBS만이 리포트를 통해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사태에 대한 청와대 개입설을 놓고 정치권의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며 정치권의 ‘입’을 통해 전했을 뿐이다.

◇ 이상득 의원실 여비서 계좌에서 출처 불분명한 10억원 발견 =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심재돈)는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실의 박배수(46) 보좌관 주변 인물의 계좌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임 아무개씨 등 이상득 의원실 여비서 2명의 계좌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10억원 안팎의 현금이 입금된 사실을 19일 확인했다.

검찰은 또, 박배수 보좌관에게 건너간 돈들이 이상득 의원실 비서관과 비서의 계좌를 거쳐 다시 박 보좌관의 계좌로 들어온 사실도 확인했다. 즉, 이는 박배수씨가 청탁 명목으로 받은 수억원이 이 의원 보좌진 4명의 계좌를 통해 ‘세탁’된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박 보좌관이 받은 수억원의 돈들이 보좌진들의 계좌를 거치면서 5백만원에서 1천만원씩 소액으로 나눠진 사실을 확인했으며, 돈세탁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실 보좌진 계좌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10억원의 현금이 발견되고, 보좌관과 비서관 사이에 소액의 돈들이 수시로 입금된 사실이 드러났다. 언론이라면 충분히 의심할 법한 사안이지만,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한 채 묻혔다. 19일 SBS만이 단신으로 “서울지검 특수3부는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실 여직원 2명의 계좌에서 10억 원의 뭉칫돈을 발견해 이 가운데 출처가 불투명한 8억 원의 출처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을 뿐이다.

▲ MBC <뉴스데스크> 12월16일치 보도 화면 캡처
◇ BBK, 다시 법정 공방 시작 = 김경준 전 BBK 투자자문 대표로 인해 피해를 본 옵셔널캐피털(옛 옵셔널벤처스)이 ㈜다스와 김경준씨 일가 및 미국과 스위스에서 그들이 고용했던 변호사 등 20명을 피고로 하는 대규모 민사소송을 미국 현지에서 제기했다. 다스는 지난 대선 직후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실소유주 여부를 놓고 의혹이 제기됐던 곳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옵셔널캐피털은 지난 1일(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 고등법원에 이들을 횡령과 사기성 이체(fraudulent transfer) 등 혐의로 고소했다. 앞서 지난달 미국 연방법원이 다스와 김경준씨 사이의 소송 취하 결정을 받아들임에 따라 미국에서의 법적 공방을 사실상 마무리 할 것이라는 관측과는 달리, 다스는 이번 소송으로 또다시 미국에서 법적 공방을 이어가게 됐다.

이 뿐 아니다. 김경준씨의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됐던 편지 작성 과정에 “이명박 대통령의 손윗 동서가 개입됐다”는 주장도 나온 상황이지만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BBK 의혹을 폭로한 김경준 전 BBK 투자자문 대표가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된 가짜 편지 작성자 신명씨와 그의 형 신경화씨를 16일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신씨가 가짜 편지를 공개하고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과 관련된 발언을 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냈다.

앞서 한나라당은 지난 2007년 12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BBK 의혹을 폭로한 김경준씨의 ‘기획입국’ 배경을 밝혀달라”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주가조작 및 횡령 혐의로 국내에 들어오라는 법무부 요청을 거부한 김경준씨가 갑자기 송환 요청에 응한 게 수상하다는 이유였다. 즉, 한나라당은 당시 청와대(노무현 정부)가 이명박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김경준씨를 ‘기획 입국’ 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근거로, 김경준씨와 함께 수감 생활을 했던 신경화씨가 김씨에게 보낸 편지를 제시했다. 해당 편지에는 “자네(김경준)가 ‘큰집’하고 어떤 약속을 했건 우리만 이용당하는 것”이란 내용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이후, 실제 편지를 작성한 신명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편지 작성을 지시한) 지인 양 아무개씨로부터 대통령 가족 A씨가 지시했고, 이명박 캠프에서 특보로 있던 B씨가 중간에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신명씨는 이후, 이 사건의 배후에 여권의 핵심 인사들, 특히 대통령의 손윗 동서인 신기옥씨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정권의 핵심과 관련이 있는 중대 사안이지만 이와 관련한 방송 보도는 거의 없다. 유일하게 MBC만이 최근 김경준씨의 가짜 편지 작성자 고소 관련 뉴스를 보도했을 뿐이다.

MBC는 지난 16일 단독으로 “BBK 사건의 핵심인물 김경준씨가 기획입국설의 근거가 됐던 가짜 편지의 작성자들을 검찰에 고소했다”며 “이 가짜 편지 사건에 여권 핵심인사들과 대통령의 손윗동서까지 개입됐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어서 검찰이 재수사에 들어가면 적잖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19일에는 단신으로 “서울중앙지검은 관련 사건을 특수 1부에 배당했다”고 짤막하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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