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광구를 보고 나서 솔직하게 물어보았다. 이 영화 정말 쓰레기 영화인가? 대답은 '아니다'였다. 거의 바닥으로 가 있는 평점 또한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석해보면 정말 최악의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 왜 이리 혹평을 받는 것일까?

그 이유를 찾아보기 위해서는 영화가 가진 미덕은 무시하고, 오로지 단점만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도대체 7광구 뭐가 문제인가?


문제 1. 캐릭터 구축 실패

7광구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캐릭터 구축에 실패했다. 이렇게 단선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설득력 있는 캐릭터를 구축하지 못한 것은 치명타다.

감독은 이 영화가 망하면 안 된다는 아주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캐릭터를 배치한다. 대표적으로 송새벽과 박철민이라는 대한민국 최고의 조연, 그것도 웃기는 데에는 도가 튼 배우를 두 명이나 배치하고, 그것으론 부족했는지 이한위라는 역시 또 대단한 배우를 추가 투입한다. 캐릭터가 몇 명 나오지도 않는 영화에 웃기는 역할을 해줄 조연 캐릭터를, 그것도 무척 강한 인물들로 세 명이나 배치한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웃기려는 자신들의 목표에는 열심히 접근했지만, 영화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야기에서는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야기의 진행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흐름을 막는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의 범인을 단정 짓고 그 범인을 잡으러 뛰어올라간 박철민과 송새벽은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말장난의 멘트를 날린다. 아무리 캐릭터가 강하다고 해도 그 중요한 장면에 등장하는 말장난은 극적 긴장감을 떨어트리고 관객의 몰입도를 낮춰버린다.

물론 긴장과 이완을 계속하는 것은 현대 흥행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아주 흔한 영화문법이긴 하다. 그리고 7광구 안에서도 꽤 훌륭하게 만들어진 장면이 존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 과하다 보니 맥이 끊기는 것이다.

조연의 과잉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원의 남자친구로 나온 오지호는 멋있지도, 매력적이지도, 심지어는 캐릭터가 구축되지도 않은 정말 말 그대로 어정쩡한 역할이 되어 버렸다. 만약 그가 정말 매력을 이끌어냈다면 그가 죽었을 때, 하지원이 느꼈을 분노, 괴물을 죽이겠다는 집착, 혹은 그런 심정에도 불구하고 도망쳐야만 하는 안타까움이 생겨나면서 괴물과의 사투가 더 비장하고 박진감 넘치게 진행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게 없다. 이처럼 매력 없는 남자 캐릭터는 처음 봤다.

하지원도 마찬가지다. 너무나도 단순한, 강한 여전사형의 캐릭터는 시크릿가든에서 보여준 캐릭터의 약 10분의 1만 가져와서 써먹은 듯하다. 그러니 초반 과장된 연기가 더욱 어색해보인다. 하지원이 연기를 못한다는 얘기는 감히 못하겠다.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연기력에 대한 모욕일 수 있다. 그러나 캐릭터를 잡아 주지 못하니 연기가 붕 뜨고 뻔한 방식의 연기만 계속 된다. 그나마 극의 후반부 그녀가 괴물과 한판을 벌일 때가 되면 이렇게 캐릭터가 안 잡혀 있는데도 이 정도로 연기를 해낸 하지원이 정말 고생했고 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 외 수많은 캐릭터들이 그렇다. 전혀 성격이 잡혀 있지 않고 캐릭터도 구축돼 있지 않다. 그러니 아주 뻔하고 단순한 캐릭터의 나열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누가 죽어나가도 안타깝지 않고 누가 어떤 행동을 해도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이 연출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영화 첫 부분에서 석유를 시추하는 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들이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은 오합지졸의 느낌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못한다. 프로페셔널의 느낌은 전혀 나지 않고 어찌어찌 하다가 겨우 문제 해결을 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이들이 7광구에 존재하는 것 자체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첫 부분의 연출만 제대로 됐다면, 이 때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캐릭터를 발휘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했다면, 분명히 영화 전체가 달라졌을 것이다. 캐릭터 구축이 너무 안일했다.


문제2. 보여주기 연출의 한계

대한민국 최초의 3D영화를 표방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7광구는 '보여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결심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양한 장면들이 3D를 위해 기획되었다. 도대체 해파리가 떠다니는 모습은 왜 나왔을까? 뻔하다. 해파리가 3D 효과를 보여주기에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영화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갑자기 떠다니는 해파리는 아무런 감흥을 줄 수 없다.

