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쇼트트랙, 빙상 스타였습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3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했고 쇼트트랙 세계선수권에서 5연패를 달성하는 엄청난 실력을 자랑하며 한국 쇼트트랙의 자랑으로 떠올랐습니다.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에서 스타로 거듭나기 전까지만 해도 안현수는 독보적인 실력으로 분명히 한국 최고의 빙상 종목 스타였습니다.

하지만 2011년 안현수는 한국대표팀이 아닌 러시아대표팀 선수가 됐습니다. 본인 의사에 따라 새로운 도전을 고민했고 그 과정에서 2014 소치올림픽 개최국인 러시아 빙상연맹 측에서 꾸준한 러브콜을 제의한 끝에 귀화를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안현수는 러시아대표 선수로 2014 소치올림픽을 치르게 됐고, 이변이 없는 한 다시는 태극마크를 달고 빙판 위를 가르는 안현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 쇼트트랙 안현수 선수가 22일 오전(현지시간) 러시아 쇼트트랙 선수권 대회가 개막한 모스크바 시내 '빙상 궁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지 및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알렉세이 크라프초프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 ⓒ연합뉴스
그런 안현수에 대한 한국 내 여론은 이전 귀화, 동포 선수들과는 다르게 비교적 호의적입니다. 물론 일부는 '뒤통수를 때렸다' '다시는 보기 싫다'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대다수는 안현수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이 참에 한국 쇼트트랙이 제대로 정신 차리게 해야 한다'면서 응원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왜 이렇게 유독 많은 팬들이 안현수에 호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을까요? 2000년대 중후반, 부상을 당한 뒤 내리막길을 걸었던 그가 밟았던 길을 돌아보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진실 공방이 오가기는 했지만 쇼트트랙 내 파벌 싸움은 고질적인 문제로 인식돼 왔습니다. 올림픽에서조차 같은 팀임에도 노골적으로 서로 다른 파벌이라는 이유로 따로 노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는 쇼트트랙팬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모습을 척결하겠다며 말만 해놓고 더 이상 고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결국 '짬짜미' 승부 담합이라는 사상 초유의 문제까지 겹치고 파벌, 학벌이 빙상계에 깊숙하게 있는 것이 또 한 번 드러나면서 쇼트트랙은 '최악의 스포츠'로 그 위상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안현수는 파벌 싸움의 최대 피해자라는 논란에 휩싸였고, 실제로 안현수 아버지까지 나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상황은 최악에 치달았습니다.

여기에 비인기 종목 설움은 안현수를 더 이상 한국에서 뛸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로 이어졌습니다. 성남시청에 좋은 대우를 받고 들어가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재정 이유를 들어 쇼트트랙팀 해체를 선언하면서 갈 곳을 잃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어느 팀에서도 안현수를 품에 안으려 하지 않았고, 결국 안현수는 새 진로를 모색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선수로 귀화해 선수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극단의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영웅에 대한 이렇다 할 대우가 없었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안현수는 올림픽 3관왕, 세계선수권 5연패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낸 것만으로도 '영웅 칭호'를 받아야 마땅한 선수입니다. 하지만 큰 대회에만 반짝 관심을 갖는 시선, 정부와 체육계의 무관심 등으로 안현수의 성과는 부상을 당한 시점과 맞물려 묻히다시피 했습니다. 성과를 위해 수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던 안현수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섭섭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한국 쇼트트랙, 그리고 체육계가 갖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안현수라는 최고의 자원을 다른 나라에 내주는 아픔을 맛보게 됐습니다.

안현수가 러시아 국기를 달고 뛰면서 얼마만큼 예전의 기량을 보여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팬들이 안현수가 옛 전성 기량을 회복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동안 최악의 모습만 보여줬던 한국 쇼트트랙이 정신 차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중국, 미국, 캐나다 등의 성장으로 지난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에 만족해야 했던 한국 쇼트트랙이 정말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하계올림픽 종목의 복싱, 레슬링처럼 그 위상이 추락할 수 있는 위기감을 느껴야 하는데 안현수의 선전이 그 위기감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요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빙상연맹에 대한 팬들의 불신은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온갖 문제에도 솜방망이식 해결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빙상연맹의 자세에 팬들은 그 해결책으로 안현수의 기량 회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미래가 나타나든지 안현수의 귀화는 선수 개인에게 좋은 미래를 바라는 시선이 있겠지만 정말로 빙상계, 동계 스포츠에 대한 많은 생각과 뼈저린 아픔을 느껴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 스스로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됐든 한 나라를 대표했던 스타를 '여러 가지 복잡한 일'로 다른 나라로 '현역 선수 신분으로' 보내는 것 자체만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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