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수애)의 알츠하이머 증세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연은 절대 치매가 아니며, 자기가 보이는 깜빡 증세가 누구나 보일 수 있는 증상이라며 애써 위로하고 있지요. 이제 서른 살인데 치매를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요. 치과에 간다고 하고 치매병원에 갔다 온 후 받은 처방전을 동생 문권(박유환)이 본 후, 장재민(이상우)도 알게 되고 재민과 지형(김래원)이 만나는 걸 보니 곧 지형도 알게 되겠지요. 한편, 향기 어머니 오현아(이미숙)가 향기 친척집 방문을 미룬 지형을 나무라며 '이 결혼 절대 못해!'라는 걸 보니 홧김에 한 말이지만, 왠지 향기와의 결혼이 이루어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도살장 끌려가듯 억지로 향기와의 결혼을 준비하는 지형은 딱 한 번만 서연과 통화하고 싶다고 하는데요, 서연과의 이별을 완전히 끝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겠지요. 미안하단 말도 서연에게 제대로 하지 못하고, 뭔가 찜찜한 게 남아 있다는 느낌도 들 겁니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서연에 대한 미련일까요? 서연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면 지형은 아마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일 거 같습니다. 그동안 부모님 뜻에 따라 억지로 끌려 다니며 우유부단하기만 했는데요, 아마 정신이 번쩍 들 겁니다. 초반 수애의 치매연기가 좀 지루하다 싶었는데, 4회에서 복선 같은 게 하나 나왔지요. 서연이 그동안 한 번도 찾지 않던 생모를 찾은 겁니다. 서연남매를 두고 간 생모는 누구일까요? 이미숙이 수애의 친모라는 시청자들의 추측에 대해 김수현 작가는 '아니다'라고 부정했지만, 그런 추측이 나온 이유가 있습니다.

4회에서 서연은 오랜만에 고모집에 들렀지요. 고모가 해준 청국장으로 저녁을 먹은 후 커피잔을 마주하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죠. 고모는 서연에게 시집 안 가느냐고 했지만, 서연은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에 대해 묻습니다.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구요. 치매증세가 나타나다보니 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생각을 못할까봐 그러는가보다 했는데요, 한편으로 이것이 복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그 복선 속에 향기 어머니 오현아와 사촌오빠 장재민이 있습니다.

서연의 사촌오빠 장재민은 서연이 가장 의지하는 남자죠. 재민이 사촌오빠만 아니라면 서연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1회부터 들었습니다. 서연이 고모보다 오히려 재민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는 걸 보면 사촌 그 이상의 감정도 부지불식간에 느껴집니다. 4회에서 고모집에 들렀다 나오는 서연과 퇴근하는 재민이 계단에서 마주쳤을 때, 나란히 계단을 내려오는 재민과 서연은 연인 모습이었으니까요. 서연을 바래다주는 재민, 그러나 뒷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서연 두 사람이 너무 애틋해 보였습니다.

향기 엄마 오현아가 지형을 대하는 걸 보면 너무 막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릴 적 코흘리개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사위라기보다 자식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럴 수도 있겠죠. 남편 노홍길(박영규)은 지형을 너무 닦달하지 말라고 두둔하는데, 오현아는 '향기 결혼 없던 일로 하고 싶다'며 지형에 대한 서운함이 하늘을 찌르더군요. 노홍길이 '결혼을 없던 일로 하는 이유가 뭐냐, 지형이 딴 살림이라도 차렸냐?'고 하자, 오현아는 남편에게 의부증을 보이는 듯 '그러는 사람은 딴 살림은 열두 번씩 차리냐?'며 의미심장하게 톡 쏘던데요, 평소 자식들에게 관심을 없는데 향기에게만은 예외인가요?

여기서 오현아의 캐릭터를 한번 뜯어볼까요. 오현아가 서연과 문권의 생모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너무 엉뚱한 생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초반 스토리 전개를 보니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오현아의 캐릭터를 보니 남편에 대한 의심이 깊어 의부증 수준이고, 거의 불행한 느낌이라고 돼 있네요. 병원 이사장 부인으로 남부럽지 않게 럭셔리한 삶을 사는데, 왜 불행을 느낄까요? 오현아 말대로 남편이 열두 번씩 딴 살림을 차리는 바람에 열 받아서 그럴 수도 있는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서연과 문권을 버리고 결혼을 해서 귀부인처럼 지내지만 평생 가슴 속에는 한으로 남을 테니까요.

김수현 작가가 정말 이런 복선을 깔아놓고 '천일'을 전개하고 있을까요? 어찌 보면 그동안 드라마에서 수없이 나온 기제인데요, 천하의 김수현이 흔해빠진 이런 장치를 쓸까요? 이에 대해 김수현 작가는 '천일' 공홈과 커뮤니티에 떠도는 추측성 글에 대해 트위터로 입장을 밝혔습니다. 작가가 시청자들의 예상에 해명을 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데요, 김 작가는 '극중 이미숙이 수애 남매 생모일 것이라는 점치기가 있었던가 본데 하하~ 사촌오빠 이상우가 수애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맞습니다. 그러나 사촌 누이 동생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배려가 전부, 숨겨놓은 카드(복선)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도 이미숙이 수애 친모란 생각이 드는 이유는 첫째 김래원-수애의 러브라인 가운데 등장한 사촌오빠 이상우는 수애를 친척 그 이상의 감정으로 대하고 있다, 둘째 극중 오현아가 향기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는 듯 쌀쌀맞게 대하고 있다, 셋째 서연이 한 번도 찾지 않던 어머니를 갑자기 찾는다 등 극 전개가 수애-이미숙이 모녀지간이란 생각이 들도록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20부작 중 4회가 끝난 상태인데요, 앞으로 이미숙과 이상우가 수애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유심히 지켜보면 알겠지요. 작가가 이례적으로 숨겨진 복선이 없다고 한 걸 보면 극 전개 방향이 미리 들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잘 키운 아줌마 열 처녀 안 부럽다. 주부가 바라보는 방송 연예 이야기는 섬세하면서도 깐깐하다.
블로그 http://fiancee.tistory.com 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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