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원초적인, 가장 잘 알려진, 하지만 가장 잘 이해되지 않는 주제에 대해 또 다른 해석과 이야기를 덧붙인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묘한 도전의식을 고취시킵니다. 어떻게 내용을 변형했을까, 무슨 이야기를 덧붙였을까, 등장인물들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죠. 예상을 해보기도 하고 나름의 스토리 라인을 구성해서 대입시켜보기도 하는 재미. 잘 알려진 내용을 다른 버전으로 접한다는 재미가 바로 이런 것이죠. 인류 최초의 범죄.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뮤지컬, ‘롤링 포 이브’를 보며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두가 뻔히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창조하고, 그 안에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을 만들어 자신의 동산에서 살게 합니다. 그리고 독처하는 것이 보기 안 좋으셨던 하나님은 그의 갈비뼈를 취해서 이브를 배필로 짝지어 주죠. 그리고 그 창조물의 완벽함은 사탄의 꾐에 넘어간 이브가 선과 악을 분별하는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면서 깨져버립니다. 최초의 인간, 최초의 사랑, 그리고 최초의 타락. 이 매혹적인 주제들이 모두 섞여 있는 내용들은 수많은 토론과 해석, 상상과 재창조의 주제였습니다.

당연하죠. 완벽한 신이 왜 선악과라는 그런 위험한 유혹을 만들어 놓았을까. 인간은 왜 그런 선택으로 스스로를 타락시켰을까. 과연 그것을 타락으로 봐야 할 것일까. 신은 정말 인간을 사랑하는 것일까. 자신의 입장에 따라, 생각의 방향에 따라 생각의 갈래는 무수하게 뻗어가고 다양한 아담과 이브를, 심지어 하나님을 탄생시켰습니다. 폴링 포 이브 역시도 이런 고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짐짓 유쾌한 사랑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이런 복잡한 질문들이 가득 담겨져 있죠. 신은 왜 인간에게 선악과를 주었을까. 과연 에덴은 낙원이었을까 하는 근본적인, 하지만 결코 풀 수 없는 의문이죠.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른 수많은 선배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심오한 철학적인 분석보다는 낙원 안에서 뛰어 놀던 두 연인, 아담과 이브의 사랑과 둘을 향한 강한 결속을 더욱 강조하죠. 먼저 선악과를 먹고 쫓겨난 이브와 그를 그리워하는 아담의 절절한 애정. 그리고 에덴을 포기하고 사랑을 찾아 떠나는 무모하지만 진실한 사랑. 천사들마저 그들의 사랑에 반해 서로 또 다른 사랑에 빠질 만큼 달달한 러브 스토리로 살짝 방향을 바꾸거든요. 매우 현명한, 재미난 소재 비틀기이죠.

그리고 이런 귀여운 재구성은 단순하지만 인상적인 무대와 개성 있는 캐릭터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조금은 엉큼하고 능구렁이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순수한 소년인 아담을 연기하는 봉태규는 그 자신만이 가진 매력을 적절하게 꺼내어 놓습니다. 씨야의 해체 이후 활동이 궁금했던 이보람의 이브 변신을 보며 그녀의 성장을 기대하는 재미도 쏠쏠하구요. 탄탄한 경험을 뽐내는 하나님들(내용을 보시면 이 복수의 의미를 알게 되시겠죠.)과 천사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입니다. 사실 거창한 소재의 무게나 해석의 기발함보다는 단 6사람만으로도 이런 꽉 찬 무대를 보여줄 수 있음에 더 놀라는 작품이었어요.

귀에 쏙 들어오는 노래는 많지 않지만 각 노래 모두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면서 내용을 편안하게 전개합니다. 가장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내 천국은 바로 너’라는 고백송이야말로 이 뮤지컬의 포인트가 결국은 달달한 러브스토리임을 자백하고 있구요. 그저 마음 편안히 사랑하는 연인과 손을 꼭 잡으며 볼만한 잘 짜인 작품입니다. 충무아트홀 블랙홀에서 11월 13일까지 공연 예정되어 있습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봐야 할 작품이니 조금 서두르시는 게 좋을 거예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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