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메시지다. 친박계의 좌장이자 한나라당의 원로급인 6선의 홍사덕 의원이 최시중 방통위원장에게 '우회적 사퇴'를 권유했다. 최 위원장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로 메시지 수신을 확인했다.

22일 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 홍 의원은 "여당 의원의 업보를 잠시 내려놓고 (최 위원장과의) 인연도 잊어버리고 오래 오래 생각한 끝에 말한다"며 "최 위원장은 인터넷TV(IPTV)의 정착, 미디어관련법 정비 등 지난한 과제를 이뤄냈고, 4개 종편에 대한 허가는 최 위원장이 아니었으면 해결 못했을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냥 하는 칭찬이 아니다. 말의 의미는 '할 일은 다했다'는 것이다.

이어 홍 의원은 "광고시장 생태계, 언론 생태계를 극도로 위협하게 돼 있는 종편을 우리 안에 몰아넣거나 자제시킬 어떤 수단도 (최 위원장이) 가지고 있지 않고 있다"며 "이 문제를 풀어가자면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고, 새 접근, 새 철학, 새 발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에둘러 가지 않은 셈이다. 물러나란 얘기다.

▲ 친박계 좌장인 6선의 홍사덕 의원은 22일 국감에서 최시중 방통위원장에게 "새 접근, 새 철학, 새 발상이 필요하다"며 사퇴를 권유했다.
홍 의원은 종편의 출범까지가 최 위원장의 역할임을 주지했다. 그리곤 이후에 도래할 언론 상황에 대해선 최 위원장이 해법을 갖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정치적으로 이보다 더 직설적인 사퇴 권유는 없다. 완곡하되 분명한, 소임을 다했으니 이제 그만 물러나라는 권유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최 위원장의 반응이다. "홍 의원의 지적에 공감하고, "새로운 장을 열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그 이상에 대해서는 말할 처지가 못 돼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새 접근, 새 철학, 새 발상이 필요하다"는 홍 의원의 지적과 "그 이상에 대해서는 말할 처지가 못 된다"는 최 위원장의 대답은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오래 생각했다"는 홍 의원의 선수에 최 위원장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홍 의원은 친박계 가운데 선수가 가장 높고, 한나라당 전체를 보더라도 원로급이다. 최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넘버3'로 불린다. 정치적 서열이 대통령과 '상왕' 이상득 의원 다음이란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만만치 않은 '비중'들의 심상치 않은 '의중'이다.

▲ 홍사덕 의원의 사퇴 권유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공감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지만 말할 처지가 못 돼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더욱이 묘한 때이다. 임기 말 권력형 측근 비리가 터졌다. 권력 언저리에서 기생하던 이들이 '실수'를 범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노른자에서 기능하던 핵심 실세들이 줄줄이 엮이고 있는 때다. 특정한 누군가가 오염된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 전체가 오물을 뒤집어쓰게 된 상황이다. '레임덕'의 필요조건은 이미 충족됐다. 하지만 아직 충분조건은 남아 있었다.

미래 권력이 움직여야 한다. 박근혜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과 갈라서야 한다. 현실 권력과의 차별화 없이는 도무지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설 때, 미래 권력은 가장 매서운 얼굴로 현실 권력을 친다. 그러면 급격히 권력의 지도가 바뀐다. 시대의 '갑'과 '을'이 뒤바뀌고 권력의 주인과 세입자가 순식간에 역전되는 상황이 온다. 그렇게 봐야 한다. 홍 의원이 최 위원장에게 물러서라 권유한 것은 그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친박이 친이를 향해 본격적인 퇴장을 요구하는 신호다.

홍 의원이 종편의 패혜를 거론하며 '지방지' 문제를 거론한 상황을 잘 봐야 한다. 홍 의원은 종편의 언론 생태계 위협에서 "제일 먼저 희생되는 것은 지방지"라고 했다. "최 위원장의 마당에는 지방지가 없을지 모르지만 문방위로서는 지방지가 우리 마당에 들어있는 식구들"이라고도 했다. 여기서 문방위는 '친박계'라고 바꿔 읽어도 무방하다. 최 위원장은 선거를 하지 않아 상관없겠지만 전국 단위 선거를 해야 하는 친박계 입장에선 종편만큼 지방지가 중요하단 말로 읽어도 상통한다.

'레임덕'이 찾아오면 상징적 조치가 필요하다. 궁지에 몰린 대통령은 더 이상 현실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주어야 한다. 최후의 수단은 '탈당'이다. 하지만 아직 '탈당'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점이다. '탈당'은 곧 권력의 식물 됨을 의미한다. 아무리 이르더라도 총선을 전후로 한 시점이 유력하다.

탈당이 '뼈'이고, 뼈를 내어줄 순 없는 노릇이라면, 내어줄 '살'을 고민해야 한다. 과거의 방법대로라면 '거국내각'을 구성해 인적쇄신을 통한 정국 수습책이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거국내각은 이명박 정부의 정치력을 넘어서는 정치행위다. 그렇다면 방법은 버금가는 효과를 보여주는 수밖엔 없다. 권력을 나눠 가진 인사의 퇴장뿐이다. 바로, 최시중 위원장의 사퇴다.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한다'는 홍 의원의 압박은 그것이다. 직무의 권한과 범위를 넘어 여러 정치 상황을 살피며 정권의 자연스런 퇴장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최 위원장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토로한 것 역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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