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나아가 한국 축구 판을 완전히 뒤엎은 승부 조작 사태가 결국 47명의 영구 제명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5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승부 조작에 직, 간접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드러난 선수 또는 선수 출신 브로커 47명에 대해 영구 제명 중징계를 내렸으며, 이 가운데 자진 신고한 25명에게는 일정 기간 보호관찰 후에 선별적으로 복귀를 허용하는 안을 확정, 발표했습니다. 뿌리 자체를 뒤흔들었던 승부 조작 사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담했던 선수 전원을 K리그 무대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자진 신고한 선수들에게 복귀를 허용하는 안에 대해서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어쨌든 승부조작 사태가 최악의 결말로 이어진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번에 발표된 징계자 명단을 들여다보면 특히 축구대표팀에 오랫동안 몸담았거나 청소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 주목받았던 선수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습니다. 한때 한국 축구 유망주, 축구 천재라는 수식어를 들었다가 검은 돈의 세계,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일그러진 옛 천재'로 몰락한 것은 한국 축구 전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겼습니다.

▲ 최성국 ⓒ연합뉴스
최성국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선수로 꼽힙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어 연습생으로 발탁된 뒤 성인대표팀, 청소년대표팀에서 꾸준하게 활약하며 '리틀 마라도나'라는 별칭도 얻었을 정도로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꼽혀 왔습니다. '포스트 한일월드컵' 차세대 주자로 꼽히며 '축구 천재'로도 거론됐던 최성국은 잠시 방황하다, 2008년 광주 상무에서 재기의 신호탄을 알리고 일본 J리그 올스타와의 한-일 올스타전에서 펄펄 나는 활약을 펼치며 다시 떠오르는 듯했습니다. 월드컵 인연은 없어도 꾸준하게 성인대표 무대에서 활약했던 그였기에 언젠가는 폭발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습니다. 최성국은 지난해 상무 제대 후 원 소속팀 성남 일화를 거쳐 올해 수원 삼성에 이적해 팀 주장까지 맡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승부조작 사태 후 뻔뻔한 태도를 보이다 덜미를 잡히며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승부조작이 터져 K리그 전체 워크숍에 참석했을 당시만 해도 최성국은 '승부조작이 나한테는 없었다. 모르는 전화는 안 받는다. 여태껏 부끄럼 없이 살았다"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수사 압박이 이어지자 한 달이 지나서 승부 조작 사실을 자진 신고하면서 고개를 숙여야만 했습니다.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한 프로축구연맹은 자진 신고 선수 가운데서도 A등급으로 분류해 사실상 한국 축구 무대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최성국과 함께 히딩크 감독의 연습생으로 발탁됐던 골키퍼 염동균도 이번 승부조작 사태에서 고개를 숙인 '옛 유망주'였습니다. 고교 시절 김영광과 최고 자리를 다툴 정도로 기량이 출중했고, 그 덕에 2002 한일월드컵 연습생으로 골키퍼 가운데 유일하게 발탁돼 좋은 경험을 했던 염동균은 한국 축구 골키퍼의 미래와도 같은 선수였습니다. 김영광의 그늘에 가리고 이운재, 정성룡 등의 아성도 넘지 못해 국가대표 골키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어도 안정감 있고 꾸준한 기량은 많은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고 여전히 국가대표급 골키퍼로서 명성을 날렸습니다. 올 시즌에는 최강희 감독의 전북 현대로 이적해 주전 골키퍼로 낙점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지난해 승부조작 제의를 받아들인 뒤, 불성실한 플레이로 팀 패배에 큰 역할을 했고 이 사실이 드러나면서 보호관찰 없이 영구 퇴출이라는 징계를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이미 염동균은 검찰에서 구속돼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상황입니다.

유럽 유학파 출신 권집과 어경준의 승부조작 연루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어경준은 2002년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 해외유학 지원프로그램 1기로 프랑스 리그 FC 메츠에서 활약했으며, 권집은 같은 해 독일 FC 쾰른 유소년팀에 들어가 현재 독일 축구 최고 스타 루카스 포돌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정도로 기량이 출중했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K리그 무대에 들어온 뒤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던 이들은 승부조작에 연루된 사실이 알려졌고, 결국 스스로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내고 말았습니다.

그밖에도 성실한 선수로만 알려졌다 실망감만 안긴 승부 조작 연루 선수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조광래 감독의 꾸준한 관심을 받았던 수비수 이상덕, K리그 베테랑 김정겸, 박병규, 소속팀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던 장남석, 송정현, 백승민, 전 올림픽대표 출신 골키퍼 김지혁, K리그 최장거리 골 기록을 갖고 있는 도화성 등이 승부 조작 명단에 포함돼 있었습니다.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경기를 통해 돌려주겠다고 한 프로 선수답지 않게 이들은 승부조작을 통해 팬들을 기만하고 배신하는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이런 선수들이 국가대표 출신이고, K리그 대표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들의 사정이 딱했다고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경기 전 페어플레이(Fair Play) 기를 앞세우고 경기에 입장했을 정도로 그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들이 한순간의 유혹에 견디지 못한 것은 결코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프로 선수들이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을 이들은 제대로 어겼습니다. 무엇보다 태극마크를 달았고 팬들의 지지, 관심을 누구보다 많이 받았던 선수들이 보여준 '범죄 행위'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이 절대 K리그, 한국 축구 무대에서 나타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씁쓸하지만 이번 중징계를 통해 다시 한 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이런 악몽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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