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최영묵 칼럼] KBS이사회에서 수신료 인상안이 상정되었다. 이번에 KBS 집행부는 월 2,500원이었던 수신료를 3,840원(1,340원 인상)으로 올리는 안을 제출했다. 2000년 이후 네 번째 공식적인 수신료 인상 시도다. 6월 이사회 의결이 목표라고 한다. 방송법에 따르면 공영방송 수신료는 KBS 집행부의 인상 요구에 대한 이사회의 의결, 방송통신위원회의 확인(의견서 첨부)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송부 및 논의, 국회 본 회의 승인이라는 ‘다단계 지뢰밭’을 통과해야 인상할 수 있다.

반복되는 ‘실패의 추억’

대한민국 공영방송 수신료는 1981년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KBS에서는 주기적으로 40년 이상 동결되어 있는 수신료 인상을 시도해왔지만 정치권(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2년째 계속되고 있고 차기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최악의 조건’ 임에도 불구하고 KBS집행부는 수신료 인상 카드를 꺼냈다. 그만큼 KBS의 재정 상황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수신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통신요금이나 물가 등 다른 모든 것은 몇 배씩 올랐는데 40년간 동결되었고, 영국(BBC)이나 일본(NHK)의 수신료에 비해 터무니없이 저렴하며 KBS 재원 중 수신료의 비중이 지나치게 낮은 것이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광고 축소에 따른 적자의 누적과 이로 인한 프로그램 제작의 위축이다. 전 세계에서 콘텐츠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은 비용문제로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제작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수신료 인상에 실패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여론’이었다. 공영미디어를 제외한 대다수의 언론이 수신료 인상에 대해 각각의 이유로 부정적이었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이번에 KBS는 여론을 제대로 확인해 보기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하기로 했다. 지난 4월 5일 언론 관련 학회의 추천을 받아 5인으로 공론화위원회(위원장 조항제 부산대교수)를 구성하여 1차 회의를 마쳤다. 공론화위원회는 오는 5월 8~9일 200명의 시민과 온라인회의를 통해 수신료 등에 관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수신료 인상에 가장 근접했던 것은 2011년 6월이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과 야당인 민주당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에서 수신료 인상안에 대하여 국회 본 회의에서 표결처리에 합의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KBS의 공정성·중립성 등 선결조건을 내세워 합의를 파기했다. 이후 민주당은 고위정책회의 등을 통해 공정보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정치적 중립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방송법 개정)이 수신료 인상의 선결조건이라고 선언했다.

공정성 시비와 ‘비효율성’ 넘어서기

과거 국회에서 수신료 인상논의가 번번이 실패했던 이유는 저널리즘 공정성 시비, 조직 운영의 비효율성(유휴인력과 인건비 등) 문제와 관련이 있다. ‘야당’은 언제나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수신료 인상을 무력화했다.

KBS 집행부는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공정성 관련 제도적 장치를 설명하면서 이후에도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KBS에는 ‘편성규약’과 노사합의로 운용되는 ‘공정방송위원회’를 비롯하여, ‘뉴스 옴부즈맨’, ‘편성위원회’, 보도 및 시사제작 부문 국장에 대한 ‘임명동의제’ 등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가 있다. 경영 효율화를 위해서도 다각도로 자구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997년 이후 인력을 1800명 이상 감축했고 2023년까지 1,000명을 추가로 줄일 계획이다.

한국은 ‘공영방송 왕국’이지만 공영방송의 재원과 지배구조 제도가 허술하다.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다. 1972년 비상국무회의에서 ‘한국방송공사법’을 통과시키면서 공영방송이 등장한다. 유신정권은 국영방송의 불합리성과 비효율성을 시정하고 우수한 프로그램을 제작을 통한 문화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KBS를 공사로 전환한다고 했다. 하지만 KBS는 이름뿐인 ‘공영방송(공사)’이었다. 사장은 사실상 장관이 임명했고, 독립 거버넌스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수신료 제도도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강행처리와 무산 그리고 ‘제3의 길’

KBS의 재정문제는 대단히 심각해 보인다. 2015년 5,000억 원이던 광고수입이 지난해에는 2,300억 원으로 줄었다. 반면에 제작비는 앙등하여 대하드라마나 미니시리즈 등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KBS 2TV 재방율은 45%에 달했다. 인력 줄이고, 제작비 줄이고, 프로그램 줄이고, 지출 규모를 줄이는 악순환 구조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시대에 공영방송이 왜 필요한가? 인터넷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허위조작정보와 가짜뉴스가 차고 넘친다. 진실과 허위의 경계가 흐려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정치적 의도나 상업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공정한 정보를 갈망한다. 공정한 정보는 민주주의 작동의 전제 조건이다. 도시 속의 그린벨트가, 국토 곳곳에 국립공원이 필요하듯이 미디어 생태계에는 공공서비스방송이 필요하다.

KBS의 뜻대로 된다면 9월 쯤 수신료 인상안이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국회 과방위로 넘어가게 된다. 수신료 인상은 미래에도 공영방송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일이다. 수신료 국면에서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존재감을 과시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집권당의 의지다. 선택지는 세 가지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첫째, 과거처럼 국회에서 여야가 공방을 벌이다 인상이 무산되는 경우다. 늘 그랬기 때문에 수신료 논의의 전형적인 루트처럼 보인다. 문제는 현재 공영방송의 위기상황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데 있다.

둘째, 공영방송을 살리기 위해 국회에서 인상안을 강행처리 하는 방식이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야당을 설득한 후, 과방위를 거쳐 국회 본 회의에 안건을 상정한 후 표결처리하는 수순이다. 야당의 저항과 보수 매체들의 조직적 방해를 돌파해야 한다.

셋째, 민주당이 계속 주장해왔던 대로 수신료 문제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 개정을 연계하여 논의한 후 일괄 처리하는 방식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는 이미 충분히 진행된 상황이다. 국회에 수신료위원회를 설치하는 문제와 수신료 회계분리 문제 등이 함께 논의될 수 있다. 더 확대한다면 신문을 포함한 국내 미디어의 재원과 국가 지원(정부광고)의 합당성 문제도 함께 논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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