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개인기, 뛰어난 드리블 능력, 그리고 순도 높은 골결정력까지 갖춰 팀에 기여한다면 그 선수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스타' '영웅'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겠지요. 하지만 경기를 이기기 위해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선수들 또한 존재합니다. 이런 선수들을 두고 영국 등 몇몇 나라에서는 '이름 없는 영웅(Unsung hero)'이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같은 선수가 그렇습니다.

K리그에 그런 '이름 없는 영웅'으로 선수 생활을 한 선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수는 무려 21년 동안 활약한 끝에 지난 22일 마침내 K리그 개인 통산 500경기 출장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남들보다 왜소한 체격, 뛰어난 개인기를 가졌던 것도 아닌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노력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늘 한결같은 포항 스틸러스 미드필더, 김기동, 이제 그는 더 이상 '이름 없는 영웅'이 아닌 '진짜 영웅'으로 거듭났습니다.

▲ K리그 필드플레이어 최초 통산 500경기 출장 달성을 이룬 뒤 후배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는 포항 김기동 (사진:포항스틸러스 제공)
철저한 준비와 노력, 오늘을 빛나게 하다

김기동은 1991년 포항 연습생으로 입단, 2년 뒤 유공으로 이적해 10시즌 동안 유공, 부천 SK에서 몸담으며 K리그 대표 미드필더로 떠올랐습니다. 우승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악바리 정신으로 불리한 조건들을 모두 떨쳐내고 '부천의 확실한 주전'으로 거듭나며 늘 꾸준한 경기력을 보였습니다. 이후 2003년에 친정팀 포항으로 복귀한 김기동은 포항의 정신적인 지주로 자리매김했고, 2007년 K리그, 2008년 FA컵, 2009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함께 하고 활약하며 후배 선수들과 함께 모든 꿈을 이뤘습니다.

이 모든 것이 김기동 특유의 노력, 열정이 없었으면 이뤄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기동은 연습생 출신으로 K리그 생활을 시작했던 선수였습니다. 특별한 장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체격(171cm)도 왜소해 '성공하는 선수'가 되기 위한 조건을 갖춘 선수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두드러지는 것보다 팀의 승리, 발전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다했습니다. 남들보다 더 뛰고, 더 이를 악물어 경기에 임했고, 평소에는 철저한 트레이닝으로 몸을 다지며 매 순간을 준비했습니다. 그런 김기동을 그와 함께 했던 감독들은 주목했고, 언제나 '김기동이 뛰면 믿는다'는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중용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빛을 발하더니 언젠가부터는 늘 조용히, 하지만 한결 같이 빛을 밝히는 선수가 됐습니다.

서른 살을 훌쩍 넘겨서도 김기동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강해졌습니다. 10여년 넘게 이루지 못했던 우승 꿈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관리 덕에 만든 강철 같은 체력,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의 플레이에 많은 이들은 더 그를 주목했습니다. 그 주목받은 정도 이상으로 김기동은 더 열심히 뛰었고 마침내 2007년 팀우승을 이끌어 냈습니다. 우승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시즌 베스트 11에 뽑히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이름 없는 영웅, 그는 이제 전설이다

이미 그는 그 해에 신태용 현 성남 감독이 갖고 있던 필드플레이어 통산 최다 출장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하지만 기록에 만족하지 않고 김기동은 더 열심히 뛰고 후배들보다 더 노력했습니다. 그 덕에 파리아스, 레모스, 박창현 대행, 황선홍 감독 등 4명의 감독이 거치는 와중에도 99경기를 더 뛸 수 있었습니다. 그가 뛸 때마다 K리그의 새로운 역사가 씌어졌고, 서서히 전설이 돼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22일, '제철가 라이벌' 전남을 맞아 후반 38분 교체 투입돼 500경기 통산 출전 기록 달성을 이뤘습니다. 상대적으로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 필드 플레이어가 21년 동안 500경기를 출전한 것은 정말 대단한 기록이었고, 김기동은 이를 정말로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그런 김기동을 아는 축구팬은 예상보다 많지 않습니다. 스타급 후배 선수들에 비해 화려함을 갖추지도 않았고 기술도 뛰어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여기에 국가대표 경력이 거의 없다는 것도 있습니다. 김기동의 마지막 국가대표 출전은 1997년 11월 1일 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 일본전입니다. 그러나 이런 약점을 극복해내며 K리그에서는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전설로 서서히 떠올랐습니다. 그가 출전하면 이제는 모든 것이 기록이 되고 전설의 반열에 더 높이 올라가는 수준이 됐습니다. 조용하고 뒤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해 팀에 기여한 '이름 없는 영웅'이었지만 그는 이미 '진정한 영웅'이 됐고 '더 큰 영웅'으로 떠오를 것입니다.

▲ 올해 신인왕 유력 후보인 광주 이승기를 제치기 위해 드리블을 시도하는 포항 6번 김기동. 스무살 가까이 차이 나는 후배 앞에서도 그는 늘 당당한 선수다. (사진: 김지한)
어쩌면 김기동의 마지막 목표는 개인 40골-40도움 달성과 팀 우승일 것입니다. 현재 김기동은 39골-40도움을 기록하고 있어 1골만 더 넣으면 K리그 역사상 13번째로 통산 40-40 클럽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팀을 위해 더 헌신하겠다며 노력하는 그의 열정, 의지는 더욱 빛나 보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포항이 더 강한 팀으로 떠오르는 힘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4년 만에 K리그 정상을 꿈꾸는 포항에 큰 동기부여로도 작용할 것입니다.

팀에 도움이 되는 베테랑, 그런 의미에서 그라운드에서 포항 6번 등번호를 보면 왠지 모를 설렘과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낍니다. 늘 한결같은 열정을 가진 사나이, 김기동의 플레이는 앞으로도 계속 많은 K리그팬들에 감동을 선사할 것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