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의 평가전 패배 이후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조광래호가 서서히 수렁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당장 2주 뒤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해외파 가운데 이청용, 구자철이 부상으로 한동안 뛰지 못하고 '뉴 캡틴박' 박주영 역시 이적 문제 때문에 아직 완전하게 자리잡은 상황이 아니라 분위기가 어수선합니다.

그래도 3차예선 2연전은 치러야 하고, 첫 단추는 무조건 잘 꿰야 합니다. 이를 위해 조광래 감독은 K리그에 눈을 돌렸습니다. 그 때문에 월드컵 3차예선 엔트리 발표도 한 주 미뤘습니다. 주목할 것은 조광래 감독을 비롯해 전임 국가대표 감독들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해외에 진출한 선수들을 점검하러 가던 이전 모습과는 다르게 K리그 선수들 가운데서 주요 전력 자원을 찾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한창 리그가 진행 중인 만큼 경기력이 물올라 있는 선수 가운데 즉시 전력이 가능한 K리거를 뽑아 활용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축구 국가대표에서 해외파가 차지한 비중은 점점 커졌습니다. 조광래호 출범 이후에는 그 비율이 더 커져 해외파 선수가 전체 엔트리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월드컵 3차예선을 앞두고 각 소속팀에 차출 공문을 보낸 해외파 선수 역시 13명으로 그 비중은 국내파보다 많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 조광래 감독 ⓒ연합뉴스
선진 무대에서 최상의 전력, 컨디션을 유지하고 대표팀에서 활약한다면 천군만마나 다름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해외파 선수들의 모습에 자극받아 K리거들도 실력을 쌓아 떠오른 경우 역시 많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해외파 선수들보다 K리거들이 더 좋은 활약을 펼치고,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 AFC 챔피언스리그 2연패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럼에도 해외파 선수들이 해외에 나갈 만큼 국내파보다는 경쟁력에서 앞설 것이라는 편견, 고정관념 때문에 실력 있는 K리그 선수들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도 국가대표팀에서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저평가된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감독 나름대로 동등한 조건에서 실력만을 보고 선수를 선발한다고 하지만, 상대적으로 K리그 선수들이 덜 주목받았던 것은 엔트리 발표 때나 베스트 11 선발 때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 국가대표에 경쟁력 있는 K리거들을 꾸준하게, 보다 더 많이 등용시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프리미엄, 특혜보다 오로지 실력만을 갖고 공정하게 선수 선발을 해서 선수들의 동기 부여, 경쟁력을 유발시키고 나아가서는 전체적인 경기력 향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고질적인 문제였던 주전-비주전 차이도 줄이고, 국가대표에 몸담았던 국내파 선수들로 인해 다른 K리거들에게도 '국가대표 효과'를 미칠 수 있는 장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주목할 만한 K리거를 보기 위한 목적으로 선수 선발 일정을 미룬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K리그 선수들만을 통해 충분히 전력 운영이 가능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K리그가 해외파 선수들 못지않게 현재 분위기, 수준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평소 거의 매주 K리그를 관전하고 있는 조광래 감독과 코칭스태프라 해도, 신중해야 하는 분위기에서 K리그를 통해 해법을 찾고 싶어하는 모습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일입니다.

현재 조광래 감독이 주목하고 있는 K리거는 여럿 있습니다. 박주영의 부진에 대비해 최근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신예 스트라이커' '황선홍의 후계자' 고무열(포항)에 일단 가장 많은 눈길이 갑니다. 또 이청용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돌파형 윙어' 이승현(전북), 꾸준한 활약이 돋보이는 염기훈(수원) 등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드필더 다양화를 위해 U-20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윤일록(경남), 김영욱(전남)도 생각해 볼 만한 대상입니다. 부산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는 한상운, 임상협도 국가대표 중용이 거론되고 있는 선수입니다. 해외파 선수들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진다 해도 이들은 모두 K리그에서의 활약을 통해 꾸준하게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K리거들입니다. 이번 주 선수들의 활약상을 통해 선수 선발을 하겠다고 했으니 거론되는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기회를 얻어내려 할 것입니다.

누가 새롭게 발탁되든, K리거 국가대표는 해외파 선수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보완하며 그 이상의 몫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역량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 선수들에 좀 더 많은 기회와 시간을 줘서 서서히 키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고질적인 약점도 극복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선수에게는 새로운 꿈과 기회를, 한국 축구 전체적으로는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국가대표팀, 그리고 리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가능성 있는 실력파 K리거들을 보다 많이 중용하고 관심을 가져서, 해외파와 국내파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기복 없는 조광래호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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