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대 김희걸이라는 선발 예고와 중심 타자를 비롯해 야수들 중 다수가 이탈한 기아의 라인업을 보면 오늘 경기만큼은 LG의 완승으로 귀결되어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합지졸 LG는 지나간 노래를 재탕하듯 이번에도 자멸했습니다.

승부는 1회에 갈렸습니다. LG와 기아는 모두 1회에 무사 1, 2루의 기회를 얻었는데 LG는 무산시켰고 기아는 선취 득점에 성공한 것입니다. LG는 1회초 무사 1, 2루에서 정성훈의 번트 타구가 포수 앞에 떨어져 2-5-3의 병살로 연결된 반면, 기아는 무사 1, 2루에서 착실히 희생 번트에 성공한 뒤 2사 후 안치홍이 볼넷을 얻어 나가며 폭투가 되는 바람에 선취점을 얻었습니다. 기아의 선취점은 팀 완봉승으로 이어지는 결승점이 되었습니다.

2회초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선두 타자 조인성이 안타로 출루하자 서동욱은 풀 카운트에서 높이 빠지는 볼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고 발이 느린 조인성은 런 앤 히트를 수행하기 위해 2루로 향하다 도루자로 더블 아웃된 것입니다. 1회초 정성훈의 번트 실패 병살타와 2회초 서동욱의 삼진으로 인한 더블 플레이가 경기 흐름 전체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물론입니다.

▲ 7월 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LG와 두산 경기. LG 박종훈 감독이 3회초 1사 2,3루 상황에서 포수 조인성에게 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작전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1차적으로 타자들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박종훈 감독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첫째, 2009 시즌 종료 후 박종훈 감독이 부임한 이래 2010 시즌부터 타자들에게 많은 작전을 주문했습니다. 분명 박종훈 감독의 야구는 타자들에게 맡기는 빅 볼이 아니라 번트, 런 앤 히트 등 작전을 자주 구사하는 스몰 볼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야구 철학이 스몰 볼이면 기나긴 마무리 훈련 및 동계 훈련 기간 동안 왜 선수들에게 작전 야구를 체득시키지 못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로이스터 감독 체제 하의 롯데에서 타자들이 희생 번트에 실패했다면 평소 빅 볼을 구사하는 감독의 성향 때문이라 위안을 삼을 수 있어도 2년 차에 달한 스몰 볼 감독의 팀인 LG가 희생 번트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감독이 선수들을 제대로 조련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뿐입니다.

둘째, 팀이 연패에서 허우적대고 타선이 침체에 빠지면 타자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우려가 있는 작전 구사보다 ‘마음껏 쳐봐라’는 식으로 맡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타자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서도록 기회를 부여하며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천편일률적인 작전 구사가 타자들의 손발을 묶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2007년 취임한 김재박 감독은 3년 동안 답답하리만치 스몰 볼을 고집하다 실패한 뒤 물러났는데 왜 1군 감독으로 처음 취임한 박종훈 감독이 김재박 감독의 실패한 스몰 볼을 계승, 고수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LG 타자들의 무기력이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LG는 1회초부터 5회초까지 매 이닝 출루했으나 홈은커녕 3루조차 밟지 못했습니다. 기록만 보면 윤석민이 선발 등판한 것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오늘 LG 타자들은 스트라이크는 멀뚱멀뚱 지켜보다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뒤 볼에 헛스윙하며 9개의 삼진을 헌납했습니다. 김희걸과 심동섭, 단 2명의 투수를 상대로 기록한 무득점 9삼진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9이닝 동안 얻을 수 있는 기회는 한정되어 있는데 1회초부터 5이닝 연속 출루에도 불구하고 득점에 실패했으니 후반에 기회조차 오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선발 리즈도 외형적으로는 6.2이닝 2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호투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 LG의 팀 분위기 상 선취점을 내줘서는 승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처럼 1회말부터 볼넷을 남발하며 무너졌습니다. 3회말에는 1사 후 유리한 카운트에서 다시 연속 볼넷을 내주며 나지완의 쐐기 적시타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고 자멸한 리즈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활화산 같은 타격감을 자랑하던 롯데가 오늘로 1승 3패에 빠졌고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심수창은 18연패를 끊고 롯데를 상대로 승리하며 친정팀을 잊지 못한다고 인터뷰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정팀은 완봉패로 3연패하며 스스로 4강 호흡기를 떼고 싶은 듯 보입니다. LG 선수단은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성난 팬들의 비난에 억울해하기 보다 비난받지 않을 만큼 프로로서 지난 9년 간 떳떳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승리하지 못하면 프로로서 대접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오합지졸 LG, 이번 주 호흡기 떼어내나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