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TV 전쟁은 현재 시점 우리의 방송을 엿볼 수 있는 만화경과도 같은 방송이었습니다. 12월 개국을 앞두고 있는 종편은 방송 생태계를 파괴하는 존재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방송계를 예능 속에 담아 흥미롭게 풀어간 <무한도전 TV전쟁>은 그 어떤 시사 프로그램들보다 뛰어난 가치를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선정성과 스타 마케팅으로 점철된 방송, 베를르스쿠니의 이탈리아를 닮아간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시작된 'TV전쟁'은 꼬리물기라는 게임의 규칙으로 이어지며 더욱 흥미롭게 전개되었습니다. 게임의 룰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고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이는 이 전쟁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호하기만 합니다.

분명 이 전쟁이 의미하는 것이 있음에도 그 본질을 깨닫지 못한 이들에게는 모든 상황들이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는 없으니 말입니다.

물고물리는 전쟁 속에서 용케 살아남은 박명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길에게 자세한 흐름을 듣다 그를 쫓아온 하하에게 속절없이 당합니다. 이를 보면서 격변하는 방송 환경에서 낙오자가 되는 법은 생각보다 쉬울 수밖에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말이 있듯 요즘 방송은 오랜 시간 다져온 신뢰마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른 소리를 잘 하던 MBC가 낙하산 사장들로 인해 완벽하게 무너지고 말았고, 국영 방송이라는 KBS 역시 친일파들을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들은 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무도 TV 전쟁>에서 드러난 난장판은 그들이 만들어낸 소동극에 불과하지만, 그 자체가 담고 있는 의미는 우리를 마냥 웃게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할 뿐 정작 시청자들을 위하는 방송이 사라진 요즘, 그들의 모습은 예능에서 보여준 모습보다 더 형편없고 무기력하며 무능하기까지 합니다. 거대한 방송 권력을 통해 권력과 기득권층을 대변하기에 급급한 언론은 베를르스쿠니 시절의 이탈리아 방송을 닮아 있습니다.

박명수를 데리고 급조된 청문회를 벌이는 유재석과 정준하의 모습에는 풍자와 조롱이 가득했습니다. 주어가 빠진 현상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상황이 무엇을 연상시키는지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어 놀이'는 여전히 큰 생명력을 얻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다시 한 번 방통심의위의 제제를 받은 무도는 '방통심의위의 위엄'을 위해 자체 편집을 감행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폭력성과 과도한 비속어 남발, 어린아이들이 보면 안 되는 상황들을 친절한 자막을 동원해 상세하게 안내함으로써 예능이 보여줄 수 있는 재기발랄함을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두고 방통심의위가 다시 제제를 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예능 방송은 하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겠지요.

매주 진행되는 <런닝맨>으로 다져진 체력과 능력 때문인지 런닝맨에 출연 중인 멤버들만 남았다는 사실도 아이러니합니다. 유재석과 하하는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마지막 승부를 벌입니다. 유재석은 노홍철과 정준하가 하하에게는 박명수, 정형돈, 길이 함께해서 TV 개국을 준비하고 홍보하는 시간이 주어집니다. 유재석 TV가 정석대로 편성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하하 TV는 그런 고민 없이 무조건 스타 마케팅을 동원해 관심을 끌면 그만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인맥을 총동원해 출연 섭외를 하는 하하 TV 관계자들의 모습은 보면 최근 스타 마케팅만이 전부인 종편 방송을 보는 듯 씁쓸하기만 합니다. 이즈음에서 왜 멤버들을 잡으면 끝나는 것이 아닌 카메라맨의 등 뒤에 붙은 녹화 버튼을 눌러야 끝나는 룰을 정했는지가 명확해집니다. 원칙대로라면 방송을 진행하는 멤버들을 잡으면 끝나야 하지만, 이번 'TV전쟁'에서는 멤버들은과 상관없이 카메라맨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후 방송 전쟁을 벌이는 과정을 보면 여실히 드러납니다.

종편은 개국을 준비하며 유능한 피디와 편성 책임자들을 영입하는 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방송을 제작하는 데 절실한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방송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춘 피디 영입은 사활을 건 일이었을 겁니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종편 탄생과 이를 직업의 자유라는 말로 옮겨가는 유명 피디들의 모습들이 반갑지는 않지만 그들 스스로 내린 결정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방송의 꽃이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편성 책임자는 더욱 중요한 존재입니다. 편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편성 책임자는 방송국을 살렸다 죽였다 할 수 있음은 무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유재석 TV가 철저하게 편성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하하TV는 오로지 스타 마케팅에만 집착하는 모습에서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했습니다.

스타들의 출연에 의해 시청률이 등락할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방송 편성에 집중했던 유재석 TV와 달리, 편성이라고 할 수도 없는 조잡함으로 일관했던 하하TV의 패배는 당연했으니 말입니다.

무도 멤버들이 스타를 모시기 위해 모든 인맥을 다 동원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풍자는 극에 달합니다. 영입된 피디들을 통해 스타들을 인맥으로 연결하는 모습은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종편의 제작 방식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과거 함께 일했던 인연을 근거로 스타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그들은 오직 스타 마케팅을 통한 선점효과에만 집중할 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것은 스타들이 종편행을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종편에서 만드는 방송에 출연하는 것일 뿐 그들이 일선의 제작 피디들처럼 회사를 버리고 다른 회사로 향하는 '행'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김태호 피디도 트위터에서 유사한 이야기를 했듯 연예인들에게 종편 출연은 말 그대로 '출연'일 뿐이니 말입니다.

과도한 스타 마케팅은 당연히 반짝 인기를 이끌어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겹치기 출연을 만들어내고 상도덕 논쟁을 부추길 뿐입니다. 송중기가 하하TV를 방문해 사전 녹화를 하지만 유재석 TV는 발 빠르게 하하TV를 취재하는 방식을 취하며 송중기 출연을 성사시키는 기민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송중기에 이어 써니까지 출연한 하하 TV는 유재석 TV를 이기기도 하지만 곧 이런 스타 마케팅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얼굴마담이 손님을 끌어오기는 하지만 실속 없는 내용은 결과적으로 모두 떠날 수밖에 없도록 유도했습니다.

이미 스타들의 겹치기 출연은 일상이 되어버렸고 그들의 자극적인 방송은 오직 시청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에만 집중된 채 더욱 혼탁한 상황만을 만들었습니다. 유재석 TV가 무한 반복하듯 부르던 '수능송'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현재 방송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듯 씁쓸했습니다. 그럴듯하게 다가왔지만 30절까지 이어지는 그들의 '수능송'은 좀비가 되어 시청자들마저 좀비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방송의 목적이 시청률로만 평가되는 현재의 모습을 강렬한 풍자로 보여준 마지막 대결은, 이것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방송의 질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오직 시청률 싸움에만 초점이 맞춰진 방송 환경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말초적인 자극만 이끄는 방식이 전부일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재가 남발되고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편성마저 무시한 채 무리수를 던지는 방송 환경은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이 방송을 외면하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꼬리물기를 하듯 방송국들이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안달이 난 상황에서 오직 시청률 경쟁을 위해 과도하게 집중한 이들만이 살아남아 국민을 담보로 방송 권력을 얻게 되는 기현상은 우리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예능 특유의 재미와 강력한 풍자까지 함께한 <무한도전 TV전쟁>은 우리 시대 방송을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해주는 명품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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