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도 없고, 나경원도 없다. '측근 비리를 철저하고 신속하게 수사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만 있고, 서울시장 후보들은 그저 기싸움, 난타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방송 뉴스가 그렇다. 개그콘서트의 흘러간 유행어를 빌자면 '같기도 뉴스'다. 보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하는 것 같기도 한.

신재민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SLS그룹의 법인카드를 들고 대선 전후에 미국을 다녀왔단다. 대선 캠프에서도 따로 돈을 받아갔다는 증언도 나왔다. 삼척동자도 유추할 수 있다. BBK 때문이다. BBK 사건의 핵심 당사자들이 당시 미국에 있었다. 신 전 차관은 에리카 김을 만났다고 한다. 놀라운 뉴스다. 뉴스의 가치만으로 놓고 보자면 올해 나온 정치 관련 뉴스 가운데 수위를 다툴 무게다.

▲ MBC, KBS, SBS 사옥 ⓒ미디어스

BBK가 무엇인가? 이명박 정권의 상징이다. 이상돈 중앙대 법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명박 정권을 상징하는 것이 BBK와 4대강이다. BBK는 MB 정권의 태생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건이다" 신 전 차관이 대선 전후에 미국을 오가며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돈을 썼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게 방송 뉴스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을 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방송국 내부에도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주장, 의혹, 혐의일 뿐이라는 이유로 다루지 않았다면 더 문제다. 이명박 정부 들어 방송 뉴스들이 주장, 의혹, 혐의를 어떻게 다뤄왔는지는 스스로 더 잘 안다. 가깝게는 곽노현 교육감의 사례에서 조금 멀리는 한명숙 전 총리 문제 그리고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문제에 이르기까지 방송 뉴스는 주장, 의혹, 혐의에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그런데 신재민은 아니다. 신속한 수사를 강조한 대통령의 의지로 교묘하게 지웠다.

좋다. 백보 양보해서 대통령의 발언이 뉴스 가치가 더 크다고 치자. 그럼, 대통령의 말발은 먹힐까? 애초, 검찰은 이국철 회장의 폭로가 '의미가 없다'고 했었다. 대통령이 한 말씀 했으니 이제 검찰이 움직일까, 아니면 움직이는 척이라고 할까. 이 대목에 대해서도 방송 뉴스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대통령의 발언을 대문짝만하게 전하려 한다면 최소한 '의미가 없다'던 검찰의 인식을 까든지 그게 아니라면 검찰이 뭘 수사해야하는지 정도는 일러줘야 하는데, 전혀 없다. 소극적이다 못해 굴욕적이다. 정권 말기의 권력형 비리 문제에 대해 방송이 이처럼 아무 말도 못하는 상황은 김영삼 정부 이후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 방송의 수준은, 보도의 품질은 민주화 이전 권력에게 시도 때도 없이 멱살 잡히던 모습이다.

아니라고, 너무하다고. 그럼 이건 어떤가. 어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인 나경원 의원이 중증장애인시설을 찾아 목욕봉사를 펼쳤다. 기자들을 대동한 퍼포먼스 성격의 방문이었다. 효과를 극대화하려 했는지 엄청난 실수를 범했다. 중학생 또래의 장애아동을 취재진 앞에서 옷을 벗겨 목욕을 시켰다. 현장에 있던 취재진들조차 "불편했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인터넷은 시쳇말로 난리가 났다. 장애학생들 성폭행 사실을 다룬 영화 <도가니>와 맞물리며 인화학교의 문제와 나경원 의원의 퍼포먼스가 본질적으로 뭐가 다르냐는 지적이 뜨겁다. 나 의원 같은 천박한 인권 감수성이 바로 <도가니> 같은 비극적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비난이다.

나 의원은 사과조차 않고 있다. 오히려 짜증스럽다는 반응이다. 기자들이 굳이 취재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됐다며 되려 역정이다. 방송 뉴스 가운데 단 한 군데도 이 논란을 다룬 곳은 없다. 오히려 나 의원이 열심히 목욕을 시키는 장면을 뉴스의 배경화면으로 썼다. 여론은 한 목소리로 나 의원을 질타하고 있지만, 방송 뉴스는 그저 서울시장 후보들이 서로 상대를 비판하고 있다고 변죽을 울린다. 잘못은 이는 따로 있는데 정작 다 잘못했다고 나서는 방송 뉴스는 황희 정승의 현현인가?

과거 비슷한 문제때는 안 그랬다. 지난 2004년 정동영 의원이 열린우리당 의장이던 시절에 장애인을 알몸으로 목욕시켰던 적이 있다. 당시, 방송 뉴스는 이를 주요하게 다뤘다. 마찬가지로 정동영 의원이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이른바 '노인 비하' 발언을 했을 때도 방송 뉴스는 이를 아예 대선 쟁점화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그때랑 지금이랑 뭐가 다르기에, 방송 뉴스는 과거엔 입에 거품을 물었던 일에 지금은 침묵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정권이 밑동째 흔들리고 있다. 이상돈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이명박 정부의 또 다른 상징인 4대강 공사에서 준설토가 싹 사라졌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방송 뉴스들은 이것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만약에 참여정부에서 세종시 공사 현장의 건설 자재가 사라졌다는 의혹이 불거졌다면 그때도 방송 뉴스들은 보도를 하는 둥 마는 둥 했을까?

추락하는 권력은 날개가 없다. 왜 언론이 권력의 추락을 부채질하니까. 동서고금을 막론한 권력의 명징한 순리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다르다. 가장 큰 언론 집단인 방송이 끝내 권력을 지켜주려고 확실한 담합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와 검찰이 신 전 차관에 대한 '꼬리 자르기'를 한다면 방송은 아예 무 보도를 통해 '꼬리 감싸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차기 대선에 버금가는 위상을 지녔다는 서울시장 선거에선 나 의원의 명백한 잘못은 침묵하고, 서울시장 후보들을 싸잡는 방식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나경원 의원에게 서울시장 후보자 추천장을 주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어떻게 임기 후반기에 몰락했나? 측근비리나 권력비리가 터지면 막기에 급급하고 아니라고 부인했다가 나중에 사실이 밝혀지면 끌려다니면서 임기 말에 다 몰락했다"고 말했다. 충성의 시대는 진즉에 파탄났고, 이제 여당마저 청와대와 본격적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집단은 어디일까? 방송이 최소한 여당보다 청와대와 가까워 보인다. 이제 한나라당도 청와대의 '졸'이 아님을 선언하는데, 언제까지 방송이 제 노릇을 못할지 갑갑함을 넘어 짜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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