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은 자칫 사장될 뻔한 영화 도가니가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다. 아니 변화시키는 것 같았다. 실제로 정부는 도가니를 보고 분노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춰 빠르게 대응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정부차원의 대책은 말단 검사와 판사를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다. 15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적장애인 여성들이 명백한 성폭력과 성착취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소조차 하지 않는 기가 막힌 사연들을 소개했다.

먼저 소개된 사연은 한 남자가 지적 장애가 있는 두 여성을 무려 5년간이나 자기 집에 감금한 채로 성폭행과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다. 그것도 부모집에서 불과 1.2Km 떨어진 아파트에서 벌어진 천인공노할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행은 납득할 수 없게 흘렀다. 검찰은 장애인 성폭력 혐의가 아닌 미성년자 유인혐의만 적용했고, 판사는 초범이라며 형을 줄여 3년형을 선고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성폭력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 사건을 변론한 변호사는 검찰과 판사를 싸잡아 바보라고 말했다. 납치 당시 18살이었던 장애인을 5년간 지속적으로 폭력이 동반된 성착취를 자행해온 가해자에게 검찰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지적장애인인 피해자들이 납치되어 감금되고 성적 착취를 당한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 채 5년의 시간을 보냈지만 검사는 그것의 심각성을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가해자가 두 여성과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몰래 촬영한 동영상이 중거로 제출됐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기소도 없었고, 당연히 처벌 또한 없었다.

그 이유는 다음 사건을 통해서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상주에 사는 피해자는 지적수준이 3,4세에 불과한 심한 지적장애를 안고 있다.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 학교 교사 등이 피해를 인지하고 고소에 나섰지만 결과는 불기소처분이었다. 이유는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어 범행과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적장애인의 피해는 도가니의 청각장애인보다 입증이 훨씬 더 어렵다. 말을 듣거나 하지 못하더라도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지적 능력만 있다면 수화나 글을 통해서 사실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도가니에서 쌍둥이라는 점을 이용해 혐의를 벗어나려는 변호사의 잔꾀를 영리한 연두가 수화를 통해서 교장을 구별해내는 것처럼 청각장애는 범죄입증에 장애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적장애인의 경우는 듣고 말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한 인지능력이 부족해 정확한 진술이나 가해자 지목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추적한 지적장애인 성폭력사건이 모두 불기소된 것은 검사나 판사 모두 지적장애인에 대한 이해 없이 일반인의 성폭력사건처럼 처리하려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한 정신과 의사는 지적장애인에게 같은 말을 세 번만 질문을 해도 그것 자체가 기억이 된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 수사에 있어서 지적장애인에 대한 질문은 반복적으로 하는 것은 스스로 진실을 변질시키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의사는 그런 행위를 부검해야 할 시신을 훼손시키는 것과 같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지적장애인의 수사에 절차보조인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외국인에게 통역을, 청각장애인에게 수화 통역가를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직접 질문하거나 답변하게 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장애인 성폭력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나선 한국정부에서는 이런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 않다. 언제나처럼 소나기나 피해보겠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결국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부당하게 당하는 모든 피해에 대해서 강자 중의 강자인 법관들이 그것을 수호할 분명한 의지가 없다고 볼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처음 소개됐던 양주 두 여성 성착취 사건은 적반하장으로 성폭력 가해자가 3년형에 불복하여 곧 항소심이 열린다고 한다. 1심의 결과로 유추한다면 검사와 판사가 이 사건을 피해자 입장에서 재심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그 재판을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만이 아니라 시민사회 모두가 이 사건을 도가니와 똑같이 분노하는 마음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도가니로 인해서 광주 인화학교의 오랜 비리가 드러났듯이 이 억울한 두 여성 장애인의 상처를 씻어주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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