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이 MBC FM 두 시의 데이트를 떠난다. 나가수를 통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바쁜 윤도현이 매일 꼬박 2시간씩을 라디오에 투자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다. MBC가 윤도현 스스로 그만 두게끔 유도하는 방법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윤도현이 MBC의 제안에 대해서 답할 수 있는 것은 둘 중 한 가지였다. 그만 두든가 아니면 새 DJ처럼 아무것도 모를 누군가의 자리를 밀어내는 치졸한 짓을 따라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윤도현이 아니라 누구라도 못할 짓이다.

윤도현이 몸담고 있는 다음기획의 발표에 의하면 MBC는 얼마 전 <두 시의 데이트> DJ로 내정된 사람이 있으니 다른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옮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MBC의 이런 요청은 사실 그만 두라는 말보다 훨씬 더 모욕적인 편법이다. 이미 <두 시의 데이트>를 1년 이상 진행해오고 있는 윤도현에게 ‘이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내줘야 하니 너는 다른 사람의 자리 아무 것이나 골라 봐라’ 식의 태도는 DJ 윤도현에 대한 조롱이나 다름없다.

어차피 라디오 DJ를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모두 연예인이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텁지 않다고 해도 결코 넓지 않은 한국 연예계에서 한 다리만 건너면 바로 이렇게 저렇게 얽힐 수밖에 없는 관계들이다. 연예인들에게 개편은 소화불량을 가져오는 일등공신이기는 하다. 자신이 밀려나고 다른 누가 들어오면 한동안 어색한 사이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심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두 시의 데이트>를 진행하던 윤도현에게 같은 방송국 다른 DJ의 자리를 빼앗는 방식을 택하라는 것은 거의 원수를 맺으란 말과 다를 것이 없다.

윤도현이 일할 자리가 거기밖에 없고, <두 시의 데이트> 아니면 온가족이 곧바로 길거리에 나앉는다 하더라도 이런 방식의 제안에 납작 엎드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윤도현 아니라 체면이 뭔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결국 윤도현은 자진하차를 선택하게 됐고 이렇듯 무도한 MBC 경영진의 무례함을 공개하는 것으로 상한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다.

윤도현은 자신의 자존심만 지킨 것이 아니다. MBC FM DJ 한 명의 일자리도 대신 지킨 셈이다. 이로써 윤도현은 라디오 DJ로 첫발을 딛게 된 <두 시의 데이트>에서 두 번이나 하차하게 되는 불운의 사나이가 됐다. 윤도현은 지난 2000년 11월 <두 시의 데이트>를 통해 FM DJ로 데뷔를 했었다. 그러다 2010년 10월에 다시 돌아왔으나 새 DJ가 그 자리를 탐내는 바람에 일 년 만에 자진하차를 하게 됐다.

그러나 윤도현의 자진하차로 상황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화살은 그 자리에 앉을 사람에게로 모아지게 됐다. MBC 경영진이 무리를 해서라도 그 자리에 앉히려고 했던 사람이 누구냐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윤도현 측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MBC”라는 유감의 뜻을 밝힌 이상 누가 됐건 <두 시의 데이트>는 황금의자가 아니라 바늘방석이 될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주병진이었다. 예능대제 주병진의 복귀를 기대하고 환영하는 분위기라 할지라도 이런 방식의 복귀는 그에게 하등 도움이 될 리가 없다. 비록 무릎팍도사 출연을 통해서 과거의 모함과 루머에 대해서 충분히 해명하고 그에 대한 동정을 얻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미지 전부를 회복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병진의 복귀는 조심스럽게 추진될 수밖에 없다. 이번 일은 주병진에게 원치 않는 논란과 비난을 불러오고 있어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셈이 됐다.

사실 주병진이 라디오를 원하는 것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FM DJ는 항상 바뀌기 마련이고 그런 개편에 특별히 새 DJ가 욕먹을 일은 없다. 그러나 납득할 수 없는 논리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MBC의 얄팍한 욕심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윤도현도 버리기 싫은 마음이 윤도현도 잃고, 환영 일색이어야 할 주병진의 복귀에도 커다란 오점을 남기는 자충수를 두게 된 것이다.

법정에 나가서 무죄판결을 받은 PD수첩에게 상 대신 징계를 내리는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MBC기에 이런 일도 벌어질 수 있겠지만 이번 일로 MBC 경영진이 연예인들에 대해서도 경박한 인식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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