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은 곧잘 노무현 정부와 386세대의 관계를 동일시하며 참여정부의 권력기반을 386에서 찾곤 했다. 청와대 측근 그룹에 386이 많이 포진한 것을 두곤 '운동권 동아리방같다' 고 비아냥거렸다. 참여정부가 실책을 범하면 '386은 아마추어'라고 했다. 또 어떤 386이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386과 참여정부가 모두 썩었다'고 했다.

▲ 조중동 사옥

'386의 부패=참여정부의 실패'라 했던 그 시절 조중동

▲ 중앙일보 정치부장 출신의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 연합뉴스
때 마다 많은 억지 춘향으로 묶인 대다수의 386들은 억울해했다. 하지만 그런 도식적 구도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진 않았다. 심정적 동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위 관료가 된 극소수의 386이 전체 386을 대변할 순 없지만, 사회 변화를 열망했던 다수의 386들은 노무현 정부의 성공을 바랬다. 조중동은 이 심정적 동조를 이죽거렸다.

노무현 정부와 386의 관계가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와 일부 언론의 관계는 어떨까? 판박이다. 이명박 정부의 권력기반은 조중동을 비롯한 일부 언론에 있다. 청와대 측근 그룹에는 조중동 출신 기자들이 많다. 그 시절 조중동의 문법으로 말하자면 '수구언론 편집국'같다. 조중동 기자들은 억울할까? 역시, 별로 그럴 것 같진 않다. 조중동 기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KBS, YTN, MBC도 마찬가지다) 청와대와 언론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저항하지 않았다.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정치 관료가 된 기자들이 전체 언론을 대변할 순 없지만, 기득권의 유지를 소망했던 조중동과 일부 매체들은 여전히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얘기가 다르다. 둘 다 죽거나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죽거나, 이명박을 받치는 권력 기반이 죽어야 한다. 가히, 궤멸적 상황이다. 아직까지는 타격의 여파가 대체 어디까지 갈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다.

김두우, 홍상표 그리고 신재민까지 과거 어떤 386이 부패했던 문제를 넘어서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 권력 기반이 무너지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홍보라인이 모두 뇌물의 오물을 뒤집어썼다. 홍상표야 그렇다 치고 김두우와 신재민이 특히 아프다. 둘 다 둘째라면 서러워할 이명박 정부의 핵심 실세들이다. 언필칭 사석에선 '내가 대통령을 만들었네' 떠들어도 듣는 이가 그러려니 할 사람들이다.

이명박 청와대는 '조중동 편집국'?

▲ 조선일보 부국장 출신의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 ⓒ 연합뉴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김두우는 중앙일보 정치부장, 홍상표는 연합뉴스에 입사해 YTN 보도국장과 상무, 신재민은 한국일보를 거쳐 조선일보 부국장을 지냈다. 청와대를 '수구언론 편집국'으로 만들었던 그룹이다. 권력기반과 권력을 연결하던 고리다. 참여정부의 386들이 전체 386을 대변하고 참여정부의 기반이 386이라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의 뜨거운 관계를 입증하는 것이고, 이명박 정부의 권력기반이 조중동에 있음을 보여주는 논리적 귀결들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정의'를 떠들고 '공정사회'를 입에 올리고 최근엔 '공생발전'을 전파한 것도 다 이들이었다.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와 SLS그룹 이국철 회장의 주장대로라면 이들의 부패 혐의는 그 자체로 이명박 정부가 문드러졌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업자들로부터 룸에서 돈이나 받던 사회적 막장들이 정부의 메시지를 만들고 정부의 입장을 전하던 꼴이다.

