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배우들을 보면 안타깝다. 단막극을 통해 훈련되고 검증받아 좋은 배우로 거듭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단막극은 그 문이 극히 좁다. …(중략)… 발연기라는 말이 있다. 실전경험이 없는 연기자들이 열악한 드라마 시스템(일주일에 2회 140시간 이상이 제작되는)에 제대로 연습할 시간도 없이 투입되다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참 가슴 아픈 말이다”<배우 박유승>

KBS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 ‘원봉’역을 맡고 있는 박유승 한국연기자협회 사무총장은 23일 목동CGV에서 진행된 <2011년 단막극 페스티벌 세미나>에서 “신인연기자 시절 수많은 단막극에 출연한 것이 도태되지 않고 아직 현역으로 뛰고 있는 힘이 됐다”고 말했다. 자신 그리고 같은 연배의 동료들이 단막극의 직접적인 수혜자란 얘기다.

박유승 사무총장은 이날 세미나를 통해 “단막극은 드라마에 있어 당연히, 무조건 해야 하는 의무교육이라고 정의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는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위해 의무교육을 하듯, 단막극도 양질의 콘텐츠 제작을 위한 기초토양”이라면서 “기존 스타가 아닌 새로운 연기자들이 등용될 수 있고, 기성연기자들에게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게 단막극”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연기자 이외에도 작가, 연출자 등을 인큐베이팅할 수 있는 단막극은 꼭 정규 편성돼야 한다”며 “적자가 난다고 해서 그리고 방송사의 재정악화를 위해 홀대하는 것은 국가경제가 어렵다고 의무교육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토론자 조명주 작가 역시 “신인작가들이 거칠지만 당돌한 시선으로 등단할 수 있는 단막극을 쓸 기회 없이,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는 연속물로 바로 뛰어들게 되다보니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단막극’ 부활의 필요성에 동조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단막극의 필요성 및 중요성을 부정하는 패널은 없었다. 그러나 방송사 입장에서는 경영적 측면을 아예 무시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 9월 23일 오전10시, 방통위,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주최로 목동CGV에서 진행된 '2011년 단막극 페스티벌 세미나-TV영화 형식 드라마의 가능성 및 기대효과' ⓒ권순택
KBS<드라마스페셜>, 시청률·광고 늘어나고 있다

세미나에 패널로 참석한 SBS 김영섭 드라마국장은 “단막극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편성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시청률과 광고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단막극 제작재원이 마련돼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외주제작사들 역시 단막극을 하지 않는 이유는 돈이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게 김 국장의 주장이다.

김영섭 국장은 “실 제작비 1억 2000만 원인데 광고가 8개밖에 안 붙는다면 제작사 입장에서는 1억 손해”라며 “필요성은 느끼지만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드라마 시스템 상 하나의 드라마에 2~3명의 PD가 붙어야하는 상황인데, 현실적인 해결 방안과 경제적 토대가 없다면 몇 개월 하다 다시 그만둘 수밖에 없는 실정이란 얘기다.

이날 세미나에서 김영섭 국장은 ‘경제적 토대’ 마련을 위해 지상파로 하여금 협찬고지 및 중간광고 등의 허용을 요청했다. 신용섭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인사말에서 “문화부와 협의회 협찬고지 및 간접광고제도 개선을 통해 제작의 숨통이 트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 방안은 시청자단체로부터 거센 비판이 있는 실정이라 신중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날 세미나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KBS <드라마스페셜>이었다. 그의 흥망에 따라 단막극의 활로가 열릴 것인지가 달린 셈이기 때문이다.

KBS 이강현 드라마국장은 “작년 <드라마스페셜>의 최고 시청률은 8.6%로 평균적으로 4.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며 “늦은 편성 시간대에 비해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방송사입장에서는 결코 반갑지 않은 4%대의 스코어”라고 말했다.

이강현 국장은 “그러나 작년 24편의 작품 중 신인연출자 5명이 연출을 맡은 게 8편”이라면서 “이응복 PD는 그 후 미니시리즈 <드림하이>를 성공시켰고, 노상훈 PD는 <오작교형제들>을 공동연출하고 있으며, 박현석PD는 단막극 <완벽한 스파이>에 이어 <공주의 남자> 연출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24편의 작품 중 신인작가가 집필한 건수는 16편으로 이들 역시 집필능력을 검증받아 현재 미니시리즈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이 국장은 “이들이 곧 한류드라마를 이끄는 차세대 연출자들”이라며 “종편출범으로 인해 부족해진 제작리소스를 단막극을 통해 발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KBS <드라마스페셜>에는 좋은 바람이 불고 있다. 시청률도 좋아지고 있고 광고도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강현 국장은 “작년 <드라마스페셜>은 평균시청률 4.7%에 광고수주 비율은 20%정도였다”며 “그러나 연작드라마를 거쳐 단막극 시즌2가 시작된 이후 평균시청률이 6.1%로 올랐다. 광고판매도 70%까지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단막극도 충분히 상업적인 부분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선례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중앙일보> 방송, “단막극 정규편성 고려 안 한다”

케이블의 활성화 그리고 종편출범 등 채널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날 세미나에서는 단막극을 통한 인력배출 및 새로운 장르에 대한 실험 등의 책임은 여전히 지상파에만 쏠려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중앙일보> 종합편성채널 ‘jTBC’ 유정준 드라마 CP는 “저희는 원칙적으로 드라마 100% 외주제작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단막극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정규 편성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유정준 CP는 “그러나 개국 특집으로 MBC <내이름은 김삼순>을 연출한 김윤철 PD를 영입해 3부작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굳이 따지자면 단막극이다. 그러나 개국 초기년도 단막극은 정규 편성할 수 없는 한계”라고 말했다. 정부는 종편출범으로 인해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시청자들의 채널선택권이 확대될 것이라고 했지만 드라마는 여전히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세미나 발제를 맡은 이재호 동아방송예술대 교수는 ‘제작비 증가’, ‘스타중심 제작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종편이 12월 개국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미디어생태계를 훼손할 것이란 전망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비판을 감내하고서라도 시청률이 높은 ‘막장드라마’에 의존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방송작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동아방송대 한 학생은 “종편이 만들어져서 많은 기대를 했었는데 단막극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실망스러웠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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