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민의 정체성과 가장 관련 있는 역사는... 근대이전의 역사? 근현대사?

학교에서 근현대사가 사라지고, 시민의식을 키우는 내용을 담은 도덕, 사회가 사라지고 있다. 진보진영이 학교 교육과정의 장에서 벌어지는 지각변동에 무심한 사이 뉴라이트의 의도가 재빠르게 관철되고 있다.

‘근현대사’ 선택과목을 없애는 대신 고등학교 1학년 역사를 근현대사 중심으로 구성하고자 했던 2007 개정 교육과정은, 해당 교과서가 집필되는 과정에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이주호 장관이 2009 개정 교육과정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면서 완전히 무시됐다. 이명박 정부는 ‘건국 60년’이라는 문구를 즐겨 사용하는데, 이것은 일제치하 독립운동에서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부정의에 항거한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건국자로서의 이승만에 대한 긍정적 재평가라는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담긴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총론이 반영된 2011년 역사 과목 개정안을 보면, 근현대사 중심으로 구성하고자 했던 고1 ‘역사’를 ‘한국사’로 바꾸고 근대이전의 내용을 늘리고 현대사를 전체 내용의 10퍼센트로 축소하는 것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2007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고 1 ‘역사’에서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다루기로 하고 중학교는 전근대사 중심으로 내용이 선정된 상태에서, 이번 개정안에서 고1에서 현대사를 전체의 10%밖에 다루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현대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현대사의 내용은 현재의 우리 사회와 시민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일제치하 저항운동, 60년 4.19혁명, 80년 5.18 민주화운동, 87년 6월 항쟁은 부정의에 항거하면서 스스로 시민의 역할을 찾아간 민주주의의 역사다. 뉴라이트 세력은 이러한 역사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뉴라이트 세력은 몇 년 전 대안역사교과서를 써서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하고자 시도했다. 일제의 지배를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이승만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서술하면서 사회적으로 비판여론이 커지자 현대사 내용 자체를 축소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중앙일보, 삼성이 역사교육을 외치다

올해 1월에는 삼성계열의 중앙일보가 대대적으로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연재물을 실었다. 연재가 끝나자 2월에는 바통을 이어받아 교육부에 역사교육발전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추진위원장은 국가브랜드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배용이다. 역사교육과정개정추진위원회는 역사교과서를 기술하는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국사편찬위원회는 이 추진위원회가 정한 가이드라인을 따르도록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국가의 대외적 이미지 홍보에 관심이 있는 국가 브랜드 위원회의 장이 역사 교과서 집필의 가이드라인을 정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여기에 대해 진보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학자들조차도 비판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교과서는 특정방향을 염두에 둔 사람들의 의도가 그대로 관철되는 장이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에 논쟁적으로 다뤄야 할 부분이 있다면 학계의 의견을 받아 역사교과서는 논쟁적으로 집필되어야 하는 것이고, 논의 단위는 균형을 담보할 수 있는 형식을 갖춘 국가기구여야 한다. 이를 고려할 때 교육부에 급조된 이 추진위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교과서는 교과서가 아니라 홍보책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역사교육 강화를 외치면서 공무원시험에도 필수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마련된 정답을 기준으로 공무원시험 등에서 역사인식정도를 평가하겠다는 것 자체도 위험스러운 일이다.

중앙일보는 올해 7월 또다시 역사교육 관련한 연재글을 싣고 새 교육과정에 따른 역사교과서가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폄하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기업의 회장들이었던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을 새로운 역사교과서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삼성은 머지않은 장래에 현대사에서 기술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삼성이 경제발전에 미친 긍정적 효과와 함께 우리 사회 재벌의 특징과 영향, 무노조 원칙은 우리나라 헌법에 비추어 타당한 것인지, X파일을 포함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에서 드러난 기업과 검사들과의 유착관계 등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상속세를 피하고자 했던 시도들을 균형적으로 다루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은 국가브랜드 위원회가 추구하는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위한 국가브랜드 가치 올리기’ 일환의 역사서술로는 이뤄질 수 없다.

