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된 조광래 감독이 9일 오전 서울 노보텔엠베서더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후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조광래 전 축구대표팀 감독은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 한국 축구발전을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심정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조기 축구회 감독도 이렇게 쉽게 갈리진 않는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된 조광래 전 감독이 남긴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 동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는 ‘독이 든 성배’라 불리며 파리 목숨만큼이나 쉽게 자리를 갈아 치워 졌지만 그 중에서도 조 전 감독의 경질은 가장 전격적이 아닐까 싶다.

지난 7일 밤 대한축구협회 황보관 기술위원장이 조광래 감독의 경질을 발표하기 전까지 축구 전문 기자들을 비롯해 그 누구도 조 감독이 경질을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낌새조차 채지 못했다. 하지만 축구협회 회장을 비롯한 소수의 임원들은 관련 사실을 이미 이틀 전에 결정했다고 한다.

물론, 국가대표팀 감독 경질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성적이 부진하다면 감독에게 책임을 물어 경질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순 없다. 하지만 이때도 합당한 절차는 밟아야 한다. 국가대표팀 감독의 임명과 해임의 권한은 기술위원회가 갖고 있다. 감독을 임명하고 경질하기 위해선 반드시 기술위원회가 열려야 한다. 하지만 현재 축구협회는 기술위원회 자체가 없다. 기술위원장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현재 조건이라면 원천적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의 해임은 불가능하다. 해임을 논의하고 절차를 추인할 기구조차 구성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국가대표팀에게 기술적 조언을 하고 국가대표팀 성적 향상을 위한 협회 차원의 시스템이 전무하단 얘기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대표팀의 성적 부진 책임을 감독에게만 묻는 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조 감독의 해임은 물론 해임되자마자 하마평이 돌고 있는 후임 감독 논의 역시 절차상 하자가 분명하다.

하지만 신경 쓸 축구협회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축구협회 행정은 월드컵 4강 국가의 그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후진적 행태의 반복이었다. 축구를 정치에 이용해왔던 정몽준 회장이 물러나긴 했지만 여전히 강고한 친정체제가 구축돼 있어, 축구협회의 행정은 여전히 소수의 독선과 파벌 대립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조광래 감독은 임명 당시부터 축구협회의 ‘야당’이라고 불리는 허승표 전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과 가까운데 의외라는 평가가 나왔었다. 허 전 이사장조차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놀라워했을 정도다. 공교롭게도 조 감독이 해임되기 얼마 전 허 전 이사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협회장에 도전 할 것’이라며 현 축구협회를 ‘정몽준의 아이들’이라고 빗대는 인터뷰를 했다.

▲ 황보관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공식 스폰서들이 축구협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무시할 수도 없다. (후원사가)이번 경질 과정에서 문제점을 제기한 것도 사실이며, 몇몇은 직설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며 감독 경질에 후원사의 압력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황보관 기술위원장이 언급한 ‘스폰서’는 월드컵 중계권을 갖고 있는 주관 방송사라는 것이 축구계 안팎의 중론이다. ⓒ연합뉴스
이렇듯 절차상의 결정적 하자와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도 축구협회가 조 감독을 경질했다. 여기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압력’이 있었다. 황보관 기술위원장도, 조광래 전 감독도 직접 언급했던 바로 ‘후원사’의 존재이다.

황보관 기술위원장은 “그동안 대표팀의 경기력과 운영을 볼 때, 최종예선을 거쳐 본선까지 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공식 스폰서들이 축구협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무시할 수도 없다. (후원사가)이번 경질 과정에서 문제점을 제기한 것도 사실이며, 몇몇은 직설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몇몇 후원사들이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압력을 가했고, 조 감독의 경질은 그 압력에 대한 축구협회 차원의 답인 셈이다.

