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지구온난화를 1.5도 이하로 억제하려면 원전을 늘려야 한다는 내용의 2018년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 특별보고서 요약본에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 원본에는 정반대의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간 보수·경제지에서는 해당 보고서의 요약본을 인용해 원전 확대론을 주장해왔다.

10일 한겨레는 기사<찬핵 진영 '탈원전 반대' 근거 활용 유엔보고서 요악본에 오류 있었다>에서 "특별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찬핵 진영의 원전 확대 근거가 된 자료 가운데 일부 오류가 있었음을 총괄 주저자들로부터 확인했다"며 "오류 확인 요청을 받은 주저자들은 IPCC 사무국에 알려 관련 내용 수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한겨레가 재검토한 보고서는 IPCC 195개 회원국이 2018년 채택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의 요약본과 원본이다. 한겨레는 "요약본을 보면,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는 경로를 제시하며 '전력 생산에서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활용을 포함한 화석연료와 원자력의 비중은 대부분 증가하는 것으로 모델링됐다'고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면서 "이 서술은 그 근거로 표시돼 있는 특별보고서 본문의 분석 자료 내용과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2018년 10월 8일 인천광역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제48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총회'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한겨레는 "전세계 원전 발전량은 2020년 10.84EJ(엑사줄: 1줄의 10억배의 10억배)에서 2050년 21.97EJ로 갑절쯤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같은 기간 원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부분 증가'라는 요약본 서술과 달리 12.09%에서 8.1%로 오히려 줄어든다"며 "2050년까지 전지구적 전력 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나는데, 이것을 6배 가까이로 급증(26.28EJ→145.50EJ)한 재생에너지가 감당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전체 전력 수요에서 태양광을 포함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77.12%에 달한다.

한겨레는 특별보고서 총괄 주저자 3명에게 관련 질의를 보냈고, 답신을 보내온 2명으로부터 요약본 서술이 사실과 다르다는 데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임피리얼대 유리 로겔 교수는 "실로 불행한 불일치다. 대부분의 시나리오에서 핵발전이 증가해도 전체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실제 감소한다"고 했다. 미국 듀크대 드루신델 교수는 "바로잡을 수 있는 불행한 부정확함이었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했다.

2018년 10월 해당 보고서가 채택된 이후 보수·경제지는 IPCC가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5도 아래로 억제하려면 원전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고 보도해왔다. 당시 짐 스키 IPCC 실무그룹3 공동의장이 "IPCC는 특정 기술이 적정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각국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저희의 답"이라고 했지만, 마치 IPCC가 원전확대를 주장·권고한 것처럼 보도가 이뤄졌다.

문화일보는 2018년 10월 8일 기사 <"화석연료 사용 안하려면 原電비중 커질수밖에…" 재확인>에서 "IPCC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총 4가지의 이산화탄소(CO2) 배출 시나리오를 적용한 결과, 2100년까지 지구평균온도를 1.5도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1차 에너지(석유·원전·가스·바이오매스) 중 유일하게 원전만이 2030년에서 2050년 발전 비중이 더 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고 보도했다.

문화일보 김상협 사회부장은 2018년 10월 12일 칼럼 <원전 축소가 答 아닌 이유>에서 "IPCC 분석에 이제 문재인 정부가 진지하게 대답할 때다. 현 정부 들어와 탈원전 자체를 지고의 가치인 양 내걸면서 고탄소 에너지 비중은 오히려 증가한 반면, 원자력 비중은 하락 추세"라며 "IPCC의 권고와 배치된다. 지금과 같은 방식과 속도의 탈원전 정책을 고집하면 간극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2018년 11월 30일 문화일보 칼럼 <脫원전 자가당착 보여준 '체코 발언'>에서 "지구온난화를 1.5도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 원전을 늘려야 한다는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 협의체(IPCC)의 권고를 정부는 왜 듣지 않는가"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2018년 11월 14일 사설 <원전이 미세 먼지와 기후변화 막는다>에서 "IPCC는 특별 보고서에서 '기온 상승폭을 1.5도 아래로 묶으려면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을 59~106% 늘려야 한다'고 했다"며 "한국 탈원전 정책은 그런 국제 흐름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2018년 11월 6일 <"한국, 탈원전 이후 원전 수출 어려울 것>, 2019년 4월 5일 <화력발전 늘며 온실가스 초과 배출… 탈원전 2년만에 처리 비용 4배로>, 2019년 12월 21일 <세계 名士 53명 "EU, 원전 유지해야"> 등의 기사와 사설에서 IPCC 보고서의 특정 내용을 인용했다.

TV조선은 2018년 10월 8일 기사 <IPCC "지구 온도상승 1.5도로 제한하려면 원전이 뒷받침 돼야">에서 'IPCC가 원자력을 화석 연료의 대안으로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TV조선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이상 감축해야 한다며 1차 에너지 중 유일하게 원전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화석연료를 대신할 에너지로 원전을 인정한 거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원전 축소를 추진하고 있어 이번 IPCC 보고서가 우리 에너지 정책에 영향을 줄 지 주목된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2019년 1월 18일 기사<친원전으로 돌아선 해외 환경주의자들>에서 "지난해 10월 송도에서 열린 IPCC총회에서 ‘1.5도 특별보고서’가 만들어졌다. IPCC는 2100년까지 지구온도 상승 폭을 2도에서 1.5도로 제한하려면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내용"이라며 "1.5도 달성을 위해 이 보고서가 제시한 4가지 모델 경로에는 원전의 비율이 2010년보다 59~501%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한국경제는 2018년 10월 9일 기사<脫원전하며 온실가스 감축?…딜레마 빠진 정부>에서 'IPCC가 원자력 발전을 늘려야 한다고 권고했다'고 보도했다. 한국경제는 "'탈원전 정책과 온실가스 감축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는 지적이 나온다"면서 "탈원전 정책을 추진 중인 한국 정부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정부가 원전 조기 폐쇄, 건설 중단 등을 통해 원전을 에너지 시장에서 몰아내면 온실가스 배출량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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