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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흑산을 자산의 스토리로 다시 쓴 정약전, 지금 여기의 화두로[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04.06 13:19

[미디어스=이정희]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처음 본 정약전. 국사교과서 실학자를 소개하는 부분에 정약전이 물고기 백과사전과 같은 『자산어보』를 썼다고 하였을 때 시쳇말로 좀 '없어 보였다'. 동생 정약용이 유배 기간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등 정치, 경제 다방면에 걸쳐 일가를 이루는 동안 ‘겨우 물고기 책이라니’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정약전에 대한 관점을 달리해주는 책을 만난 건 2006년이었다. 아이세움에서 '나의 고전 읽기' 시리즈 첫 권으로 나온 손택수의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는 한낱 물고기 책이나 쓴 정약전에 대한 내 '색안경'을 벗겨주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였음에도 '공도'정책이라는 무지몽매한 정책으로 오늘날 '독도' 문제의 빌미를 자초한 것처럼 유교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나라였다. 그런 세상에서 유배를 갔다 해도 '선비'가 백성의 터전인 바다와 그 바다의 산물에 대한 책을 펴냈다는 건 또 다른 '실학'의 본류요, 어찌 보면 '혁명적인 도전'이었다는 걸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는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준익 감독을 통해 정약전과 그의 『자산어보』를 다시 만났다. 무지한 해양정책을 폈던 책상물림의 나라 조선에 분노했던 그 시절로부터 십수 년이 흘러 다시 만난 정약전과 『자산어보』는 그 흐른 세월만큼이나 묵직하고 깊게 다가온다. 

약전, 흑산으로 가다 

영화 <자산어보> 스틸 이미지

영화 <자산어보> 첫 장면은 관직에 나선 약전이 정조 임금을 만나는 장면이었다. 청나라에서 들어온 서양 학문과 과학기술에 천착했던 정약전이 '관직'에 나선 결의를 유머러스하게 밝히는 장면에서 정조 임금은 “형만 한 아우가 없다”고 정약전에 대한 믿음을 밝힌다. 그리고 '버티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정조 임금의 당부는 그의 죽음과 함께 흩어져버린다. 서양 학문과 함께 수용한 ‘서학'이 정약전 형제의 목을 죈다. 약전이 배교자를 자처하며 애써 지키려 했지만 약종의 목숨은 구하지 못했다. 당대 최고의 파워엘리트이자 학자였던 동생 약용과 약전은 조선 땅끝과 바다 건너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정약전은 1790년 문과에 급제, 전적‧병조좌랑 등의 관직을 역임하다 1798년 정조의 명을 받아 책을 편찬했다. 하지만 뜻을 제대로 펴보기도 전에 정조의 죽음과 함께 신유박해로 1801년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그의 정치적 희망은 꺾였고, 홀로 바다 건너 흑산도로 향하게 되었다. '어려서는 얽매이지 않으려는 성격이었고 커서는 사나운 말이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듯했다'는 표현처럼 호방했다는 인물 약전. 배우 설경구가 연기한 약전은 눈물로 안타까움을 표하는 동생 약용(류승룡 분) 앞에서 의연히 흑산도로 향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오늘 밤은 으르렁대던 파도가 잠잠해지고
잠자는 구름 아래 어등(魚燈)이 빛을 뿜는다.
공활한 하늘이 훤히 펼쳐 있고
다닥다닥 별 떼가 반짝이는데
나뭇잎 사이로 이따금 꺼졌다가 켜지며
반공중에 까닭 없이 모였다가 흩어진다.
잠 못 들고 몇 개 섬을 돌고 났는지
왁자하게 흩어지는 새벽이 됐다.

동생 앞에서 의연하게 길을 떠났지만 겨우 300명 남짓 사람들이 살아가는 흑산도의 유배 생활이 쉬웠을까. 그의 시, ’어화(漁火)‘가 잠 못들고 섬을 서성이는 선비 정약전의 마음을 드러내준다. 

실학자 약전, 자산어보를 쓰다

영화 <자산어보> 스틸 이미지

영화 <자산어보>는 그런 복잡한 심경의 선비 정약전을 넘어, 실학자로서의 열의를 앞세운다. 나무로 지구의를 만들고,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바늘구멍 사진기를 만들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자 정약전 앞에 흑산은 그저 유배지가 아니었다. 농부가 밭을 갈듯, 어부들의 밭이었던 바다. 그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을 제대로 조사해 기록으로 남기는 건 정약전 식의 '목민심서'였던 것이다. 

