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에 북미에서 개봉했던 <행오버2>는 첫 주말에 약 8,600만 불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이는 전편의 그것을 뛰어넘은 것은 물론이고, 모르긴 몰라도 코미디 장르로는 열 손가락 안에 들고도 남을 금액일 겁니다. 제가 이 소식을 미국 박스 오피스 소식에서 기쁘게 전하는 한편으로 크게 안타까워했었죠. 국내에선 개봉하기 힘들 것 같았거든요.

'박스 오피스 모조'의 자료에 따르면, 1편은 총 약 2억 7,732만 불의 수입으로 역대 코미디 영화를 통틀어 1위에 올랐습니다. 그 정도로 상영 당시에 폭발적인 흥행세를 보였으나 어인 일인지 국내에서는 개봉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R 등급이란 점도 조금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음담패설이 난무하고 시끌벅적한 미국 코미디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영화를 직접 본 후에는 조금 이해가 안 되더군요. 세 얼간이들이 펼치는 포복절도의 코미디가 국내에서도 충분히 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편이 개봉하지 않았으니 <행오버2>가 개봉하리란 기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판타스틱4>가 개봉했을 때 "1, 2, 3편은 언제 개봉했지?"라며 웃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만약에 <행오버2>가 개봉하면 저 농담이 실없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현실이 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셈인데, 놀랍게도 정말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국내에서도 1편의 반응이 좋은 걸 감안했는지 <행오버2>를 극장에서 개봉시키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반갑게 맞이한 <행오버2>의 대략적인 틀은 1편과 흡사합니다. 미스터리의 구조를 도입 및 활용하고 있는 코미디 영화라고 할까요? 사실 흡사한 정도가 아니라 1편이 밟아 나갔던 노선을 고스란히 뒤따라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1편에서는 세 얼간이가 또 한 명의 친구인 더그의 결혼식을 앞두고 총각파티를 열고자 라스베가스로 향합니다. 흥청망청 마시고 요란(음란?)하게 놀던 이들은 이튿날에 더그가 사라진 걸 깨닫고 혼비백산합니다. 곧 결혼식을 치러야 하는 신랑이 온데간데없고, 설상가상 세 얼간이는 필름이 끊겨 간밤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작은 단서에 매달린 이들은 더그를 찾기 위해 라스베가스를 헤집고 다닙니다.

<행오버2>의 구성도 동일합니다. 이번엔 더그 대신에 1편에서 이가 빠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결혼까지 했던 스튜가 정식으로 결혼식을 앞두고 있습니다. (참고로 라스베가스는 결혼식 절차가 간단합니다. <라스베가스에서만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영화를 보면 잘 알 수 있죠) 스튜는 태국사람인 신부를 배려해 그녀의 고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합니다. 그와 함께 다른 세 친구도 태국으로 날아가는데, 1편과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결혼식 이틀 전 날에 가볍게 술 한 잔 하려던 게 일이 꼬이면서 또 필름이 끊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일이 있을지 상상이 되시죠?

세 얼간이는 생판 모르는 방콕의 한 방에서 깨어났고, 당연히 누군가가 사라졌습니다. 다시 한 번 당연하게도 이들은 사라진 사람을 찾고자 방콕을 헤매기 시작합니다. 1편과 마찬가지로 그 과정에서 별별 희한한 일을 겪게 되는 것이 <행오버2>가 웃음을 유발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약발은 전편만 못한 것 같습니다.

<행오버2>처럼 속편부터 먼저 봐야 할 경우가 생기면 흔히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1편을 봐야 할까요?"가 그것인데, 이번에는 현명한 대답을 하기가 좀 난감합니다. 분명 1편을 본 사람이라면 <행오버2>를 즐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캐릭터들이 내뱉는 대사인 "Again?"이나 "Classical!"을 들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죠. 반면에 판박이처럼 닮은 구성과 전개에는 흥미가 반감하게 됩니다. 세세한 부분 - 예를 들어 이번에도 더그는 얼간이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것 - 까지 1편과 닮았다는 것은, 곧 <행오버2>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 것인지를 이미 모두 공개한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이런 부류의 영화가 흔치 않은 것은 절대 아니니 새삼스러울 일은 아닙니다. 다만 얼마나 알차게 엮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마련인데, <행오버2>는 1편에 비해 몇몇 에피소드가 주는 웃음의 강도가 약합니다. 무엇보다도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세 얼간이 외의 주변 캐릭터가 적잖이 부실합니다. 1편의 차우(켄 정), 마이크 타이슨(마이크 타이슨!), 제이드(헤더 그레이엄)보다 존재감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이들처럼 제 몫을 훌륭하게 해냈던 조연의 역할이 사라진 <행오버2>가 세 얼간이만으로 버티기에는 무리가 따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게다가 '똘끼'로 충만했던 자흐 가리피아나키스의 캐릭터가 조금은 얌전해진 것도 극의 재미를 덜고 있습니다. 미국식 화장실 유머에 환장하는 덕에 빵 터진 대목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만 가지고 이 영화가 좋았다고 말하긴 힘드네요.

1편을 보지 않았다면 오히려 <행오버2>를 더 재미있게 볼 확률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1편을 본 사람은? 말했다시피 이 질문에는 어떤 판단을 내리기가 참 난감합니다. 익숙해서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도, 졸린 눈을 비빌 수도 있습니다.

★★★

덧) 엔딩 크레딧의 구성도 1편과 똑같습니다. 손가락에 얽힌 사연(?)이 궁금하신 분들은 엔딩 크레딧을 놓치지 마세요.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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