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의 U-20 월드컵 16강 대진이 가려졌습니다. 하지만 그야말로 첩첩산중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최강팀으로 꼽히는 스페인을 16강에서 만난 것입니다. 설상가상 만약 스페인을 이긴다 해도 8강에서 브라질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브라질-사우디 승자와 8강에서 경기) 1983년 이후 28년 만의 U-20 월드컵 4강 진출이 쉽지 않을 듯합니다. 연달아 최강팀을 만나야 하는 운명을 맞은 이광종호는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16강전 스페인과의 일전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2회 연속 이 대회 16강에 오른 한국 축구지만 잘했다는 반응보다는 비난 여론이 더 거센 듯합니다. 1차 목표를 이루기는 했지만 내용 면에서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차전 말리와의 경기에서 2-0 완승을 거뒀을 때만 해도 괜찮았지만 2차전 프랑스전에서 후반 동점을 이룬 이후 소극적인 경기 운영으로 1-3 패배를 자초한 데 이어 3차전 콜롬비아전에서는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0-1로 완패해 1승 2패, 조 3위 와일드카드로 쑥스럽게 16강에 올랐습니다. 손흥민, 지동원, 석현준 등이 모두 빠져 전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할지라도 빈약한 내용으로 경기를 운영한 것은 많이 안타까웠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심지어는 2000년대 들어 본 대표팀 가운데 최악의 팀이라는 혹평까지 듣고 있을 정도입니다. 잇단 세계 대회 선전으로 눈이 높을 대로 높아진 축구팬들 입장에서는 강팀을 상대해서 시원스런 모습 한 번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이광종호의 플레이에 혹평을 가할 수밖에 없는 건 사실입니다.

▲ 16강 진출한 U-20대표팀 ⓒ연합뉴스
그래도 조별 예선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더 잘한 사례들도 있었습니다. 조금 얘기가 다르기는 해도 1983년 4강 신화를 달성했을 때와 2년 전 8강에 올랐을 때 보면 한국은 조별 예선 첫 경기를 완패했음에도 이후 경기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이며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아직은 완전하게 성숙한 모습을 갖춘 선수들이 아닌 만큼 변수가 많고, 그래서 지금까지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다 할지라도 남은 3일 동안 잘 준비한다면 또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은 충분한 이광종호입니다.

하지만 승리를 거두고도 찝찝한 뒷맛을 남긴다면 오히려 이긴 것만 못한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팬들이 이광종호를 질타하는 것은 경기에 지는 것보다 이전 대표팀에 비해 화끈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즉 내용이 있고 뭔가 특별한 색깔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경기 승패를 떠나 이광종호가 보여줄 수 있는 색깔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강팀을 상대로 '한국다운 모습을 경기에서 보여졌구나'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좋은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 축구가 U-20 월드컵 본선에서 최강팀을 만났던 적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특히 브라질과는 1983년 4강, 1991년 8강, 1997년, 2005년, 2007년 조별 예선에서 잇달아 만나 한 번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 결코 브라질에 밀리지 않는 경기를 펼치며 선전했던 적이 있었으니 바로 2007년 조동현 감독이 이끌던 U-20 대표팀이 그랬습니다.

당시 한국은 먼저 3골을 내주기는 했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는 오히려 브라질을 앞서는 경기를 펼치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후반 막판 심영성과 신영록이 연속 골을 넣었을 때만 해도 '역전이 기대된다'고 볼 정도였고, 한국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투혼을 불사르며 브라질 문전을 끊임없이 넘보며 좋은 경기를 펼쳤습니다. 2-3으로 석패하기는 했어도 선수들의 자신감, 침착함 속에서 나온 다양하고 창조적인 플레이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만들었고, 누가 브라질인지 모를 정도로 강력한 축구를 선보였습니다. 당시 활약했던 기성용, 이청용은 현재 한국 축구의 대들보로 떠올랐고, 다른 선수들 역시 한동안 국가대표에도 오르내릴 만큼 기본기나 전체적인 팀 플레이 모두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랬던 반면 1997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 만난 브라질과의 경기는 참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한국은 1무 1패로 벼랑 끝에 몰린 상태에서 브라질을 만나 나름대로 전의를 불태우고 경기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전반 19분 페르난다오에게 선제골을 내준 것을 시작으로 전반 30분부터 39분까지 아다일톤 한 명에게만 4골을 내주면서 전반에만 0-6으로 대패했고, 후반에 4골을 더 내주면서 3-10, 한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며 고개를 떨궈야 했습니다. 당시 좋은 스쿼드를 갖추고도 조별 예선에서 모두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했고, 8강까지 오른 일본과 제대로 비교를 당하면서 감추고 싶은 과거로 남았던 때가 바로 1997년 U-20 월드컵 때였습니다.

최강의 전력을 갖춘 팀이라 할지라도 비장한 각오로 제대로 맞서 싸운다면 기회는 오게 마련입니다. 2011년 콜롬비아에서 새로운 신화를 꿈꾸는 이광종호가 16강에 오른 것만 못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는 1997년 선배들의 패배를 반면교사 삼고, 2007년 선배들이 보여준 투지와 창조력을 배워 스페인전에 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대회를 위해 준비한 카드나 전술이 있다면 이번 16강전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각오로 경기에 나설 필요가 있는 이광종호입니다. 지는 한이 있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경기를 펼치겠다는 말이 헛되지 않는 스페인전이 되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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