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민의힘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론화가 '분열의 정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30 남성 표를 의식해 성평등 가치를 저버리는 얕은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모든 부처가 여성 이슈와 관계가 있는데 "여가부가 과연 따로 필요하냐"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법무부, 검경, 교육부 등이 여성 건강과 인권, 고용, 아동돌봄 등의 문제를 '양성평등' 기조 아래 해결하면 된다는 논리다.

(왼쪽부터)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대표, 하태경 의원 (사진=연합뉴스)

유 전 의원은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양성평등위원회'를 공약했다. "여가부라는 별도의 부처를 만들고 장관, 차관, 국장들을 둘 이유가 없다"면서 "여가부 장관은 정치인이나 대선캠프 인사에게 전리품으로 주는 자리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여가부 폐지의 근거로는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정옥 전 여가부 장관의 부적절한 발언을 들었다. 여가부 폐지를 통한 예산은 의무복무를 마친 청년남성을 지원하는 한국형 'G.I.Bill' 도입에 쓰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이준석 대표, 하태경 의원 등이 힘을 보탰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마저 "분열의 정치"(조수진 최고위원)라는 비판이 나왔다.

8일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점령군' 논쟁으로 이념 갈라치기를 하더니 이젠 성별 갈라치기인가"라며 "공동체의 통합을 이끌기는커녕 분열을 조장하는 행태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유 전 의원을 겨냥해 "그의 논리는 허점투성이"라고 했다. 모든 부처가 문제와 권한을 나눠맡게 되면, 어느 부처도 책임지지 않는 방향으로 귀결될 수 있고, 왜 여가부 장관만 '전리품' 취급을 하냐는 지적이다.

경향신문은 이날 <"여가부 폐지" 대선 쟁점 띄운 국민의힘… 성별·세대 갈라치기 '분열의 정치' 꿈틀>(1면), <"여가부 폐지론, 백래시 체계화되고 있어">(6면) 등의 기사를 실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향신문에 "백래시가 체계화된다는 느낌"이라며 "성폭력, 노동시장에서 채용차별, 출산·육아 등 여성이슈가 굉장히 많고 코로나19 때문에 여성이 더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여가부 폐지는 반여성적"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사회 일각의 '여성 혐오' 정서와 청년층의 사회경제적 박탈감에 편승해 지지층 결집을 도모하는 정략적 행태"라며 "자신들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복지 정책을 비난할 때 사용했던 '편가르기' '갈라치기' 정치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취업 형태, 임금 수준, 승진 등과 관련한 각종 지표들은 우리 사회의 여성이 넘어야 할 차별의 벽이 엄존함을 말해준다"며 "이를 부정하면서까지 편견과 혐오를 지지층 결집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국민의힘의 행태는 용납될 수 없다"고 썼다.

한겨레는 기사 <이준석까지 '여가부 폐지론'… 국민의힘 '분열의 정치'>(1면), <여성계 '20년 성과 평가절하' 비판…야당 내부서도 "무모한 일">(6면) 등을 통해 여가부의 성과와 이명박 정부 당시 여가부 장관 인터뷰 등을 실었다.

한겨레는 여가부가 적은 예산과 권한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 간 성폭력 피해, 양육비 미지급 문제, 여성의 일·가정 양립 등을 지원하며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 김금래 전 여가부 장관은 한겨레에 "전세계 90여개 나라가 여성 인권과 성평등을 추진하기 위한 전담 부서를 두고 있다. 성인지 감수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할 부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여가부가 유일하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백희영 전 여가부 장관도 각 부처가 여가부 업무를 나눠 하면 된다는 주장에 대해 "시기상조이고, 하필 선거철을 앞두고 이런 주장이 나온 것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유 전 의원과 하 의원은 여가부 업무를 다른 부처에 귀속시키고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예산 없이는 업무와 동력이 사라질 게 뻔하다"며 "여가부가 성평등 정책 외에도 돌봄, 위기 청소년, 다문화가정 등의 지원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을 숙고했는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프랑스 독일 뉴질랜드 등 선진국들도 성평등을 전담하는 독립 부처나 우리나라와 같은 형태의 여가부를 두고 있다. 이 나라들이 성평등 수준이 낮아서 그런 것은 아닐 터"라며 "성차별이 문제가 아니라 여가부가 문제라는 야당 대선 주자의 인식은 낯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8일자 경향신문·한겨레 지면 갈무리

한편, 국민의힘은 여가부 폐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하 의원은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난 20년간 남녀차별 문화가 빠르게 개선됐다며 '과도적 부서' '시한부 부서'인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2030은 아무런 차별이 없었다. 우리집에서는 우리 딸이 기가 제일 세다"며 "여가부는 졸업할 때가 됐다"고 했다. 또 하 의원은 여가부가 젠더 갈등을 오히려 조장한다며 "탈레반 여성 우월주의자들을 자꾸 외부에서 공무원으로 뽑다보니 남혐과 젠더갈등을 부추긴다"고 했다.

세계경제포럼이 세계 156개국의 정치·경제·교육·건강 분야의 성별 격차를 담아 발표한 '2021 성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 2021)에서 한국은 102위로 하위권이다. 영역 별로는 교육 104위, 건강·생존 54위, 정치적 기회 68위, 경제적 참여‧기회 부문 성 격차 지수가 123위 등이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남성 노동자 대비 여성 노동자 임금은 평균 69.4%였다. 2019년 기준 OECD 국가 중 한국은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큰 국가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2.5%로 OECD 평균은 13%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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