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린 남자의 마지막 순간을 영상화한 이 영화는 잔인한 현실이 있는 그대로 담겨 있어 보는 게 두려웠습니다. 환상이라 불러도 좋을 바르셀로나 축구의 이면, 가장 낮은 곳에서 지독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을 목격한다는 것은 불편한 경험이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서로 다른 세 아버지의 잔혹한 현실이 담담해서 두렵다

유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은 인력 브로커입니다. 밀입국자에게 일을 알선하고 수수료를 받는 그는 경찰에게 뇌물을 주며 그들을 관리해서 살아가는 하층민입니다. 또한 그에게는 남들에게 존재하지 않은 죽은 이를 보는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밀입국자에게 중국인 밀입국자가 만든 짝퉁 상품을 공급하고 거리에서 노상을 할 수 있도록 경찰에게 뇌물 상납을 하며 사는 유스발의 부업 아닌 부업은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고 돈을 버는 일입니다. 슬픔에 잠긴 유족에게 그는 궁금한 그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고,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의 삶에 변화가 찾아 온 것은 암으로 진단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밑바닥 인생을 살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이혼남 유스발은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삶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를 가지게 됩니다. 아프리칸과 아시안 사이에서 그저 돈만을 생각해왔던 그에게 삶을 좀 더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계기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불치병은 어쩌면 그 인생에 주어진 마지막 축복일지도 몰랐습니다.

아이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자신이 죽고 나면 남겨질 아이들을 위해 이혼한 아내와 함께 생활해보기도 합니다. 자유분방하고 자신의 삶 속에 가족은 부수적인 아내 마담브라는 유스발이 믿고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형과도 아무렇지도 않게 연인 관계로 지내는 그녀를 다시 떠나보내는 유스발에게 남겨진 것은 고국으로 쫓겨난 에크웸의 아내 이게였습니다.

노점을 하면서 마약을 팔던 에크웸은 이 일로 인해 거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가장 밑바닥이었던 에크웸이 붕괴되며 그들의 고리 역시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법을 감수하고 돈을 벌어야 했던 중국인 하이 역시 짝퉁 제작으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음을 알고 짝퉁 공장 인력들을 공사장으로 파견 내보내는 일로 전환합니다. 성공신화를 꿈꾸며 불안정한 아프리카를 떠나 스페인으로 향한 에크웸은 추방당하게 됩니다. 남편을 따라 가겠다는 이게에게 아이는 스페인 국적이라며 다시 돌아올 테니 유스발을 믿고 버티라고 이야기합니다.

중국인 밀입국자들을 악용하며 살아가는 하이는 그렇게 번 돈으로 스페인에서 안정적인 대가족을 거느리고 살아갑니다. 그런 그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는 자신의 짝퉁을 판매하는 아프리칸들의 추방이 아니라, 게이 연인인 리웨이의 등장 때문이었습니다. 만족할 수 있는 삶은 아니었지만 스페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하이는 가족과의 관계도 유스발과의 유대도 리웨이로 인해 모두 끊기며 극단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던 중국인 밀입국자 리리는 차가운 지하방에서 수십 명의 같은 이들과 지냅니다. 너무 추워 아침이면 온 몸이 얼어붙는 그들을 위해 유스발은 히터를 장만해줍니다. 최소한 추워 죽을 일은 없기를 바라며 장만해준 이 히터는 수십 명의 중국인들이 몰살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최소한 저렴한 상품을 찾을 수밖에 없는 유스발의 현실(그는 죽어가고 있고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돈을 모아야만 하는 절박함)은 결과적으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몰살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록 훌륭한 일을 하며 살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는 밀입국자들에게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왔던 존재입니다. 그런 그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그들에게 좀 더 도움을 주려 시도했던 행동이 절망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힘겹게 유스발을 압박합니다.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목도하는 상황. 그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자신을 증오하고 싫어하는 이게라는 사실은 모두를 슬프게 합니다. 힘겹게 모은 돈을 이게에게 맡기며 제발 아이들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살아주기를 간청하는 유스발의 마지막은 한없이 작고 비참할 뿐이었습니다.

영화는 유스발이라는 존재를 통해 죽음과 삶에 대한 통찰이 지독한 현실을 배경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유스발이 전면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세 지역 아버지들의 처참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스발은 아직도 어린 두 아이들을 남기고 죽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모아 둔 돈이라고는 1년 월세를 낼 수 있는 돈과 약간의 생활비가 전부인 유스발에게 삶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중국인 밀입국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살아가는 하이 역시 지독한 운명에 우는 존재입니다. 유스발이 사온 히터 고장이 문제이기는 했지만 수십 명의 밀입국자가 몰살한 사건은 그를 몰락으로 이끕니다. 죽은 노동자들을 바다에 버리자는 게이 애인의 말을 들었던 것이 화근이 되어, 아무것도 모른 채 화목하게 살던 그의 집안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나고 맙니다. 가족들은 모두 경찰에 붙잡혀 가고 자신은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 하이는 연인을 죽이고 쓸쓸하게 바르셀로나 거리 어딘가를 향해 나섭니다.

스페인 드림을 품고 밀입국한 에크웸은 거리에서 짝퉁을 팔며 가족을 부양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경찰을 눈치를 보고 매달 거액을 상납하며 일해야 하는 그로서는 돈을 벌기 위해 마약을 거래하기 시작했고 이런 악순환은 결과적으로 모든 부패의 상위에 있던 경찰에 의해 추방당하게 됩니다. 부인과 갓난아이만을 남기고 지옥 같았던 조국으로 추방당하는 그의 모습에는 유스발의 할아버지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프랑코 정권에 쫓겨 멕시코로 가야 했던 유스발의 할아버지. 영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젊은 할아버지와의 조우는 단순히 영화적 기교를 위한 장치가 아닌, 세 아버지들의 지독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들이지만 그들이 느끼는 삶은 무게는 한없이 무겁기만 할 뿐입니다.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살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세상은 지독하게 우울할 뿐입니다.

어린 딸이 '뷰티풀'의 철자를 묻는 장면에서 유스발은 읽는 대로 쓰면 된다고 가르쳐준 '비우티풀'은 이 영화의 핵심이었습니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뷰티풀'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유스발이 느끼고 있는 아름다움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비우티풀'이기만 했습니다. '뷰티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유스발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비우티풀'이라 이야기하는 과정은 그저 잘못된 철자가 아닌, 남겨진 아이들에게도 유스발의 삶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독할 정도로 우울해집니다. 죽어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유스발은 그런 자신의 마지막 모습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개인의 삶을 통해 바뀔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인 모순을 강렬하게 비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미 가진 자들만을 위해 고착화된 사회 구조는 개선될 여지없이 영원히 대물림될 수밖에 없음을 잔인하게 풀어낸 <비우티풀>은 전혀 '뷰티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영화로 표현되고 영화는 세상을 이야기 한다. 그 영화 속 세상 이야기. 세상은 곧 영화가 될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영화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소통해보려 합니다.
http://impossibleprojec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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