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산업은행장을 비판한 기자에 대한 민사 재판이 2일 진행된다. 노동계는 "거대자본의 입막음"이라며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소송 취하를 촉구한 바 있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산업은행이 스포츠서울 권 모 기자를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 재판이 예정됐다. 산업은행측은 기사를 삭제하면 소송을 취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권 기자는 사실에 입각해 쓴 칼럼이라며 기사삭제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사진=연합뉴스)

산업은행은 지난해 10월 권 기자가 작성한 칼럼 <[취재석] 이동걸의 이상한 논리 "키코, 불완전판매 했으나 불완전 판매 아니다">가 허위사실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그해 11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권 기자는 칼럼에서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동걸 회장 발언을 지적했다. 이동걸 회장은 당시 "키코는 불완전 판매가 아니다"라면서도 "가격정보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 기자는 "상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도 불완전판매가 아니라는 이 회장의 논리는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말과 동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이 회장은 진실에 의해 코너에 밀렸고 그곳에서 무의식 중에 진실을 내뱉은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키코(KIKO. Knock-In, Knock-Out)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지만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입는 구조의 파생금융상품이다. 2008년 초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키코에 가입했던 중소기업 피해가 속출, 줄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723개 기업이 3조 3000억원 가량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재인 정부 금융감독원은 2018년부터 2년 간 키코사태를 조사, '불완전판매'로 결론냈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신한·하나·대구·우리·씨티·산업은행에 대해 키코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책임이 인정된다며 피해기업 4곳에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시중 은행들이 피해기업 보상 결정을 내리고 있지만 산업은행은 배상이 아닌 '보상'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불완전판매'가 아니다라는 것으로 올해 초에도 이동걸 회장은 '불완전 판매' 판단을 인정할 수 없다며 금감원 배상 권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산업은행은 소장에서 "이(기사)로 인해 산업은행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다가 국정감사 과정에서 잘못을 시인한 듯한 인상을 주어 공적기관으로서 산업은행의 신뢰도에 심각한 악영향이 초래됐다"며 "산업은행이 키코 상품 판매와 관련된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여 불완전판매를 인정한 것처럼 비추어짐으로써 키코 상품 판매와 관련된 손해배상책임을 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될 수 있는 등 산업은행이 입게 되는 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주장했다.

금융피해자들과 노동계는 산업은행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며 소송 취하를 촉구했다. 키코 공동대책위 등이 속한 금융피해자연대는 "국가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은행장이 기자를 상대로 무리한 주장을 펴면서 대형로펌을 고용해 억대 소송을 벌이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사를 쓰는 기자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로밖에 해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금속노동조합은 "자본이 언론사가 아니라 기자를 표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행태는 기자 개인에 대한 보복이며 동시에 비판 보도를 미리 봉쇄하는 입막음"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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