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이진택과 이명선- “불모지 한국 육상 남자 높이뛰기와 여자 투포환의 전설”

스포츠 종합대회의 기초 종목으로 육상, 수영을 꼽습니다. 가장 많은 메달이 걸려있기도 하지만 맨몸으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동작을 수행하면서 한계를 뛰어넘는 모습이 기초종목의 요소에 가장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대구광역시에서 열린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육상의 묘미를 제대로 느꼈습니다. 대구 세계육상대회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뛰기 위한 전 세계 선수들의 치열한 노력은 지켜보는 이들을 흥분하고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비록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던 우리나라 선수들에도 박수를 보낼 만했습니다.

우리나라 육상하면 마라톤을 쉽게 떠올립니다. 황영조, 이봉주 등이 올림픽에서 금, 은메달을 땄고, 지난해에는 지영준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마라톤 강국 위상을 다시 높였습니다. 하지만 마라톤을 제외한 다른 종목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영웅들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선수들은 전국체육대회를 통해 국내 최강자의 면모를 확인시키며 육상계의 전설로도 남아 있습니다.

▲ * 1997년 5월 18일 부산에서 열린 ‘제2회 동아시아 육상대회’ 출전한 남자 높이뛰기 이진택 선수 관련 기사. (<경향신문> 97년 5월 19일자)
이진택은 한국 높이뛰기의 역대 최강자로 꼽힙니다. 하계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등에서 금메달을 따낸 바 있으며, 올림픽, 세계선수권에서도 결선에 올라 한국 선수로는 두 대회에 모두 결선에 진출한 유일한 선수로 남아 있습니다. 1996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그랑프리에서는 이 대회 한국인 첫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2m34 한국 기록도 그가 보유하고 있으며, 2003년 은퇴할 때까지 국제대회에서 ‘높이뛰기 강자’로 꾸준하게 주목받았습니다.

이진택이 간판선수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전국체육대회 덕분이었습니다. 이진택은 경북대 재학 중이던 1991년 제72회 대회부터 2001년 제82회 대회까지 11회 연속 정상 자리를 밟았습니다. 1995년에 열린 제76회 대회에서는 2m30을 뛰어 대회 기록도 보유했는데요. 육상 남자 선수들 가운데서도 이 같은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을 정도니 이진택의 꾸준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이 갑니다.

남자 육상에 이진택이 있다면 여자 육상에서는 포환던지기 스타 이명선이 있습니다. 이명선은 1994년 제75회 전국체전부터 2005년 제86회 전국체전까지 무려 12년 동안 정상 자리를 지키며 투포환 최강자로 우뚝 섰습니다. 특히 12연패를 달성한 2005년 전국체전에서는 대회 직전 아버지를 여읜 아픈 순간에서도 최고의 실력으로 정상에 올라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이명선 역시 이진택과 더불어 한국 육상에 큰 족적을 남긴 선수였습니다. 11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면서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등에 잇달아 출전했던 이명선은 1999년 세계선수권에서 결선에 올라 10위를 차지해 지금까지 한국 여자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세계선수권 톱10에 진입한 선수로 남아 있습니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선수생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던 이명선의 투혼은 지금도 많은 육상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대구 세계육상대회를 계기로 한국 육상은 많은 교훈과 숙제를 안으며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새 출발의 첫 무대가 바로 이번 제92회 전국체육대회입니다. 세계 1위는 아니었지만 꾸준한 실력으로 세계 정상급, 국내 최고 실력을 보여주며 숨은 영웅으로 주목받던 이진택, 이명선의 뒤를 이을 선수들의 탄생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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