아무리 잘라내도 도마뱀에게 꼬리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386을 향한 언론의 비난을 모두 떠앉았다. 권력의 기반을 인정하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유명한 '정치적 동업자'라는 표현도 그런 맥락이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란 그런 것이고 또 그러해야 한다. 조중동은 그때 어떤 386들이 왜 돈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를 정색하고 물으며 이게 다 대통령의 권세 때문이 아니냐고 자답했다. 그들은 호랑이의 탈을 쓴 여우일 뿐이라는 논리였다. 맞다. 그래서 김두우, 홍상표 그리고 신재민의 부패 의혹은 간단치가 않다. 그들이 왜 돈을 받을 수 있었겠나? 그들은 여우일 뿐이다, 호랑이는 따로 있다 이렇게 공격해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최종적으로 그 타깃이 자신들을 향하게 된다.

딜레마에 빠진 조중동과 청와대

▲ YTN 보도국장 출신의 홍상표 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 연합뉴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조중동에게 매우 어렵다. 똑같은 권력형 부패 사건을 놓고 참여정부는 '사정'없이 조지지만 이명박 정부에 대해선 '사정'을 봐준다면 이들의 정체가 탄로 나게 된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스스로 언론이 아님을 자인하며 '우리는 한나라당 지원세력입니다'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하지만 언론의 속성과 본능도 무시할 순 없다. 임기 말 권력형 비리 사건 만큼 언론의 구미에 딱 맞는 것도 없다. 어느 정도 권력을 팰 수 있음을 보여줘야 앞으로도 무시당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패야할 이들이 하나 같이 자신들의 분신과도 같은 이들이다. 골치 아픈 일이다. 이는 KBS, MBC, YTN도 종국엔 마찬가지인데,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도 하느냐에 따라 그나마 아직까지는 이들을 언론으로 볼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어렵다. 이 대통령은 당장에 귀국해서 입장을 표해야 한다. 이미 깊숙한 '레임덕'을 맞은 그이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은 다시 한 번 대통령의 위상을 규정하게 될 것이다. 바닥을 향하는 것은 이제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어디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지가 문제다. 아시다시피 이 대통령이 진심으로 성역 없이 수사를 지시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 대통령은 그런 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선택은 '법의 판단'을 강조하며 자연스레 그들을 버리는 방법 밖에 남지 않는다. 워낙에 '꼼꼼'한 대통령의 성품상 간단한 언급만 하고 침묵을 금과옥조로 여길 공산도 크다. 적당한 선에서 덮으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쉽잖아 보인다. 대통령의 침묵은 여론의 반발을 부른다. 선거를 앞두고 축소지향적 수사는 더 큰 추론을 일으킨다. 언론은 조중동, KBS/MBC만 있는 게 아니다. 이미 단서들도 많이 나왔다.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는 "언론인 출신들에게 일명 떡값 명목으로 인사를 하는 과정에 홍 전 수석도 포함됐다"고 진술했다. 홍상표는 몸통이 아니란 얘기다. 김두우, 홍상표 말고 언론인 출신의 더 큰 누군가가 '몸통'이란 얘기다. 만에 하나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타격을 받을 경우 대통령도 치명상을 입는다. SLS그룹 이국철 회장은 더 복잡한 얘기를 했다. 안국포럼의 운영비를 댔으며, 신재민이 누군가들에게 돈과 상품권을 나눠 준다고 했다고도 했다. 정말, 끔찍한 얘기다.

조중동은 이명박에게 의리를 보여줄까?

그래서 복잡한 상황, 전에 없던 '레임덕'이다. 대개의 경우 아무리 '레임덕'이 오더라도 대통령은 권력의 기반을 부정하지 않고, 권력의 기반이 되어주었던 세력은 측은지심에서라도 끝까지 대통령을 보호해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대통령과 권력기반이 생존게임을 벌여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조중동은 일단 사건을 확대시키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겠지만 자사 출신 관료들의 부패가 곧 자신의 문제는 아니라는 스탠스로 문제에 접근해 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을 칠 수밖에 없다. 이 때 이 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386은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별로 받은 게 없지만 그가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 의리를 보여주었다. 수구언론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웬만한 건 다 받아둔 상태다. 그렇다면 수구언론이 의리를 보여줄까? 안타깝게도 가능성은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