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은 선후배 사이인 박철수 감독과 김태식 감독이 '불륜'을 소재로 하여 각자가 연출한 두개의 에피소드를 묶은 영화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드레스로 이슈가 된 오인혜의 출연작이기도 합니다. 오프닝은 두 감독과 제작자로 보이는 다른 한 분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주 짧게 어떤 영화를 작업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고, 그 후에 배우를 캐스팅하는 장면까지 보여집니다. 몰입을 방해하기에 충분한 장면인데도 삽입을 고집한 걸 보면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이 실험적인 영화임을 시사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붉은 바캉스

김태식 감독이 연출한 <붉은 바캉스>는 한 젊은 여성과 중년 남성의 불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6년 전부터 만나 불륜으로 지낸 두 사람은 여름을 맞아 바캉스를 떠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남편의 바람을 눈치 챈 무시무시한 아내가 그를 데리고 외딴곳으로 들어가 두 사람의 관계를 추궁합니다. 남편이 솔직하게 털어놓을수록 아내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급기야 휘발유를 부어 화형식을 거행하려 합니다. 한편 불륜의 상대인 여성은 남성의 아내가 보낸 문자 메시지임을 까맣게 모르고 그를 만나러 갑니다. 이것으로 마침내 한 펜션에서 삼자대면이 이뤄지게 됩니다.

<붉은 바캉스>는 남자와 여자를 굉장히 어리석은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사랑을 말하면서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죽일 듯이 싸우며 소유욕과 집착을 드러냅니다. 이들은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유약한 육체와 정신의 소유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대가로 여자가 남자에게 지불하는 건 역시 눈부시게 아름다운 육체를 통한 성욕의 해소입니다. <붉은 바캉스>의 두 여자 캐릭터는 시쳇말로 전혀 쿨하지 못합니다. 한 사람은 맹하기 짝이 없는가 하면, 다른 한 사람은 남성성의 폭력적인 단면을 그대로 이식한 마초적 여성입니다. 이들은 페미니즘의 신봉자나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여성분들이 보기에 한심하기 짝이 없을 듯합니다. 후자는 그나마 불륜을 저지른 두 남녀를 처단한다는 면에서 대리만족이나마 심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 사이에서 남자는 사랑 따위 믿지 않는다는 말로 두 사람을 유린합니다. 아내와 불륜녀가 싸우는 동안에도 도망치기에 급급한 남자는 그저 색욕에 눈이 먼 동물일 뿐입니다. 불륜녀의 옷 사이로 은밀하게 드러나는 가슴과 유두를 의도적으로 더듬는 짓궂은 카메라는, 관객 또한 그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습니다. 결국 이 남자라는 동물은 제도권하에 놓인 덫에 걸려 자신이 가진 고유의 기능(?)을 상실하는 형벌(?)을 받습니다. "바캉스는 끝났지만 여름은 계속된다"는 자막에 이어 다리 위에서 울부짖고 있는 남자를 보고 있노라니, 인과응보나 응징의 통쾌함보다는 측은함이 앞섰던 건 역시 저 또한 어쩔 수 없는 남자이기 때문일까요?

검은 웨딩

많이 기다리셨죠? 어쩌면 앞에 글은 다 뛰어넘고 곧장 여기로 왔겠군요. <검은 웨딩>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최대의 화두였고,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을 향한 호기심을 키우게끔 만든 오인혜의 출연작입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오인혜는 교수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는 제자로 출연합니다. 두 사람은 첫 만남 이후 끊임없이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며 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자는 결혼한다는 말을 꺼내면서 교수에게 주례를 부탁합니다. 스스로를 파렴치한 놈이라고 지칭하면서도 교수는 자신의 불륜상대이자 제자의 부탁을 들어줍니다.

<검은 웨딩>의 이야기는 아주 단순합니다. 교수와 불륜에 빠졌던 제자가 갑작스레 결혼을 선언하고, 주례를 부탁하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 다 파렴치의 끝을 보여줍니다. 후에 결혼식을 마치고 불륜의 현장이었던 곳으로 돌아온 교수 앞에 공항에 있어야 할 제자가 나타납니다. 그러는 와중에 영화는 플래쉬백을 거듭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를 처음부터 되짚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현재는 흑백으로 과거는 컬러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억은 선명한데 반해 현재는 불분명한 화면은 곧, 결혼식 후에 교수를 찾아온 제자는 그의 상상이 빚어낸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아울러 이 상상은 교수의 집착과 불안이 형성한 가상의 세계에 다름 아닙니다.

영화감독이기도 한 교수는 일관되게 자신의 작품에서 '불안'을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도 불안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고 말합니다. 제자와의 불륜을 통해 비로소 보여지는 그의 불안은 어쩌면 '고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누군가가 자신의 곁에 있어야 하고, 그를 사랑해야 하며, 육체적 행위를 통해 그것을 확인해야 떨칠 수 있는 고독 말입니다. 제자와의 불륜 중에 미친 듯이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고독에서 벗어나려는 애처로운 몸부림이요 광기며 강박증에 가깝습니다. 제 추측대로 혼자 남겨진 후에 자신에게 오는 제자의 모습을 상상한 것이라면, 이 또한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검은 웨딩>에서 교수가 보여주는 행동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지독히도 외로운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캐릭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

첫 번째 에피소드인 <붉은 바캉스>는 아주 유쾌한 연출로 이뤄졌습니다. 비록 실험적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곳곳에 숨겨진 의미와 메시지 등이 있어 이해하기 쉬운 영화는 아닙니다. 물론 제게도 그랬고요. 그렇다고 애써 힘들게 골머리를 앓아가면서 해석에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즐기더라도 활기찬 리듬과 독특한 유머 코드가 많아 꽤 재미있는 영화거든요. 반면에 <검은 웨딩>은 박철수 감독의 영화답게 차분하고 진중한 연출이 호흡을 느리게 가져갑니다. 동시에 영화를 이해하는 데는 <붉은 바캉스>보다 이쪽이 조금 더 어렵습니다. 예전부터 실험정신으로 충만했던 분이라 <검은 웨딩> 또한 쉽사리 알아차리기 힘든 철학적이고도 현학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소재를 가진 두 영화를 보면서 약간은 불륜을 옹호하는 듯한 인상도 받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옹호보다는 해명이나 변명이라고 해야겠군요. 공히 조선묵이 연기한 <붉은 바캉스>와 <검은 웨딩>의 남자는 흡사 제도권의 희생양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전자에서 다리 위에 올라 남자가 울부짖게 되는 계기를 표현한 데 담긴 은유, 후자에서 결혼이라는 고전적 가치관의 속박에 매인 여자와 그로 인해 고독을 맞는 남자를 보면 그렇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붉은 바캉스>의 남자는 본능에 충실해 섹스에 집착하는 우매한 동물처럼 보여진다면, <검은 웨딩>의 남자는 운명적으로 늘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는 처지에 기인한 행동이 불륜으로 맺어졌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에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 - 설사 그것이 섹스일 뿐이라 하더라도 - 해야 한다는 주장처럼 들립니다. 제도적으로 남녀를 묶는 결혼을 한 후에도 혼자라는 것을 느끼면 필연적으로 갈구할 대상을 찾는다는 것이죠. 더 나아가 인간은 고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기에 늘 어디에나 불륜이 존재하며, 이것은 사회나 법이 구축한 제도로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검은 웨딩>의 마지막 장면은 꽤 인상적입니다.

★★★☆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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