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을 둘러싼 논쟁은 수십 년 째 제자리다. 학교의 위기는 깊어가고 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학교에서의 생활지도는 최근까지도 윗사람에 대한 공경, 아랫사람에 대한 자애 등 전통적인 윤리규범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고 사랑의 매는 이를 보조하는 수단으로써 일정부분 허용되어 왔다. 우리사회가, 특히 학교가 의존했던 전통적인 윤리규범은 이미 사라지고 있다. 교육적 처방과 폭력이라는 양날의 칼 ‘체벌의 가능성’이 간신히 유지해 오던 학교 규범은 ‘체벌의 가능성’을 제거하자 혼돈의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전통적인 윤리규범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면 현재 사회에 맞는 합리적인 제도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이제 학교 위기에 대한 논의의 핵심은 그 합리적인 제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로 이동해야 한다.

학교 위기의 현실 진단과 대안 모색을 위한 현직 교사의 제언을 총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우린 이미 한 번의 기회를 놓쳤다

사례1

① 1학년 이상훈 군(17)은 “수업시간에 3분의 1 이상이 잠을 잡니다. 또 나머지 절반 이상이 만화책을 보거나 휴대전화로 장난을 쳐요. 정상적으로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이 다수의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의해 ‘범생’으로 놀림 받고, 오히려 바보스럽게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가치관 혼란을 겪고 있다”고 무절제한 동료학생들의 행태를 꼬집었다.(조선일보,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3)- “교실 바로 세우자” 일선학교에 자정운동 번진다, 1999.10.27)

②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 아이, 수업시간에 교실을 뛰어다니는 학생들, 교사의 지시와 질책을 우습게 여기는 아이들, 학생지도를 겁내는 교사들…. 모두가 수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마저 무너지는 현장, 그래서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충격적인 [교실 붕괴]의 현장들이다. 그러나 교실이 무너지는 소리는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 일선 교사들은 ‘교실에서 수업이 불가능한 지 이미 오래’라고 증언하고 있다.(조선일보,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1)- 수업시간 들락날락…잠자고 …만화보고, 1999.08.24)

사례2

몇 달 전부터 수업과 쉬는 시간을 구분하지 못하고 화장실과 매점을 들락거리거나 잠자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파마나 염색을 지적하면 “왜 그래요?”라며 대들기도 하고,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을 지적했더니 전화기를 내던져버린 사례도 있다.(조선일보, 서울시교육청 전면 체벌금지 50일…현장 교사들 ‘교실붕괴’토로, 2010.12.20)

위의 사례1과 사례2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사례1이나 사례2는 학교 수업이 어려워지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런데 사례1인 1999년에 한창 ‘교실붕괴’1)라는 자극적인 용어와 함께 언론을 통해 알려졌던 당시의 사례이고, 사례2는 최근에 지적된 문제 사례의 하나이다.

1999년 당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전국의 교사 450명과 중-고등학생 7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교사의 78.2%가 ‘교실붕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응답했다.2) 윤철경 외(1999)3)에서 밝히 조사연구에 따르면 조사대상 교사 218명 중 86.7%가 학교붕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약간있다 48.6%, 매우많다 38.1%)고 대답했고 조사대상 학생 2232명 중 70.8%가 학교붕괴 현상이 있다(약간 있다 50.8%, 매우 많다 20.0%)고 대답했다.

당시 교실 붕괴의 원인으로 교사들은 교육제도의 경직성(40.6%), 교육부의 정책실패(31.4%), 학생문화의 급변(20%) 순으로 꼽았다. 학생들은 주입식 교육(40.0%), 교육제도의 경직성(36.5%)을 원인으로 지적했다.4)

1999년 당시 조선일보는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라는 시리즈 기사를 통해 ‘교실붕괴’의 뒤편에 가족 붕괴, 교사와 학생간의 신뢰붕괴가 숨겨져 있고, 교실붕괴는 학교 안의 얘기가 아니다5)라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1999년 당시 학교의 위기에 대해서는 이에 대한 다양한 차원의 원인 규명과 대응 방향이 논의 되었다. 2000년에 20명의 교수들에 의해 발간된『학교가 무너지면 미래는 없다6)』라는 책에서 지적된 당시 교실붕괴의 원인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촌지교사고발센터 운영, 무리한 교원정년 단축, 과도한 체벌규제 등 교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개혁 과정에서 교사를 소외시키면서 무리하게 진행된 교육 개혁 정책7)
2. 학급당 인원수과다
3. 학생들이 이용하는 생활공간 중에 가장 열악한 학교 교육 환경이 학교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문제
4. 교사들의 전문성 향상을 방해하는 수업이외에 교사들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업무들
5. 행정 중심의 교육풍토
6. 학생들의 흥미에 부흥하지 못하는 교사의 수업방식
7. 삶과 괴리되는 교육내용, 주입식 교육, 입시위주의 교육
8. 가족의 교육적 기능 상실
9. 교육을 ‘전인’교육이 아닌 수요자, 공급자 즉 시장에서의 사적인 이익추구 수단 정도로 보는 관점의 지배
10. 일부 촌지 수수 교사, 폭행교사 들에 의한 교사에 대한 신뢰 실추

위 책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학교 위기의 원인을 하나로 얘기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이에 대한 대안도 단 ‘하나’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학교위기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뭉뚱그려진 선언적 대안이 아니라 ‘하나’ ‘하나’의 문제에 대한 ‘하나’ ‘하나’의 ‘구체적 대안들’이 필요하다.