물론 3D가 허접하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한국 기술과 한정된 자본으로 이 정도면 만족한다. 100억대의 7광구와 약 3000억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트랜스포머3를 단순 비교할 순 없다. 원래 그래픽은 자본과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다. 게다가 트랜스포머3도 도대체 왜 3D로 했는지 모르겠다는 평이 있기 때문에 나는 3D자체를 비난하고 싶은 맘은 없다. 단지 3D를 의식해서 전혀 쓸데없는 장면들을 삽입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캐릭터를 구축하고 긴밀하게 이야기를 진행시켰다면 지금과 같은 혹평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많은 장면들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보는 내내 '욕심'이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영화에서 극적으로 필요한 장면들은 50%정도 밖에 안 됐고 나머지는 그저 보여주겠다는 욕심에서 나온 장면들이었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서 직접적인 장면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어떤 장면들을 말하는지 아실 거라 믿는다.

이 뿐만이 아니다. 시청자에게 쾌감을 주려는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장르의 연출 스타일을 가져왔다. 특히 공포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카메라워킹, 스릴러에서 많이 나오는 편집 등 관객에게 쾌감을 주겠다는 의도가 너무 강하게 보이는 연출들이 총망라됐다. 문제는 이 때문에 이야기가 희생됐다는 것이다. 하지원이 괴물을 물리칠 때, 그 누구도 시원함을 느끼지 못한다. 통쾌함도 없고 긴장감의 해소도 없다. 그냥 지겹다고 느낄 뿐이다. 너무 많은 쾌감을 주려고 한 나머지 관객들을 질리게 해 버렸고,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괴물을 죽일 때 카타르시스가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니 관객들이 좋은 기분으로 극장을 나올 수가 없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7광구에 대한 한일양국의 공동개발 문제에 대한 자막이 나온다. 영화도 시원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한일문제라는 골치 아픈 문제까지 얹어주니 관객은 취지에는 동감하면서도 찝찝함을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문제 3. 편집의 문제

긴장을 주었다 풀고, 다시 긴장을 주었다 푸는 스타일의 연출은 이제는 너무나 흔한 연출이 되었다. 이런 방식을 통해 관객들은 더욱 긴장의 끈을 강하게 조이고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과하면 화를 낳는다.

7광구는 전형적으로 스릴러의 문법을 가져온다. 일반적으로 스릴러는 이야기를 진행할 때 긴장감이 넘친다. 이 긴장감은 중간 중간 여러 이벤트를 통해 해소되었다가 다시 강해지곤 한다. 이것은 위에서 밝혔다시피 기본적인 영화문법이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짧고 급하다.

보통스릴러)긴장 - 이완 - 이완 - 이완 - 긴장 - 이완 - 이완 - 긴장 - 긴장 - 이완 - 긴장 - 긴장 - 긴장 – 이완

7광구) 긴장 - 이완 - 긴장 - 이완 - 긴장 - 이완 - 긴장 - 이완 - 긴장 - 이완 - 긴장 - 이완 - 긴장 - 이완

이렇게 긴장과 이완이 너무 급하게 넘어간다. 문제는 보통 '긴장'부분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진행되는데, 이야기가 다 마무리되기도 전에 이완으로 넘어가니 이야기의 맥이 탁탁 끊기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긴장 좀 해볼 만하면 맥이 풀리고 몰입 좀 해보려고 하면 긴장이 풀려버린다. 그러므로 관객은 피곤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차라리 웃긴 부분은 웃긴 부분대로 좀 합치고 스토리가 진행되는 부분이나 긴장감 넘치는 부분은 또 그대로 합쳐서 오직 시간의 흐름대로 편집했다면 지금처럼 심한 혹평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7광구의 가장 큰 문제점 세 가지를 살펴보면 이 영화가 혹평을 받는 이유가 드러난다. 가장 직접적인 문제는 바로 피곤함이다. 영화가 너무 많은 것을 던지다보니 관객은 피곤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3분짜리 롤러코스터는 신나지만 30분짜리 롤러코스터는 오바이트가 쏠릴 것이다. 이 문제를 다시 말하면 '욕심이 과했다'라고 평할 수 있다.

솔직히 7광구가 아주 나쁜 작품은 아니라고 본다. 어떻게든 관객들을 만족시켜보겠다는 의지가 보여서 솔직히 안타까울 정도였다. 3D를 처음 국내자본으로 시도했다는 것도, 7광구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는 것도 참 장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재미가 없는 영화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놈이 위의 이유들로 너무 많은 욕을 먹고 있어 안타깝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이 영화 어땠냐고 물어보면 '평점 3점은 오바이고 한 6~7점은 돼. 재미가 없진 않아.'라고 대답하는 게 그나마 7광구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가 아닌가 싶다.

이 영화는 분명 나름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그만큼 아쉬운 작품이기도 하다. 이런 영화를 시도한 연출가와 제작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엄청난 흥행을 이끌었던 한국영화들의 근간엔 확실한 이야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하고 싶다. 볼거리라면 헐리우드에서 물 건너 온 애들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천만을 넘긴 유일한 외화인 아바타가 그런 흥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그 이유도 이야기에 있다. 부디 다시는 과욕으로 인해 이야기를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