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사극으로 화제를 몰았던 영화 방자전이 케이블 CGV TV방자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뭐든 원작을 뛰어넘는 리메이크는 어렵기 때문에 TV 방자전에 대한 기대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또한 CGV TV영화 시리즈가 스타급 배우 캐스팅이 없어 그 점 또한 약점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총 4부작 중 첫 회를 본 소감은 우선 원작과도 다르고, 영화와도 아주 많이 다르다는 점이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스타도 없고, 아무리 케이블이라지만 영화만큼의 노출도 하기 어려워 불리한 점만 있을 것 같았지만 그 모든 약점들을 극복해낼 수 있는 무엇이 발견되었다. TV 방자전에는 원작들을 뒤집는 기발한 스토리의 힘이 엿보였다. 춘향전만큼 원작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고대소설도 없을 것이다. 그런 다양한 해석과 가설이 TV방자전의 바탕이 되어주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먼저 TV 춘향전의 주인공들 캐릭터가 새롭고도 흥미롭다. 주인공 방자를 설명하기 전에 우선 이몽룡의 성격부터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일단 이몽룡은 천하의 난봉꾼이다. 서울로 유학 갔다가 남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끼니를 때우는 것보다 그 돈으로 가난한 집 여인들을 취하는데 탕진한다. 거기다가 눈치도 빨라서 남원 초입에 이르러서는 방자와 옷을 갈아입어 자기 대신 방자가 분노한 남편들의 치도곤을 맞게 한다.

춘향의 엄마 월매는 대단히 현세적인 인물로 원작이나 영화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월매란 존재는 춘향전이라는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건 달라지기 힘든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월매는 춘향을 이몽룡의 소실로 들이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모두 동원할 태세다. 기생으로서의 자기 삶을 딸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어미의 당연한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몽룡의 아버지 이참판은 아들의 과거를 위해 춘향이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방자에게 춘향을 몰래 범하도록 사주하는 인물로 월매의 현시욕과 쌍벽을 이루는 캐릭터다.

TV 방자전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춘향의 캐릭터다. 영화처럼 적극적인 성격인 것은 같지만 TV 방자전의 춘향은 현실적인 욕망에 자신을 꿰맞추려는 엄마 월매에 대한 반항심이 무척 강하다. 그래서 깊은 밤 춘향의 집 담을 넘어 이참판을 조심하라는 말을 전하러 온 방자를 끌어당겨서 대단히 적극적인 첫날밤을 보내고 만다. 물론 춘향이 단순히 월매에 대한 반항심만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신을 만나러 왔다가 향단이를 건드린 이몽룡에 대한 실망과 분노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는 방자에게 반한 것이 컸다. 월매는 이몽룡이 돌아오는 일정을 미리 알고 춘향과 향단을 광한루에 내보냈다. 원작에서처럼 춘향이 그네 타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질풍노도를 앓고 있던 춘향은 광한루가 아닌 계곡에서 과감하게도 옷을 벗고 향단과 함께 물놀이를 즐겼다. 그 장면을 몽룡과 옷을 바꿔 입은 방자가 우연히 목격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춘향과 향단 모두 방자를 몽룡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 착각은 그날 밤 바로 깨진다. 방자를 발견하고 장옷을 둘러쓰고 황급히 자리를 뜨는 춘향의 미색을 본 몽룡이 그날 밤 월매를 찾게 됐고, 그 자리에 몸종인 방자는 당연히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쉬운 여자는 싼 여자로 인식되기 때문에 월매는 몽룡에게 춘향을 만나려거든 낮에 다시 찾으라 한다. 그러나 꿩 대신 닭이라고 몽룡은 향단을 돈으로 유혹한다. 그러나 선선히 몸을 내준 향단이 가당찮게 첩으로 데려가라는 말을 꺼냈다가 몽룡에게 봉변을 당하게 되고, 그 때문에 방자는 신분을 들켜버리게 된다.

그리고 TV방자전의 주인공 방자는 소심한 면도 없지 않지만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죽을 각오도 할 수 있는 나름 강단 있는 종놈이다. 우연찮게 춘향과 통정하게 됐지만 춘향을 지키기 위해서 겁탈을 했다고 거짓 고백을 한다. 그렇게 해서 이야기의 흐름은 어떤 변수를 맞게 되는데 자세한 전개는 다음 회를 기다려야 한다. TV 방자전 1회는 반항 춘향과 순정 방자의 교통사고 같은 첫날밤으로 정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수백 번도 더 읽은 춘향전이라 스토리는 앉아서도 줄줄 꿸 지경인데도 TV 방자전의 스토리는 다 알 것 같으면서도 다음 전개가 궁금해진다.

물론 틈틈이 나오는 농도 짙은 정사신들이 몰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는 낯익은 배우들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긴장이 늦춰지지 않는 전개가 힘을 느끼게 한다. 19금 드라마라 대놓고 권하기는 저어되지만 고전의 발칙한 재해석에 흥미를 가진다면 TV 방자전은 심야의 한 시간을 투자할 만큼의 즐거움을 줄 것 같다. 또한 성적인 장면들을 최대한 여과시켜도 충분히 골계미 넘치는 스토리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캐스팅 : 방자 이선호 춘향 이은우 몽룡 여현수 향단 민지현 월매 이아현 변학도 윤기원
방영정보 11월 5일 토 24시 (4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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