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 30년 전 혼자 놀았던 명수에게 추억을 남겨주기 위한 무도 멤버들의 시간여행은 시청자들에게도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김태호 피디의 풍자가 흐르는 피는 이번에도 어쩔 수 없었나봅니다. 깨알 같은 자막으로 전하는 풍자들은 그 상황이 너무 그윽해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상황극의 대가들, 추억을 품고 현재를 이야기하다

지난주에 이어 '명수는 12살'이라는 제목으로 30년 전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들은 흥미로웠습니다. 잊혀진 과거를 통해 우리가 살아왔던 시절을 회상하고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과정은 충분히 흥미롭고 의미 있었으니 말입니다.

무도 멤버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상황극입니다. 그런 상황극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끄는 존재는 명수옹이고 오늘 방송에서 보여준 '하와 수'의 무한변신이 주는 재미는 특집 안에 숨겨진 최고의 볼거리였습니다.

공병을 줍느라 친구들과 지낼 시간이 없었던 어린 명수는 서울로 이사했지만 쉽지 않은 서울 생활로 친구가 없기는 군산 시절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명수에게 새로운 기억을 심어주겠다는 제작진과 동료들은 의기투합해 과거로 회귀해 명수와 함께 놀아주기 시작합니다.

30년 전 현재처럼 컴퓨터나 학원에 대한 압박이 적었던 시절, 아이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함께 노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그런 놀이들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모두가 어울려 놀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던 다양한 놀이 문화는 철저하게 함께해서 의미 있는 놀이들이었습니다.

야외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의 정을 느끼게 해주는 다양한 놀이 문화는 아마도 80년대 이후 태생들에게는 생경한 문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80년 후반 이후 태생은 그 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놀이 문화와 함께할 수밖에는 없었기 때문이지요. 산업화가 가속화되며 경쟁은 모두를 지치게 하고 그렇게 지친 삶을 살아야 하는 부모 세대들은 아이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전 세대들도 자식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요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의 바람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시대의 변화가 이질적인 존재들을 양산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지상 최고의 과제가 되어버린 어린이들에게 미래의 적들과 노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학원을 전전하며 그들이 할 수 있는 놀이는 잠깐 동안 즐길 수 있는 전자기기들이 전부였습니다. 짧은 시간 틈틈이 놀 수 있는 게임은 무한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때론 그 피난처에 안주하기를 원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할 정도로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에 대한 피해는 커질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인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나 이외의 타인에 대한 부정에서부터 모든 가치관이 형성됩니다. 이런 가치 기준의 변화가 근본적으로 과거와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이겠지요. 과거 우리들 혹은 형, 누나, 부모님 세대들이 함께 어울리며 놀았던 문화에는 나 혼자가 아닌, 함께 어울려야 하는 놀이 문화들이 존재했습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가 아니면 그 진수를 맛볼 수 없는 놀이 문화. 그 놀이 문화의 차이가 곧 근본적 차이와 동일하다는 점에서 <무한도전-명수는 12살>은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과거는 현재 우리의 삶과 비교해보면 결코 풍성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풍성하지 않아서 더욱 풍성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현재의 우리와는 너무 달랐습니다. 물질만능주의 사회 에서 풍요는 미덕이 아니라 증오로 바뀌고 그런 증오들은 사회를 불균형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풍성하다는 것이 곧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은 당연한 듯합니다. 부족해서 서로 나누고 그래서 모두가 풍성해질 수 있었던 시절과는 달리, 현재는 너무 많아서 더욱 독식하려 들고 자신의 곳간에서 쌀들이 썩어나는 일이 있어도 주변의 굶어죽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양극화가 심화되며 가치의 기준이 모든 것을 가진 1%에 집중되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불행해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권력과 부를 가진 1%는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고,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99%는 현실의 팍팍함이 고달픕니다. 곧 이런 세상에 대한 분노는 사회 전체에 균열을 불러올 수밖에는 없습니다. 상생의 사회가 구현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파괴에 대한 본성은 우리 사회를 혼란하고 불안하게 만들 뿐입니다.

현 정권은 모든 것을 가진 1%에 더욱 많은 것들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면서, 이른바 '낙수효과'가 모두를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의 곳간이 차고 넘치면 자연스럽게 모두가 풍요롭게 될 것이라는, 바보들도 생각하기 힘든 정책은 당연하게도 그들에게 다른 곳간들을 만들게 부추겼습니다. 아흔아홉 석을 가진 부자들은 한 석을 가진 이들의 곡식마저 빼앗으며 새롭게 지은 곳간을 채우기에 바빴고, 그렇게 모든 것을 가진 1% 만이 배부를 수 있는 사회가 곧 선진 사회라 주장하는 위정자들로 인해 사회는 망가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끊임없는 탐욕은 세상을 나락으로 빠트렸고 벼랑 끝으로 몰린 99%는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들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던 1%가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해 더욱 거세게 99%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려 하는 상황은 그들이 주장한 '낙수효과'가 얼마나 파렴치한 조작이었는지를 깨닫게 하기도 합니다. 1%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여론을 통제하고 장악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무한대로 확장시켜 줄 것이라 믿는 종편을 만들어내기까지 했습니다.

준하의 집에 놀러 간 친구들은 너무나 닮은 준하 가족들로 인해 정신이 없습니다. 엄마도 누나도 형과 아빠도 모두 준하와 판박이인 이 가족들의 등장과 명수 아버지의 등장은 무도가 가장 적극적이며 흥미롭게 이끌어가는 상황극이었습니다. 이런 상황극은 자연스럽게 풍자로 이어졌습니다.

누나로 분장해 등장하는 준하와 함께 '형광등 100개 켜 논 미모'라는 자막이 나가며 종편 방송이 내세운 박근혜를 풍자하는 상황은 많은 이들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죽은 독재자를 찬양하고 그 딸이 대권주자로서 다음 정권을 잡기를 바라는 종편의 찬양극은 웃지 못 할 상황을 만들었고 그들이 그토록 증오한다던 북한의 독재자 찬양을 그대로 재현해내며 스스로 놀림감이 되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준하 집에서 상황은 급격하게 변하고 이런 상황에 등장하는 무조건 '고소'는 현 국회의원의 무분별한 고소를 풍자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개그맨을 고소한 상황이 그들에게도 자연스러운 비판을 하게 만드는 듯했습니다. 오징어 놀이를 하면서 가장 힘이 센 준하가 보여준 쥐잡이 놀이는 풍자의 끝이었습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준하는 아이들 세상에서 왕이 되었습니다. 물론 지략이 떨어지는 그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막강한 힘 밖에는 없었고 그 힘으로 나약한 상대를 '쥐'잡듯 하는 상황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힘으로 모든 것을 장악하고 그런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이들의 무지막지함이 준하의 모습에 그대로 투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준하는 일차원적인 힘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30년이 지난 후 권력을 가진 이들은 보다 정교해진 방식으로 무한해진 권력을 행사하기에 급급합니다. 정교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권력 집착과 탐욕은 변한 게 전혀 없습니다. 본질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정교함은 '악랄함'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집요해졌을 뿐입니다.

너무 가진 것이 없어 오히려 행복했던 과거. <무도 명수는 12살> 특집은 그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30년 전 과거를 바라보며 추억을 떠올리든, 현재의 문제를 지적하든 그 모든 것은 각자의 몫일 것입니다. 다양한 시각과 가치로 다가오는 무도는 항상 흥미롭기만 합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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