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가 내년 3월 프랑스 니스 세계선수권을 포함한 2011-2012 시즌 어떤 대회에도 출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연아는 지난 1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결정을 내렸다. 지난 해 밴쿠버올림픽 이후 여러 일로 바쁘게 지내고 대회 준비를 병행하면서 너무 달려오기만 한 것 같아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시즌에는 대회에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연아가 대회에 한 차례도 출전하지 않고 한 시즌을 쉬는 것은 주니어와 시니어 시절을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김연아는 그러나 이번 선언을 '잠정은퇴'로 생각해도 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우선 이번 시즌에 대해서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시즌을 건너뛰는 것이 곧 은퇴는 아니다."라며 "그 이후에 대해서는 내년에 말씀드리겠다”라고 밝혀 이번 발표가 결코 은퇴가 아님을 강조했다.

▲ 하버드대학교 자선 아이스 쇼에 참석했던 '피겨 퀸' 김연아가 18일 오후 영종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세계선수권대회 참가 여부 등을 묻는 취재진에게 "이번 시즌에는 대회에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다. 김연아는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창립총회에 참석하고 광고 촬영과 행사 등 밀린 일정을 소화하며 태릉에서 개인 훈련을 할 계획이다.ⓒ연합뉴스
김연아가 '시즌 스킵'을 선언하면서 국내외 피겨계는 크나큰 실망감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선 내년 3월 프랑스 니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여자 싱글 부문에서 한국 피겨는 2장(예선 출전권 1장 포함)의 티켓을 확보해 놓은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 주니어그랑프리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김해진. 박소연 등 1997년생 여자 선수들은 대회 연령 제한(만 15세 이상)에 묶여 뛸 수 없다. 곽민정 정도를 제외하고는 김연아를 대신해 세계선수권에 나설 선수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고, 국제빙상경기연맹(ISU)도 지난 시즌 세계선수권자인 안도 미키(일본)가 일찌감치 '시즌 스킵'을 선언한 가운데 김연아마저 '시즌 스킵'을 선언, 각종 대회 흥행에 적지 않은 타격이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김연아의 '시즌 스킵'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김연아는 지난 4월 모스크바 세계선수권 출전 이후 일찌감치 2011-2012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 불참을 선언했다. 그리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활동과 방송 출연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낸 데다, 이후에도 다양한 스포츠 외교활동을 펼쳐왔고 앞으로도 학업과 민간 스포츠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일정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이번 김연아의 발표를 두고 팬들은 이번 결정이 전적으로 김연아 자신의 의사에 따른 것이므로 존중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지만, 상당수의 누리꾼들은 김연아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후 2년째 사실상 선수생활을 쉬고 있으면서도 고집스럽게 '현역' 신분을 유지하는 이유가 모두 돈벌이 때문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론 김연아 스스로도 이와 같은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아가 이번에서 '시즌 스킵'을 선언하면서도, 은퇴와 관련된 질문에는 '잠정'이라는 꼬리표도 달지 못하게 한 것은 그가 얼마나 '은퇴'라는 단어에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지 짐작케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신중한 태도는 결국 매니지먼트사이자 자신이 이사로 올라 있는 '올댓스포츠'의 입장을 고려한 때문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 김연아가 19일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창립총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연아 스스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현 시점에서 김연아가 다시 예전과 같은 선수로 돌아갈 가능성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19일 김연아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에 선임된 것이나, 2012 동계유스올림픽 홍보대사로 선정된 일 등 스케이팅 외적인 역할이 주어질 때마다 김연아의 온전한 현역 복귀 가능성은 점점 '제로(0)'쪽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봐도 된다. 과거의 경우를 살펴보면 현재 김연아가 스포츠 외교사절로서 내지 스포츠 행정가로서 하고 있는 일들은 대부분 현역에서 은퇴한 선수들이 하는 것들이다.

김연아 스스로는 체력 유지를 위해 꾸준히 훈련을 하고 있고, 국내에 머무는 동안 태릉에서 대표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쟁의 부담을 내려놓은 상황에서 하는 일들로 그가 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뛰던 과거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이제 김연아는 '은퇴'를 말해도 괜찮을 듯싶다. 자신의 이름을 건 아이스쇼가 이미 하나의 '작품'으로서 국내외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고,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 스포츠계에서 지니게 된 영향력 또한 막강하다. 김연아 자신의 긍정적이고 건강한 이미지가 여전히 상업적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김연아가 지금 '은퇴'를 말한다 해도 '올댓스포츠'의 운영을 포함해 김연아를 둘러싼 모든 일들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은 많지 않다.

한국 피겨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이른바 '김연아 키즈'의 눈부신 성장세를 감안할 때 2-3년 정도면 이들이 국제무대에서 충분히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단계에 오를 수 있다고 보이기 때문에 김연아 스스로 이 부분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될 듯하다.

특히 김연아 자신이 지금 은퇴를 선언한다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에 대한 정신적 준비가 된다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어정쩡한 스탠스를 유지하는 한 김연아는 시시때때로 은퇴와 관련된 질문에 대답해야 하고 불필요한 악플러들의 공격에 시달려야 한다.

차라리 일단 은퇴선언(잠정은퇴라는 단어도 괜찮아 보인다)을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솔직한 일이고 스스로를 편안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김연아가 그동안 여러 기회를 통해 민간 스포츠 외교관으로서 충분한 능력을 발휘한 만큼, 이번 기회에 본격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외교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공부와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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