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올림피아 스타디온)은 독일 스포츠 뿐 아니라 세계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경기장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36년 베를린 하계올림픽을 비롯해 2006년 독일월드컵 결승전, 그리고 200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까지 3개의 스포츠 메가 이벤트를 모두 치른 전 세계 유일한 경기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3개의 스포츠 이벤트를 수십 년에 걸쳐 모두 치러낼 만큼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은 뛰어난 관리와 보존, 그리고 독일 국민들의 엄청난 사랑과 관심을 통해 수십 년째 독일을 대표하는 경기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여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는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을 보면 경기장 사후 관리에 대해 늘 골머리를 앓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교훈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 독일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온
하지만 그런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씁쓸한 '단어 2개'를 발견하게 됩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우승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판에서 볼 수 있었던 단어 'Son, Japan'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제 치하에 우리 민족의 한을 토해내기라도 하듯 빼어난 레이스 운영을 펼치며 세계신기록(2시간29분19초2)을 수립하고 금메달을 목에 건 '영웅' 손기정의 국적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Japan이라고 남아있는 것을 경기장에서 직접 보니 한숨이 나오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승자 기념판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새겨진 'SON JAPAN'을 'KOREA'로 바꾸기 위한 노력은 계속 있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1970년 8월 15일, 신민당 초선의원이었던 박영록 의원이 배낭에 끌, 망치, 시멘트를 넣고 경기장에 들어가 손기정의 국적을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꾸기도 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박 의원이 귀국할 당시 손기정은 김포공항에 마중 나와 “부모님도 못하던 일을 해줬다”며 고마워했던 말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개인,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부의 무관심 속에 한국은 다시 일본으로 바뀌었고, 이는 이후 수십 년째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 올림픽 우승자 기념판 위에서 여덟번째에 새겨져 있는 SON JAPAN
이뿐만 아닙니다. 혹시나 해서 이날 베를린 경기장 방문을 마치고 곧바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홈페이지를 검색해보니 손기정 이름은 일본 이름 '기테이 손(Kitei Son)'으로 명기돼 있었습니다. 대한체육회와 민간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기테이 손 대신 손기정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해서 이를 관철시켰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다시 기테이 손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지금도 손기정을 소개하는 페이지를 가면 '기테이 손'이라고 표기돼 있으며, 한국이 아닌 일본 페이지에 들어가야 그의 옛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민족의 기개를 드높인 영웅, 손기정이 올림픽을 제패한 지 8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IOC와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측은 출전 당시 기록된 국적, 이름에 따라 명기된 것이기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한국을 기만하는 생각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이런 생각을 뒤집어 그대로 관철시킬 수 있게끔 정부 차원에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과오를 바로잡고, 민족의 설움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마땅하게 이뤄져야 하는 것을 정부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 부분이 더 화가 나는 게 사실입니다. 올림픽 등 메가 이벤트 유치에는 열을 올리면서 정작 한국 스포츠 발전의 초석을 다진 손기정 선생의 이름, 국적에 외교적인 노력을 다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부끄럽기만 합니다.

영원히 이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기념판에 'Son Japan'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또 계속 해서 'Kitei Son'이 버젓이 IOC 홈페이지에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스포츠 영웅을 재조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겠다는 정부, 그리고 체육계가 발벗고나서서 이를 바로잡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광복의 기쁨을 기념하는 날, 손기정 선생도 언젠가는 하늘에서 '진정한 광복'을 지켜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에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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