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는 종합일간지 가운데 처음으로 3차원 사진으로 제작된 '3D 지면'을 21일자 선보였다. 3D 이미지는 1면 사진을 비롯해 20면과 31면에 게재됐으며 중앙일보는 이를 볼 수 있는 별도의 3D안경을 제공했다.

중앙일보는 "국내 종합일간지 사상 처음으로 3D 섹션을 발행해 대한민국 신문업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자평했지만, 중앙일보의 시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기술의 발전을 중시하는 입장에선 매체 환경 변화에 발맞춘 의미 있는 시도라는 시각이지만 한편에선 신문 고유의 특성을 무시한 기만적 이벤트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 21일자 중앙일보가 선보인 3D 지면. 별도의 3D안경을 쓰지 않고 보면 화면이 깨져보인다.

중앙일보의 3D 지면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낯선 미래를 일찍 보여준 것일까 아니면 설익은 고민이 부른 일회성 이벤트일 뿐일까? <미디어스>가 신문에 능통한 몇몇 이들에게 물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앙일보의 이번 시도에 대해서 긍정적인 사람은 없었다. 부정적인 입장이 훨씬 많았다. 매체의 기술 경쟁이 빨라짐에 따라 신문도 미래의 기술과 어떻게 만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맞지만 3D 지면은 일회적 이벤트일 뿐, 방향이 틀렸다는 지적이다. 어떤 이는 신문 고유의 속성을 죽이는 시도라고 혹평했다.

신문업계에 20년 넘게 종사해온 한 관계자는 3D 지면에 대해 "광고주는 좋을지 모르지만, 신문이란 매체 입장에선 사실상 자살골"이라며 중앙일보의 시도를 "신문 고유의 속성을 부정한 이벤트"라고 규정했다. 3D 지면이란 개념 자체가 "종이 매체에선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기획"이란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신문도 기술의 변화에 따른 지면 고민은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신문은 종이 매체의 속성을 벗어날 수 없고, 3D 기술은 어떻게 보더라도 종이와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중앙일보가 이를 모를 리 없다"며 3D 지면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광고'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도 3D 지면이 제작된다면 이는 특정한 광고나 상품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시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중앙일보는 광고와 연계해 3D 지면을 제작한 성격이 짙다. 중앙일보의 3D 지면은 캐논의 협찬으로 진행됐다.

윤승일 한겨레 출판기획사업 부장 역시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윤 부장은 "3D 지면은 일종의 독자 기망으로 영업의 도구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윤 부장은 3D 지면을 제작할 경우, 그 "제작 방향에 맞춰서 콘텐츠가 골라질 수밖에 없다"며 결과적으로 이는 신문이 "언론의 역할을 방기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 부장은 "신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활자 콘텐츠를 읽는 것인데 정작 3D 안경을 끼면 활자를 읽을 수 없다"며 3D가 어떻게 신문과 양립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윤 부장은 3D는 기본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일종의 속임수"인데 이를 매체가 도입할 경우 "사실을 과대 포장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학자 역시 부정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언젠가 사진 기자들이 3D 사진을 가져와 기자상 심사에 반영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지만 큰 의미를 두진 않았었다며 "3D 안경을 쓰고 신문을 보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원 교수는 "중앙일보가 얼마나 정기적으로 그런 지면을 내겠느냐"며 "철저한 이벤트 성격일 뿐, 언론사적 의미는 없다"고 규정했다.

원 교수는 오히려 "과거 굉장한 기술자였던 사진 기자들이 기술의 보편화로 지위가 단순 노동자로 전락한 상황"에서 3D와 같은 신기술의 도입에 굉장한 관심을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진 기자들의 관심과 이해관계일 뿐, 독자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가 3D 지면을 두고 '신문 업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자화자찬한 것에 비해 전문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정했다. 기술 발전에 대한 고민이 설익은 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일 뿐, 신문의 미래와는 별 상관없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신문의 속성을 부정하기까지 한다는 지적이다. 기술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시도는 필요하지만 신문은 종이매체의 고유한 속성을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나서도 안 된다는 것도 대체적 의견이었다.

뉴 미디어의 등장으로 가장 '올드'한 매체 가운데 하나인 신문의 위기감이 높다. 그 해법을 둘러싼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해법은 언제나 신문 고유의 경쟁력을 높이는데서 찾아야 하는 것이지 애꿎은 이벤트로 매체 고유의 역할까지 부정해선 곤란할 것이다. <미디어스>와 통화한 전문가들은 '그렇다면 신문은 매체의 기술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겠느냐'는 질문에 공통적으로 "매체의 융합과 플랫폼의 통합"을 꼽았다. 대부분의 신문들이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문과 온라인의 연계를 강화하는 방향에서 기술적 전망을 찾아야 한단 것이다. 종이 값이 계속 오르고 구독률은 떨어지고 하는 상황에서 발행 부수보다는 뉴스의 생산적 소통을 위한 길을 모색해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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