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승 금메달 예약을 부도내고 말았다.

볼트는 지난 28일 오후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승에서 부정출발로 실격, 지난 2009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은 이 종목 2연패 달성에 실패함과 동시에 세계선수권대회 2회 연속 3관왕 등극도 일찌감치 무산시켰다.

출발 직전 여유로운 모습과는 달리, 스타팅블록에서 출발 준비 자세를 취한 볼트는 이내 긴장한 모습을 보이더니 출발선을 떠나자마자 자신의 실수를 직감하고 유니폼 상의를 벗어제치며 분노와 아쉬움을 표현했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지난해 1월부터 부정출발을 한 선수는 곧바로 실격 처리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이처럼 바뀐 규정이 적용되는 첫 세계선수권대회다.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한 번의 실수로 어이없이 탈락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데 대해 전문가들은 대부분 다른 경쟁 선수들보다 스타트에 약점에 있다는 사실을 볼트 스스로 너무 의식하고 부담을 가진 탓에 벌어진 일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부 외신 보도에 따르면 볼트는 경기 직후 경기장 바로 옆에 위치한 보조 트랙에서 굳은 표정으로 아무도 없는 트랙을 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볼트는 그러나 취재진의 이런저런 질문에 "지금은 할 말이 없다. 시간이 필요하다.(I have nothing to say right now. I need some time)"면서도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기대했는가. 그럴 일은 없다. 난 괜찮다"며 "200m 경기가 금요일인가? 그럼 그때 봅시다"라며 주종목인 200m에서 명예회복을 다짐했다.

볼트 본인은 연습트랙에서의 '나홀로 질주'를 통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상심을 되찾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후원사인 '푸마'나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볼트와 함께 동행한 푸마 관계자는 "믿을 수 없다(I can not believe)는 말을 몇 차례씩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고, 볼트의 가족들은 단 한 차례의 부정출발로 선수를 실격시키는 국제연맹의 규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볼트가 연출한 충격의 실격 사태는 볼트 본인에게나 그를 지원하는 많은 이들에게 크나큰 실망감을 안겨줄 만한 일임에는 틀림없으나, 대구를 세계 최고의 이슈를 생산해 낸 곳으로 세계인들에게 각인시켜줬다는 점에서 보면 대회조직위 측이 볼트에게 특별 메달이라도 하나 만들어 줘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사실 이번 대회 남자 100m 결승은 타이슨 게이(미국), 아사파 파웰(자메이카) 등의 불참 속에서 일찌감치 볼트의 독주가 예상됐고, 그나마 경쟁자들로 꼽혔던 선수들의 면면도 변변치 않아 세계신기록 경신 가능성도 낮게 점쳐졌던 탓에 당초의 기대보다는 볼거리가 덜하다는 인상이 강했다.

실제로 볼트마저 어이없는 실수로 실격되면서 다소 맥이 빠진 상태로 치러진 100m 결승에서는 볼트의 훈련 파트너 출신의 요한 블레이크(자메이카)가 9초92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블레이크는 파웰과 게이가 빠진 이번 대회 남자 100m에서 다크호스로 지목받았던 선수로, 특히 대회 직전 미국의 전 세계기록보유자 모리스 그린도 블레이크가 우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블레이크의 기록은 볼트의 세계기록(9초58)에 한참 못 미치는 기록이었다. 볼트가 부정출발을 할 정도로 강박관념을 갖지 않고, 자기 능력의 70-80% 정도만 발휘했어도 충분히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해 특유의 화살 세리머니를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볼트의 실격은 이번 대회 남자 100m를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건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냈다. 다른 의미의 볼거리 내지 화젯거리를 볼트 스스로 만들어 제공한 셈이다.

그런 이유로 당초 이번 대회 최고의 이슈 메이커로 꼽혀온 볼트는 사람들이 기대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통해서이기는 하나 결국 스스로 자신의 '입지'를 지켜냈다.

어쨌든 세계선수권 2회 연속 3관왕으로 가는 첫 걸음에서 발목을 접질린 볼트가 나머지 200m와 400m 계주에서 압도적인 스피드로 분풀이 금메달 행진을 펼쳐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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