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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 저널리즘·역검열 함정에 빠진 진보언론[세미나] 문제는 독자와 기사의 괴리…투명성에 대한 이견 제기돼
윤수현 기자 | 승인 2020.10.12 17:41

[미디어스=윤수현 기자] 현 정부 들어 언론자유지수는 꾸준히 상승했지만 언론 신뢰도는 세계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진보언론의 신뢰도를 문제삼는 지적은 매섭다. 진보언론의 ‘큰형’격인 한겨레는 ‘덤벼라 문빠’ 발언, 조국 사태 기사 제목 수정 사건 등으로 충성독자, 일반독자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김현대 한겨레 대표이사는 8일 열린 세미나 <신뢰받는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에서 “한겨레 충성 독자와 기사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표이사는 “독자들은 ‘정치적 성향에 맞는 사이다 보도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또한 기자들이 독자들을 가르치려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뼈아프다"면서 "한겨레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데, 이를 개척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2일 열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기자회견. 본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연합뉴스)

권태호 한겨레 부국장은 자사를 둘러싼 비판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권 부국장은 “추미애 장관 아들 논란을 다룬 기사 댓글을 보면 ‘박덕흠 의원 의혹이나 보도해라’는 비판이 있다”면서 “한겨레가 4일 연속 박덕흠 비판 기사를 1면에 작성한 건 안 보는 것이다. 기자들은 이런 상황을 디폴트(기본적)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권태호 부국장은 한겨레가 역검열 함정에 빠져있다고 진단했다. 권 부국장은 “신문은 특정한 독자의 관심과 이해관계에 복무할 책임이 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보도와 관련해 독자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권 부국장은 “(문 대통령 관련 보도를)엄밀하고 엄정한 잣대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면서 “일각에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비판 보도도 엄정하게 바라봤냐’는 지적을 할 수 있는데, 당시 보도에서 논리적 흠결이 있다면 해당 보도가 잘못된 것이지 지금의 방법이 틀린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권 부국장은 “조성길 대사대리 입국 사건 당시 ‘기사가 현 정부의 난처한 상황을 방어해주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사건을 크게 쓰면 독자들에게 비난받지 않을까’ 하는 역 검열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엄정한 보도행태를 지향한다면 신뢰성 확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뢰도 하락은 언론 전반에서 나타나는 문제다. 지난 6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에 따르면 한국 언론 신뢰도는 21%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40개국 중 꼴찌이며 2017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최하위권이다.

단발성 속보 중심의 취재 관행은 언론 전반 신뢰도 하락에 한몫하고 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는 “기자들은 더 이상 목숨 걸고 기사를 쓰지 않는다”면서 “속보 경쟁이 과열되면서 일단 손에 잡히면 써야 하는 구조다. 뼈다귀를 보면 덤벼드는 강아지처럼 논란이 되면 비슷비슷한 기사 수백 건이 한꺼번에 쏟아진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독자들은 이슈를 소비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이슈로 옮겨가고, 뉴스에 나오지 않는 진짜 진실을 갈망한다. 속보 중심의 취재 관행을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의 실수 인정·투명성 확보가 신뢰도 회복의 주요 과제로 꼽혔다. 이정환 대표는 “기자들은 실수에 겸허해질 필요가 있다”면서 “잘못된 기사에 대한 AS를 해야 한다. 실수를 인정하고 오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뉴스 브랜드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양순 KBS 저널리즘토크쇼J 팀장은 “일부 언론은 이미 올린 기사를 새것처럼 포장해 다시 올리곤 한다”면서 “언론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기사 수정 이력제를 시행해야 한다. 언론사가 기사에 어떤 수정을 했는지 투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권태호 부국장은 투명성 확보 요구에 대해 “언론사가 투명해지면 더 많은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부국장은 “의사 파업 사태 후 시민들은 의사들의 인식이 어떠한지 알게 됐다”면서 “투명해지면 좋다. 하지만 한겨레를 포함한 다수 언론이 투명성을 강화하면 ‘기레기’라고 더 많은 욕을 먹을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권 부국장은 "후배기자들은 잘못이 없음에도 인신공격에 시달리고 있으며, 여성 기자들은 성적 폭력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YTN 유튜브 화면 갈무리

김양순 KBS 저널리즘토크쇼J 팀장은 “언론사 수익구조는 모든 저널리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면서 “돈을 벌지 못하니 선정적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바늘로 찔러도 터지지 않는다’는 보도가 이어졌다”면서 “명백한 오보다. 하지만 YTN은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삭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YTN 영상은 160만 조회 수를 기록했고 많은 광고수익을 가져왔을 것”이라면서 “돈이 되니까 (오보로 밝혀졌음에도) 영상을 계속 업로드한다"고 말했다.

수익성 문제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언론사 운영 모델을 ‘광고’에서 ‘후원·유료구독’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정환 대표는 “세계적으로 수많은 언론사가 문을 닫는데 한국에서는 망하는 언론사가 하나도 없다”면서 “한국의 신문사들은 광고주와 유착하고 지면을 팔면서 연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언론사는 생존이라는 변명, 저널리즘 원칙 희생 대가로 독자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유료) 구독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독자가 언론사에 귀 기울이고 돌아오게 만드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뉴스가 포털을 중심으로 소비되면서 시민들은 돈을 내지 않고 기사를 본다”면서 “시민들이 네이버 웹툰을 보기 위해 지갑을 여는 것처럼 공짜뉴스 관행을 바꾸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구독료·후원 중심 언론사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대 대표이사 역시 "독자들이 주머니를 열고 후원할만한 뉴스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면서 "내년 초에는 어설프게라도 후원·구독 모델 첫선을 보이겠다"고 강조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간한 ‘디지털뉴스리포트 2020’에서 한국은 언론 신뢰도 21%로 조사 대상 40개국 중 최하위로 나타났다. (사진=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은 '사이다 저널리즘'(정파적 기사) 요구에 대응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면서 “언론이 사이다 저널리즘 요구와 저널리즘 가치를 절충하는 것이 과제”라고 밝혔다. 남 교수는 '시민인륜 저널리즘'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시민인륜’은 프랑스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가 제시한 개념으로 “윤리적으로 검증된 사회정의”를 뜻한다. 시민인륜 저널리즘은 규범적 판단을 통해 정치적 현실을 바라보고, 윤리적 기준을 시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남재일 교수는 시민인륜 저널리즘의 구체적 실천방안에 대해 "언론사는 사회적 폭력 비판을 편집의 최우선 원칙으로 공유하고 이를 보도준칙에 지속해서 축적해야 한다. 여성·동물권·퀴어 등 이슈에 대한 정치화를 강화하고 사설·시민편집인 칼럼 등으로 시민인륜의 정치적 지속성을 표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현대 대표이사는 영상 뉴스 플랫폼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최근 한겨레는 한국경제·한국일보 등과 함께 YTN 지분인수 사업자로 거론되고 있다. 김 대표이사는 “한겨레 뉴스룸을 디지털뉴스룸으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또한 젊은 독자와 교감하려면 영상 뉴스 플랫폼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뢰받는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세미나 (사진=미디어스)

이번 <신뢰받는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세미나는 한국언론학회·한겨레신문 공동주최로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발제자는 남재일 경북대 교수·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이며 토론자는 권태호 한겨레신문 부국장·김양순 KBS 팀장·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최지향 이화여대 미디어학부 교수·홍성철 경기대 교수 등이다.

윤수현 기자  melancholy@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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