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과거 MBC 보도국 카메라 기자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던 기자가 해고무효확인 항소심에서 승소해 복직하게 되자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7일 "블랙리스트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노조 탄압의 증거"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재판부의 판결을 비판하고, 권 모 카메라 기자의 복직으로 인한 파장을 우려했다.

2012년 MBC 파업 당시 '제대로 뉴스데스크' 보도 화면 갈무리

서울고등법원 민사1부는 지난달 28일 권 전 MBC 카메라 기자가 MBC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항소심에서 “권씨에 대한 해고는 무효”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법원의 1심 판결은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권 전 기자는 2018년 5월 블랙리스트 문건을 만든 당사자로 지목돼 해고당했다. 권 전 기자의 해고 사유는 '복무 질서 위반', '블랙리스트 문건에 기초해 작성한 인사이동안을 인사권자에게 보고한 점', '문건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 명예훼손, 모욕죄를 저지른 점' 등 3가지였다.

2심 재판부는 해고사유 3가지 중 회사의 복무 질서를 위반했다는 점만 징계사유로 인정했을 뿐, 명예훼손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건 맞지만 일부 집단에서만 공유돼 법리상 모욕·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언론노조 MBC본부는 “권 씨의 블랙리스트는 공정방송을 지키기 위해 자유와 독립성이 생명인 언론사에서 만들어져선 안 될 것이었다”며 “언론자유를 저해한 악질적인 행위였음은 물론이고, 구성원과 조합에 크나큰 해악을 미친 사건이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7년 MBC감사국을 통해 드러난 블랙리스트는 보도국 카메라 기자 65명의 성향을 ‘친노조’ 여부에 따라 분류한 명단이었다. 회사에 대한 충성도와 노조 참여도에 따라 기자들을 총 4등급으로 분류하고 '계속 격리', '방출필요', '주요관찰대상', '회유가능' 등으로 구분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영상기자 업무를 박탈당하거나 승진인사에서 배제됐다.

MBC본부는 “아직도 블랙리스트의 피해자들은 당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심 재판부는 블랙리스트 작성을 개인 일탈 행위로 보면서, 권 씨가 동료들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기술했다”며 “백번 양보해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꾼 납득할 수 없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블랙리스트 문건은 권씨 혼자 작성하고 보관한 문건이 아니다”고 법원 판결을 반박했다. MBC본부는 “이 문건은 당시 ‘회사 정책에 충성하는’ 이들에게 전달됐다. 단지 외부에 들키지 않았을 뿐, 사실상 특정 집단 안에서 블랙리스트는 공유되고 있던 셈”이라고 말했다.

또한 “문건이 분류한 대로 친노조 성향인 직원들은 ‘유배’되거나, 주요 부서에서 쫓겨났다”며 "당시 사원이었던 권 씨는 동료선후배들의 ‘인사이동안’을 작성해 부국장급 인사권자에게 전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MBC본부는 "권씨의 블랙리스트 작성이 ‘노조 소속 직원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게 돼 작성했다’는 개인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으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며 "전사적으로 작성된 블랙리스트의 실체, 불법행위의 맥락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MBC본부는 ”다시 엄정한 법의 판단을 요청한다“며 ”두번 다시 MBC에 ‘블랙리스트’를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권 전 기자는 MBC본부가 체결한 단체협약에 따라 판결문을 송달받을 예정일인 9일 복직한다. MBC의 상고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으나 법무팀 관계자는 “1심과 정반대되는 2심 판결이 나왔기에 3심 대법원에 상고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영상 기자들 역시 법원의 판결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김기덕 영상기자회장은 “2심 판결에 인정 못하는 분위기다. 2심 판결에서는 명예훼손을 가볍게 본 것 같은데 잘못된 판결이기에 대법원까지 가서 다퉈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동료 기자들의 반응에 대해 “다들 말을 잇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때 같이 밥을 먹고 생활했던 동료가 ‘우유부단하다’, ‘친노조 성향이다’ 등의 등급을 매기고 평가했다는 데 대해 엄청난 배신감이 있다”며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는 이도 있고 저를 포함한 당사자들이 받은 트라우마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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