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이 MBC FM 두 시의 데이트를 떠난다. 나가수를 통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바쁜 윤도현이 매일 꼬박 2시간씩을 라디오에 투자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다. MBC가 윤도현 스스로 그만 두게끔 유도하는 방법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윤도현이 MBC의 제안에 대해서 답할 수 있는 것은 둘 중 한 가지였다. 그만 두든가 아니면 새 DJ처럼 아무것도 모를 누군가의 자리를 밀어내는 치졸한 짓을 따라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윤도현이 아니라 누구라도 못할 짓이다.
윤도현이 몸담고 있는 다음기획의 발표에 의하면 MBC는 얼마 전 <두 시의 데이트> DJ로 내정된 사람이 있으니 다른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옮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MBC의 이런 요청은 사실 그만 두라는 말보다 훨씬 더 모욕적인 편법이다. 이미 <두 시의 데이트>를 1년 이상 진행해오고 있는 윤도현에게 ‘이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내줘야 하니 너는 다른 사람의 자리 아무 것이나 골라 봐라’ 식의 태도는 DJ 윤도현에 대한 조롱이나 다름없다.
윤도현이 일할 자리가 거기밖에 없고, <두 시의 데이트> 아니면 온가족이 곧바로 길거리에 나앉는다 하더라도 이런 방식의 제안에 납작 엎드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윤도현 아니라 체면이 뭔지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결국 윤도현은 자진하차를 선택하게 됐고 이렇듯 무도한 MBC 경영진의 무례함을 공개하는 것으로 상한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다.
윤도현은 자신의 자존심만 지킨 것이 아니다. MBC FM DJ 한 명의 일자리도 대신 지킨 셈이다. 이로써 윤도현은 라디오 DJ로 첫발을 딛게 된 <두 시의 데이트>에서 두 번이나 하차하게 되는 불운의 사나이가 됐다. 윤도현은 지난 2000년 11월 <두 시의 데이트>를 통해 FM DJ로 데뷔를 했었다. 그러다 2010년 10월에 다시 돌아왔으나 새 DJ가 그 자리를 탐내는 바람에 일 년 만에 자진하차를 하게 됐다.
그 사람은 바로 주병진이었다. 예능대제 주병진의 복귀를 기대하고 환영하는 분위기라 할지라도 이런 방식의 복귀는 그에게 하등 도움이 될 리가 없다. 비록 무릎팍도사 출연을 통해서 과거의 모함과 루머에 대해서 충분히 해명하고 그에 대한 동정을 얻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미지 전부를 회복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병진의 복귀는 조심스럽게 추진될 수밖에 없다. 이번 일은 주병진에게 원치 않는 논란과 비난을 불러오고 있어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셈이 됐다.
사실 주병진이 라디오를 원하는 것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FM DJ는 항상 바뀌기 마련이고 그런 개편에 특별히 새 DJ가 욕먹을 일은 없다. 그러나 납득할 수 없는 논리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MBC의 얄팍한 욕심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윤도현도 버리기 싫은 마음이 윤도현도 잃고, 환영 일색이어야 할 주병진의 복귀에도 커다란 오점을 남기는 자충수를 두게 된 것이다.
법정에 나가서 무죄판결을 받은 PD수첩에게 상 대신 징계를 내리는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MBC기에 이런 일도 벌어질 수 있겠지만 이번 일로 MBC 경영진이 연예인들에 대해서도 경박한 인식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