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관련된 한 언론 보도가 눈길을 끌었다.

'육상대회 사표 우려는 기우?…암표상까지 설쳐'라는 제하의 보도에서 기자는 "입장권을 사고도 경기장을 찾지 않는 이른바 사표(死票)가 많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많았지만, 대회가 개막하자 경기장 주변에 암표상이 출현할 정도로 대회 참여 열기는 뜨거운 것으로 나타났다."고 적고 있다.

실제로 대회 개막 당시만 하더라도 사표에 대한 걱정은 기우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대회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개회식이 열린 지난 27일 오후 입장률은 99.5%를 기록해 사실상 만석을 기록했다.

또한 대회 2일째인 28일 오후 경기 입장객은 모두 3만 2천 464명으로 만석인 3만 4천 30석의 95.4%였고, 이날 하루 평균 입장률은 80.1%로 나타났다. 특히, 우사인 볼트가 출전한 남자 100미터 결승전을 보려는 사람들 때문에 경기장 주변에는 암표상까지 등장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29일 부터 열리는 평일 오전 경기는 입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만,대회 참여 열기가 예상외로 높아 주요 경기 결승전이 열리는 오후 경기 입장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기사를 읽어내려가며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고, 이번 대회를 통해 육상의 묘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 저변 확대로 이어졌으면하는 기대 섞인 바람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29일 밤 대구육상 하이라이트를 방영하는 TV를 본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남자 장대높이뛰기와 여자 투포환, 그리고 남자 해머던지기 경기 하이라이트를 시청하는 내내 필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텅텅 비어 있는 수준의 관중석이었다. 그나마 관중석을 메우고 있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경기를 펼치고 있는 선수들의 코치와 동료 선수들이었다. 그들마저 없었다면 경기장을 더욱 더 썰렁했을 것이다.

대회 조직위원회 측에서 자랑하는 만석에 가까운 입장률이 사실은 허수일 수 있다는 의구심이 강하게 듦과 동시에 당초 주최측에서 우려했던 사표에 대한 걱정이 결코 기우가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98%를 상회한다는 입장권 예매율에도 불구하고 그 중 80%가 기업과 단체에 사실상 떠넘겨진 단체관람티켓인 이유인데다, 티켓을 가진 사람들이 일단 단체로 경기장에 입장했다가 짧은 시간만 경기장에 머물다 바로 경기장을 빠져나가버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회 3일째인 30일 매경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경기는 선수들이 텅 빈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펼쳤다. 이날 오전에는 개학을 맞은 대구 초ㆍ중학교 학생 수천 명이 대거 동원됐지만, 낮 12시를 전후해 모두 빠져나가자 일부 외국인만 듬성듬성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에서 암표상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이유는 왜일까?

한 대구 지역 언론에 따르면 암표상들은 주로 대구스타디움 앞 지하보도와 셔틀버스 승강장, 입장권 판매소 등지에서 시민들에게 싼값에 표를 사서 비싼 값에 되팔아 이윤을 남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셔틀버스 승강장에서 만난 한 암표상은 “1만 원짜리 입장권의 경우 5천 원에 사서 2만 원에 되판다”며 “경기장을 찾는 시민들이 많아서 암표를 구하려는 관중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는 벌이가 시원찮다”고 했다. 다른 50대 암표상은 “평소에는 야구장에서 암표를 판매하는데 대구에서 경기가 없는 날에는 스타디움으로 원정 나오는 암표상이 많다”고 전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암표상들이 1만 원 짜리 티켓을 5원에 사서 2만 원에 되판다는 대목이다. 결국 티켓을 5천 원에 암표상에 넘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고, 이 같은 헐값에 티켓을 넘기는 사람들은 역시 거의 공짜로 단체티켓을 보유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경로로 사들인 경기 티켓은 외국인들을 포함한 외지인들에게 원래 가격에 두 배가 넘는 액수에 팔려나가고 있는 셈이다.

경기장에 왔다가 금세 사라지는 사람들과 경기장에 오지도 않고 티켓을 헐값에 암표상들에게 넘긴 사람들 때문에 경기장 관중석은 텅텅 비었는데 경기장 밖에서 티켓이 없어 경기장에 입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후진국에서나 벌어질 법한 기형적인 현상이 우리 정부가 기회가 될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해마지 않는 'G20 정상회의 의장국' 대한민국의 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구세계육상을 둘러싼 사표와 암표 사이의 민망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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