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황당한 상황을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현장에서 볼 줄은 몰랐습니다. 카타르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했다는 팀의 비매너 플레이에 경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은 그렇게 허무하게, 씁쓸하게 끝났습니다. 중동 축구의 수준이 여전히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아수라장이 된 수원 빅버드 ⓒ 김지한

수원 삼성과 카타르 알 사드가 맞붙은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이 열린 수원 빅버드. 이 엄청난 사건의 발단은 수원이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37분에 벌어졌습니다. 급할 것도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 한 순간의 이 장면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치욕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시아 축구의 격을 한참 떨어트리는 장면이었습니다.

후반 37분, 알 사드 문전 앞에서 수원 최성환과 알 사드 선수 1명이 볼경합을 하다 강하게 부딪혔고 공격을 하던 수원 염기훈이 왼쪽 측면에서 볼 아웃을 시켰습니다. 수원이 공격을 펼치다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끊어졌던 만큼 알 사드가 소유했던 볼은 당연히 수원에게 넘겨져야 함이 마땅했습니다. 규정에는 없지만 축구계에서는 불문율과 같은 매너플레이로 전세계 어디에서나 거의 예외없이 적용돼 왔습니다. 더욱이 알 사드는 1-0으로 앞서 있어 급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후반 37분, 볼경합 과정에서 부딪혀 넘어진 수원 최성환-알 사드 수비수

마마두 니앙의 문제의 골 장면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스로인을 통해 골키퍼 정성룡에게 볼을 넘기는가 했지만 알 사드 공격수 마마두 니앙이 이 볼을 잡고 그대로 드리블해 정성룡을 제치고는 두번째 골을 넣었습니다. 당연히 수원 공격권으로 넘어가는 줄 알고 멍하니 서 있던 수원 선수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골에 알 사드 코칭스태프와 벤치가 더 흥분해서 좋아하는 모습은 황당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에 수원 선수들은 곧바로 세레머니를 하는 니앙과 알 사드 선수에게 다가가 항의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끼리 뒤엉켜 서로 멱살을 잡고 고성이 오갔고, 코칭스태프들 역시 격렬한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잠시 후, 이 상황에 격분한 한 관중이 난입해 알 사드 골키퍼에 극렬히 항의했고, 알 사드 공격수 케이타가 관중의 목을 조르는 등 폭행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이 장면을 바로 앞에서 본 염기훈은 케이타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면서 흥분한 관중을 진정시켰고, 이것을 시작으로 양 팀 선수들 뿐 아니라 벤치멤버, 코칭스태프, 양 팀 관계자가 모두 나와 집단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초유의 대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경기장에 난입한 관중의 목을 조르며 폭력을 행사하는 알 사드 케이타. 이를 뜯어 말리려는 수원 염기훈

수원 삼성 선수를 폭행하려던 케이타를 보고 이를 떼어내려는 고종수 코치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 수원 빅버드 그라운드

포사티 알 사드 감독에게 항의하는 고종수 코치

양 팀 선수들이 분리되고 약간 진정 기미를 보인다. 경기장에는 물병이 난입돼 선수들이 던지지 말아달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경기 재개를 위해 제자리로 가려 하지만 쉽게 흥분이 가라앉을 기미가 나타나지 않았다

알 사드의 메사드 알리가 피를 흘리며 나가고 있다

니앙의 비매너 골로 비롯돼 악화된 상황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원 선수들이 항의할 때 알 사드 선수들 몇몇은 주먹이 먼저 나오는 장면을 보였습니다. 선수들 간의 극렬한 몸싸움이 계속 되자 몇몇 다른 선수들은 이를 말리려 하고 서로 뒤엉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코칭스태프 간의 다툼도 있었습니다. 포사티 알 사드 감독과 고종수 수원 코치 간에 한참동안 설전이 이어졌고, 포사티 감독은 '문제될 게 없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어이없는 설득, 변명'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사이 수원 삼성 그랑블루 서포터 석에서는 물병을 그라운드에 던져 알 사드의 비매너 플레이에 항의했습니다. 워낙 상황이 좋지 않다보니 심판진이나 AFC 관계자들도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약 7-8분여가 지나고 상황은 겨우 수습이 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 따른 후유증은 엄청났습니다. 주심은 수원 스테보, 알 사드 케이타에게 퇴장을 내렸고 고종수 코치에게도 퇴장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사이에 페어플레이 소신을 지키려 했던 알 사드 이정수가 자진해서 경기장을 나갔습니다. 추가 시간에는 니앙이 경고 누적 퇴장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케이타에게 퇴장 명령을 내리는 주심

이번 사태의 원인 제공을 수원에서 먼저 했다고 주장하는 포사티 알 사드 감독(사진 왼쪽)

격앙된 상태가 지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추가 시간 10분이나 주여졌지만 더이상 골은 나오지 않았고, 경기는 2-0 알 사드의 '씁쓸한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정수가 알 사드 동료에게 주장했던 '한골을 내주자'는 말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경기 후 포사티 알 사드 감독은 "우리 팀에 중요한 두 명의 선수가 퇴장 당했다"면서 마치 이것이 '황당한 골'의 보상이라는 듯 한 뉘앙스의 발언을 했습니다.

수원이 완벽하게 잘했다고 하고 모든 것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격앙된 분위기에서 관중이 난입하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경기장에 물병이 날아든 것은 잘못됐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원인 제공은 수원이 했다"고 한 포사티 감독의 말과는 반대로 이번 일의 원인 제공은 이 사진이나 영상에서도 확연히 드러나 있듯이 분명히 알 사드가 했습니다. 황당한 골을 넣고 난입한 관중에 폭력을 행사한 것은 4강 2차전이 열리기 전까지 AFC 측에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함이 마땅합니다. 이날 경기 감독관이 이 부분을 정확하게 담아 AFC 차원에서 징계 수위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으니 일단 두고볼 일입니다. 그랑블루를 비롯한 우리 축구팬들, 그리고 현장의 언론인, 관계자들이 이 씁쓸한 광경을 두 눈 앞에서 정확히, 제대로 지켜봤다는 것을 AFC나 알 사드 모두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경기를 이기고 좋아하는 알 사드 선수들의 양심, 참 알 만 했습니다. 저렇게 해서 브라질을 이기고 FC 바르셀로나를 이긴다 했을 때 높이 평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순간만 좋아하고 본질을 모르는 알 사드의 추한 행태에 아시아 축구 전체가 상처만 입었던 경기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흥분하지 않으려 해도 흥분할 수밖에 없었던,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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