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의 어느 뜨거운 여름날, 나는 난데없이(?) 인도에 갔다. 한 달 정도밖에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하루하루가 고행 그 자체였다. 한국사회에서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곳에선 전혀 ‘상식’이 아니었다. 델리 공항에 도착한 첫날부터 사기를 당했고, 평균 기온 40도의 더위에 몸이 못 견뎌 입 주변에 하얀 진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인도에서 고생한 것 중 단연 압권은 바로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레(leh)’로 가는 길이었다. 인도 북부 잠무카슈미르 지역의 동쪽에 위치한 그곳. 평균 해발고도 3,250m. 5000m의 히말라야 산맥 두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곳. 여행책자에서 봤을 땐 “그런가 보네”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더랬다.

레로 가는 길. 허름한 지프차에 몸을 싣고 18시간 동안을 달렸다. 그다지 커다란 차도 아니었건만 1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몸을 구겨 넣었다. 포장도로는 얼마 되지 않았다. 히말라야 산맥의 크고 작은 돌들로 인해 몸이 1분 1초도 쉬지 않고 흔들렸다. 일행의 일부는 고산병에 시달려 토하고 난리였다.

분명 1차선 도로건만 건너편에서 차가 달려오곤 했다. 2대의 차가 설 수 있는 공간이 없는데 말이다. 바로 옆은 3000m 낭떠러지. 건너편의 차가 비집고 들어와 내가 탔던 지프차의 바퀴 하나가 3000m 허공 위에 들린 순간들도 많았다. 차가 굴러 떨어져 당장 죽는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들이었다.

5월에서 8월 사이에만 열리는 그 길. 희소성에 묘한 매력을 느껴서 강행한 길이었다. 후회를 100만번 쯤 하고, 지나온 인생길과 당시의 고민들을 200만번 정도 되돌아봤다. “제발 살게 해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얼마나 간절히 외쳤던가.

사진은 그렇게 절반쯤 제정신이 아닌 상황에서 찍은 것이다. 해발 5000m 남짓한 곳에 자리잡은 넓은 평야. 히말라야 산봉우리의 끝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매우 신비로웠다. 불과 몇 분전까지 죽음의 위협을 느꼈건만 마음은 이내 놀라울 정도로 평안해졌다. 이 정도의 고통쯤은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인도에 다녀온 이후, 한동안 대학생활과 취업활동을 하며 인도에서의 일들 따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힘든 상황에선 어김없이 이 사진이 떠오른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당시의 상황들이 절절하게 떠오른다. 물론 그때만큼은 아니겠지만.

히말라야 산맥에 그림자를 드리웠던 구름들과 그 구름 밑을 달려가던 지프차. 18시간 동안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스스로를 다잡았던 순간들. 몇 개의 낭떠러지를 지나 마주한 그림 같은 절경. 이 모든 게 끝난 뒤 레에 도착해서 올려다보았던 하늘의 주먹만한 별들.

이런 것들을 떠올리면 나는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작고 미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는다. 내 앞에 놓인 힘든 상황과 고민들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고 동시에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듯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늘 마음에 이 사진을 품고 산다. 이 사진 덕분에 매일 아스팔트의 ‘빌딩 숲’을 헤매면서도 실상 내가 지내는 곳은 ‘피아노의 숲’이라고 생각하며 살 수 있다. 만화책 <피아노의 숲>에서 주인공 '카이'군이 마음껏 피아노를 치며 자신의 순수함을 지켜나가는 그 장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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