▲ 지난해 10월 23일 서울 서초동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본부에서 '체벌금지 시행.학생인권조례 공포에 따른 교실위기 대안모색을 위한 현장교원 토론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그것은 2000년대 초나 2011년 지금의 학교문제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초 사회적 논란이 된 교실의 위기는 학교가 앓고 있는 문제를 공론화하여 학교를 살리기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제대로 논의하고 교육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나 우리 교사들은 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 평준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평준화를 교실 붕괴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8)하였고 자립형 사립고 등 평준화 해체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를 활용하였다. 교실붕괴와 관련하여 교사원인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학교 간, 교원 간 경쟁을 통해 보다 질 높은 공교육을 이루어야 한다면서 학교선택제 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하였다.

결국 학교 위기에 대한 논의가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교육의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정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돈이 들지 않는’ 학교 간, 교사 간의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들 위주로 도입9)되었다. 교실붕괴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교사 개인의 자질에서 파생되는 문제라는 인식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면서 학교의 위기는 해결되지 못하고 속앓이 형태로 침전해 있었다. 최근에 학교에서 발생하는 수업의 위기, 교권의 위기는 이미 10년 전 부터 곪아 있던 것이고 ‘체벌금지’, ‘인권조례’를 계기로 이것이 언론을 통해 다시 표면화된 것이다.

1) 교사들은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이 어려운 것, 교사권위의 실추, 공교육 체계의 위기 등을 학교 붕괴의 의미로 규정(윤경철외,1999)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당시 혼용되어 쓰인 학급붕괴, 교실붕괴, 학교 붕괴를 같은 의미로 보고 교실붕괴 용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2) 전교조(2000), 학교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토론 자료집
3) 윤철경 외(1999), 학교붕괴 실태 및 대책 연구, 한국청소년개발원
4) 전교조(2000), 학교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토론 자료집
5) 조선일보,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3), 1999.08.28.
6) 20명의 교수들이 교실붕괴 현상에 대해 다차원의 원인규명과 대응 방향을 담은 『학교가 무너지면 매래는 없다』(교육과학사,2000)는 지금 현재의 학교 문제에 대응하는 데도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그 책에서 제시된 학교 위기의 원인과 대응방향에 대해서 만이라도 더 심도 있는 연구와 물적 투자가 10여 년 동안 이루어졌다면 상당 부분 우리 교육은 개선되었을 것이다.
7) 당시 이해찬 교육부 장관이 교육개혁을 밀어붙이면서 촌지수수나 학생에 대한 폭력 등 도덕성 문제를 거론하면서 연일 교사들의 나태와 무능, 무사안일을 공격했는데 교사집단을 교육개혁의 점진적인 파트너로 인식하기보다는 일차적 개혁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써 교사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증폭시켰다. 교사에 대해 사회적인 불신이 커지면 학생들도 여기에 영향을 받아 가르침을 받을 교사를 불신하게 되고 배움이 일어나야 할 곳에 신뢰가 없으면 교육도 불가능해진다. 이는 교육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과 다르며 앞으로의 교육개혁도 이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8) 조선일보, ‘껍데기만 남은 고교 평준화’라면, 2002.09.05.
9) 한나라당 교육위원회, 공교육 정상화 대토론회-교실붕괴 이대로 둘 것인가, 2001.
이 토론회 주제발표문에서 공교육의 내실화를 위한 방향과 과제(pp31~32)로 제시된 것 중에 교사의 권위 회복 방안으로 제시된 ‘수업 부담 경감’이나 ‘교사 증원’은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고 ‘수석교사제’는 실시되고 있다. 또한 ‘단위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의 민주화’를 위해 학교장 중심 운영체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학교장에게 인사와 재정 운영권을 부여하고 학교 교육의 성과에 대한 교장책임제를 정착시키는 것을 학교 위기 대응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강조하면서도 모순적으로 교장 중심의 운영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생의 교육적 필요에 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주제발표문에서 제시된 ‘학교선택제’, ‘자립형 사립고’는 현재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방향이 학생들의 필요에 부응한다고 하지만 그 근거는 밝히고 있지 않다. 이 주제발표문에서 인용했듯이 2000년 전교조의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은 ‘교과의 교육적 필요성에 대하여 71.6%가 부정적’이었고 학교붕괴의 원인으로 ‘주입식 교육관행’(40.0%)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는데 토론회 주제발표문에서 이러한 학생들의 문제의식에 부응하는 정책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결국 정치권에서는 당시의 교실붕괴 담론을 자신들의 교육정책을 정당화하는 수단차원으로만 활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울시흥중교사. 전국사회교사모임 회장. 학교가 학생이나 교사에게 행복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실현하고자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는 사회교사다. 100억 규모 교육연구재단을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도 함께 가지고 있다.
<주제가 있는 사회교실>(돌베개,2004), <사회선생님이 뽑은 우리사회를 움직인 판결>(휴머니스트, 2007) 공동저자. <공정무역 왜 필요할까>(내인생의 책,2010) 공역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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