현재, 축구협회를 공식 후원하고 있는 기업은 11개이고, 이들의 후원금 총액은 214억 원 규모로 알려진다. 축구협회 1년 예산이 1000억 원 남짓임을 감안하면 전체 축구협회 예산의 20% 정도가 후원사의 지원으로 충당된다. 물론,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하지만 직접적 후원을 하는 회사들 가운데 국가대표팀 감독의 거취에 관심을 갖고 오지랖을 행사할 후원사는 얼마 안 된다. 나이키와 현대자동차 정도를 제외하면 축구협회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업은 별로 없다. 따라서 황보관 기술위원장이 언급한 ‘스폰서’는 더 중요한 후원사 즉, 월드컵 중계권을 갖고 있는 주관 방송사라는 것이 축구계 안팎의 중론이다.

아시다시피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중계권은 ‘대한민국 월드컵 채널 SBS’가 갖고 있다. 이미 2010 남아공 월드컵을 단독 중계한 바 있는 SBS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 국가대표팀이 진출하지 못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을 방송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KBS와 MBC가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KBS와 MBC 역시 지역 예선전 중계를 하고 있고, 2014년 월드컵 공동 중계를 합의한 바 있다. 중계권은 SBS가 갖고 있지만 방송사 모두가 공동 운명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 방송에게 월드컵은 매우 특별한 아니 가장 특별한 이벤트이다. 방송은 지난 2006년 ‘묻지마 월드컵 올인 편성’으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됐고, 2010년에는 중계권을 둘러싼 지리한 갈등과 송사를 벌였다. 2006년에는 공동중계가 문제였고, 2010년에는 단독중계가 문제였는데 전혀 다른 상황이었지만 본질은 같다. 방송사들이 월드컵을 노골적 상업주의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 문제였다.

그 과정에서 중계권료는 엄청나게 뛰었다. SBS가 2번의 월드컵 중계권을 따내며 투자한 중계권료는 1500억 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회당 750억 원 안팎인데, 이는 방송 3사가 공동 중계했던 2006년의 중계권료가 450억 원 안팎이었음을 감안하면 2배 가까이 오른 금액이다. SBS가 단독 중계했던 2010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사상 첫 원정 16강에 올랐지만 SBS는 투자 금액이 워낙 많아 100~200억 가량의 순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제작비 등을 포함해 월드컵 중계에 1200억 원 정도를 투자했지만 회수된 금액은 1000억 원 안팎이다.

방송 3사가 공동 중계를 한다면 상황은 분명 좀 나아지겠지만, 2014년의 수익 전망 역시 밝지 않다. 방송 3사가 250억 원 안팎으로 중계권료를 분담하고 100억 내외의 제작비를 투여한다고 했을 때, 방송사는 대략 400억 안팎의 광고를 팔아야 한다. 16강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겨우 달성될까 말까한 액수이고, 16강 이상 진출해야 수익이 예상된다. 이 와중에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한다면? 방송사 입장에선 재앙에 가까운 결과가 초래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선 공동 중계 합의 자체가 엎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방송사들이 권한을 넘어서 국가대표팀 감독 문제에 왈가왈부하고 공공연히 축구협회에 압력을 넣은 까닭은 바로 이것이다. 과당 경쟁을 벌이며 무리한 베팅을 해놓고, 금액의 회수가 불투명한 상황이 두려워 민주적 절차나 권한의 전문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닥치고 경질’을 요구한 셈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노골적 상업주의라고 부르기도 뭣한 천박한 상업주의 그 자체이다. 감독의 경질의 재주는 분명 축구협회가 부렸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방송사들이 축구협회의 ‘왕서방’으로 존재하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KBS의 단독 보도로 조광래 감독 경질이 알려진 이후 방송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축구협회의 시스템 개혁과 내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누가 시스템의 빈틈을 파고들고 내분을 조장했는지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조광래 감독의 해임은 졸지에 한국 국민들의 축구 사랑을 방송사의 베팅 금액만도 못한 것으로 만들었다. 국가대표팀 감독이 방송사의 압력, 다른 이유도 아니고 자신들이 투자한 금액의 회수를 위한 압력에 날아가는 상황은 정말이지 해괴망측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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