이로써 뉴라이트를 비롯한 보수세력이 현대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다룰 수 없도록 비중을 대폭 축소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현대사에 대해 일반적인 서술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마키아 벨리가 지적한 대로 ‘사람들은 구체적인 것에는 잘 속지 않지만 일반적인 것에는 잘 속을 수 있다’는 것을 이용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에서 ‘시민교육’이 선택사항인가?

시민의식, 시민의 참여 등 시민교육을 담당하는 1학년 도덕과 사회는 이번 2009개정 교육과정에서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전환되었다. 교육부에서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이었던 고1 과목을 모두 선택화한다고 발표했다. 대입 수능시험에서 국, 영, 수 비중이 다른 과목에 비해서 현재에도 큰 상태에서 법 개정을 통해 2014년부터 윤리, 지리, 정치, 경제 등을 포함한 10개 사회탐구 과목에서 3과목이 아닌 2과목만을 선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국, 영, 수의 비중을 더 높여놓았다. 이런 상태에서 학생들의 선택권 운운하는 것은 기만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의 선택을 정말 보장하고 싶으면 국,영,수 비중을 다른 과목과 동등하게 해야 한다. 또한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선택’에만 맡기는 것이 교육적으로 타당한 것인가도 따져봐야 한다. 선택에 맡기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면 왜 의무교육과정은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헌법에 민주공화국을 표방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써 갖추어야 할 법적소양, 민주주의적 소양은 선택이 아닌 필수과정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이 공화국의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기억’을 지우고자 하는 자들이 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재 2009개정 교육과정에 따르면 학교장은 학교의 교육과정에 대해 20%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자율권을 주고 있다. 이것은 결국 학교 현장에서 사회탐구 수업의 축소와 국, 영, 수 수업비중의 확대로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분노가 필요한 시대

지금 뉴라이트세력과 이명박 정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13년까지 역사교과서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내놓고 시민교육을 담당하는 교과를 죽임으로써 시민운동의 뿌리를 제거하고자 한다. 2011년 경제교과서 개정안에는 ‘시장의 한계와 정부의 역할’이라는 대단원을 없애고 다른 단원에서 간략히 다루고 있고 대신 자산관리와 금융상품을 소개하는 내용을 새로 대단원으로 추가했다. 그들은 2007개정 교육과정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2009개정 교육과정을 내놓았고 2013년을 목표로 보통 2년 정도 걸리는 교육과정 개발을 4~5개월 만에 끝내버리고 보통 2년 걸리는 교과서 집필도 단 몇 개월 만에 완료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개정 시안에 대한 공청회를 2011년 6월 30일에 열면서 바로 전날인 29일 날 공청회를 공지한 정부다. 대다수 교사들도 모르게 교과서가 기업 프렌들리 편향으로, 뉴라이트 프렌들리 편향으로 바뀌고 있다.

나쁜 놈과 착한 놈이 싸우면 누가 이길 가능성이 높을까. 물론 나쁜 놈이다. 나쁜 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나쁜 놈은 또 착한 놈을 도덕 프레임에 가둬버릴 것이고 착한 놈은 그 프레임 속에서 허우적대며 나쁜 놈이 저지른 만행을 모두 용서하고 화해할 것인가. 그 때 착한 놈은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유로운 시민들의 분노다. 그리고 정의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울시흥중교사. 전국사회교사모임 회장. 학교가 학생이나 교사에게 행복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실현하고자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는 사회교사다. 100억 규모 교육연구재단을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도 함께 가지고 있다.
<주제가 있는 사회교실>(돌베개,2004), <사회선생님이 뽑은 우리사회를 움직인 판결>(휴머니스트, 2007) 공동저자. <공정무역 왜 필요할까>(내인생의 책,2010) 공역 출간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