1816년 죽을 때까지 정약전은 섬을 벗어나지 못했다. 영화 속 약전은 죽음의 순간까지 붓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동생 약용마저 풀려난 유배길, 홀로 남은 그가 끝까지 남기려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날 것의 바다를 정화시킨 흑백의 화면은 약전의 성실한 삶을 오롯이 드러낸 보인다. 방대함과 정밀함에 있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자산어보』. 비늘이 있는 것과 없는 것, 껍질이 단단한 게류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잡류 등등의 분류, 붓으로 찍어 쓸 수 있는 오징어 먹물부터 돗돔에 이르기까지 『자산어보』의 내용은 그 자체로 실학자 약전의 실천적 삶이다. 

청나라의 문물과 서학을 수용했던 진보적 지식인이자, 그 뜻을 정조 치하에서 펼쳐보려 했던 실천적 정치가. 하지만 그 꿈은 멸문지화로 끝맺었다. 아마도 풍운의 꿈을 꾸던 이들이라면 대부분 여기서 자신의 뜻을 멈추지 않았을까? 더구나 조선시대에 육지가 아닌 섬은 이 세상이 아닌 곳과 같은 의미이다. 그곳에 홀로 떨어진 학자 정약전은 하지만 거기서 다시 시작한다.

이준익 감독을 통해 다시금 소환되었지만, 정약전은 아는 사람만 아는 조선 실학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심지어 그가 죽어가면서도 쓴 『자산어보』는 그가 죽은 뒤 어느 집 벽지로 붙여져 세상에서 사라질 뻔했다가 동생 약용이 보낸 제자에 의해 '구제'되었다. 이렇게 기약할 수 없는 작업에 필생을 바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영화 <자산어보> 속 바다를 향한 멈추지 않는 정약전의 열정은 그걸 자꾸 짚어보게 만든다. 

영화 <자산어보> 스틸 이미지

거기에 <자산어보>의 창대는 영화에서 약전이 흑산에서 애써 키운 '상놈의 제자’로 재현된다. '상놈의 제자'는 상징적이다. 서학쟁이라 약전을 경원시했던 창대에게 약전은 처음부터 호의적이었고 기꺼이 그의 스승이 되었다. 영화 <일포스티노>의 네루다와 마리오 같다. 약용을 찾아간 창대가 약용의 제자와 맞서 시 대결을 벌이는 장면. 정약용의 제자도 감히 '상놈 주제에'라는 편견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창대는 통쾌하게 약용 제자의 말문을 막아버린다. 그리고 그런 창대를 절에서 일하는 '상놈'들은 경이롭게 바라본다.

이 장면은 문자에 관심이 있어, 물고기에 밝아서 창대를 제자로 삼은 것만이 아니었음을,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양반도 천민도 없는’ 조선을 꿈꾸는 세계관을 가졌기에 가능한 정약전의 '실천'이었음을 영화는 뒤늦게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그렇게 아끼던 제자 창대는 결국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약전을 떠난다. 물론 '상놈' 창대의 높은 뜻은 세상과 조우할 수 없었다. 뒤늦게 돌아온 창대가 받아든 약전의 묵은 서신, 학 대신 검은 무명천, 그저 뭇 백성으로 성실하게 살아감의 의미를 짚은 약전의 말은 자기 자신에 향하는 결의가 아니었을까. 

흑산을 살 것인가, 자산을 살 것인가 

영화 <자산어보> 포스터

날개를 꺾이다 못해 찢긴 진보적 지식인 약전, 2021년 이준익 감독이 그를 초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관철하고 실현하는 것으로 존재가치를 증명해오던 세대. 586으로 상징되는 세대는 그들이 세상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원심력의 기세로 살아왔다. 그 겨울 광화문을 밝힌 촛불 속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는 높았다. 그렇게 세상을 향해 늘 자신을 발산하던 세대에 대해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 정약전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기를 권하고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제 젊은 세대에 그 몫을 물려주고 물러나야 하는 시간, 그 퇴장의 시간에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불과 10여 년의 관직 생활, 뜻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바다 건너로 유폐당한 약전은 하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상놈' 창대를 학문적 벗 삼아 『자산어보』 저작을 필생의 작업으로 삼음으로써 약전은 오래도록 우리에게 기억된다. 정조 연간의 관리 약전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자산어보』는 불후의 저작으로 남았다. 

“玆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黑은 너무 캄캄하다. 玆는 또 지금, 이제,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으냐, 너와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사는 섬이 자산이다"

김훈은 정약전을 그린 소설 <흑산>에서 이렇게 썼다. 흑산을 '자산'의 스토리로 다시 쓰는 삶, 흑산을 살 것인가 자산을 살 것인가, 우리 시대의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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