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비행 중인 항공기 따위에서 사람이나 물건을 안전하게 땅 위에 내리도록 하는 데 쓰는 기구 (국립국어원)

낙하산은 항공기 따위에서 사람이나 물건이 땅 위에 안전하게 내리도록 하는 데에만 쓰이는 기구가 아니었다. 2009년 7월22일 언론관련법이 통과된 지 어언 2년, 혜성같이 등장해 언론계 곳곳을 포위한 낙하산들은 언론계 주요 보직을 차지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나아가 언론계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데 큰 힘을 보탰다.

낙하산들의 특징

언론계에서 낙하산이라 부르는 인물들은 흔히 대통령과의 친분, 연줄을 통해 언론계 주요 보직을 꿰찼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낙하산의 특징은 대통령과의 친분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향한 ‘낙하산’이라는 비난을 못 견뎌한다. 그리하여 낙하산들이 임명 초기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은 바로 “나는 낙하산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지난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권은 출범 직후부터 언론계 곳곳에 대통령의 측근인 낙하산을 포진시켰다. 2008년 기준으로 언론계가 낙하산으로 인정한 주요 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명박대통령직인수위원회) △양휘부 한국방송광고공사사장 (이명박캠프 방송특보단장) △구본홍 YTN사장 (이명박캠프 방송특보) △이몽룡 스카이라이프 사장 (이명박캠프 방송특보) △정국록 아리랑TV사장 (이명박캠프 방송특보) ….

MB정권이 2008년 언론계 곳곳에 낙하산을 포진하면서 언론계 장악을 위한 터를 닦았다면, 2009년은 언론법 통과를 기점으로 더욱 노골적으로 언론을 장악하려 했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기관인 KBS, MBC에 안착한 두 명의 낙하산 사장의 행적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 KBS에 안착한 낙하산, 수난 본격화 = 지난 2008년 8월27일, 이병순 KBS 사장 취임과 함께 KBS의 수난은 본격화됐다.

▲ 27일 오전 KBS본관 앞에서 이병순 KBS 신임사장(원 안)이 취임식장에 가기 위해 청원경찰을 동원해 'KBS사원행동'의 출근 저지를 뚫고 본관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미디어스
이병순 사장은 KBS 공채 4기다. 하지만 논란 끝에 KBS에서 ‘축출’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의 자리를 꿰찼다는 점, 이 과정에서 KBS 후임 사장 논의를 위해 당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정정길 대통령실장 등이 KBS 대책회의를 했던 점 등이 밝혀지면서 부적절 논란이 일었다. 엄연히 KBS 이사회가 사장 후보 제청권을 갖고 있음에도 정부 주도로 후임 사장 인선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드러난 셈이었다. 이에 KBS 구성원들은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KBS 사장 자리에 앉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이병순 사장을 ‘낙하산’이라 일컬었다.

이병순 사장이 취임한 이후, 가장 먼저 변한 건 KBS의 보도였다. KBS 안팎에서 “KBS가 20년 전 땡전뉴스로 돌아가는 거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와 함께, ‘인사권’을 이유로 내부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원들에 대한 KBS쪽의 손보기도 진행됐다. KBS는 사원행동 구성원들에 대해 ‘보복성 인사’를 자행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KBS PD협회는 제작거부 투쟁을 결의하기도 했다.

KBS는 이 밖에도 <시사투나잇>, <시사기획 쌈> 등 시사 보도프로그램을 잇따라 폐지했다. 또, 윤도현, 김제동 등 연예인들의 출연이 잇따라 제한돼 정치적 외압 논란이 일기도 했다.

언론계 내부에서는 KBS를 둘러싼 이 모든 논란들은 이병순 사장 연임 무산을 계기로 마무리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차기 사장으로 누가 오든, 이병순 체제의 KBS보다 더 나빠지고, 더 망가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KBS가 충분히 망가졌다’는 판단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은 틀렸다. 새롭게 등장한 낙하산,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 특보 출신인 김인규 사장의 능력은 대단했다.

◇ KBS를 장악한 낙하산, 김인규 =지난 2009년 11월24일 취임한 김인규 사장. KBS 구성원들이 ‘낙하산 사장’이라며 격하게 반대하고 나섰지만, 이들의 반대는 청원경찰을 동원한 김 사장의 출근 따위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 KBS노동조합의 김인규 출근저지투쟁 첫날인 2009년 11월24일 오전 9시47분경, KBS본관 앞에 도착한 김인규 사장의 모습. ⓒ곽상아
김인규 사장의 활약은 2010년부터 도드라졌다. 특히, ‘인사권’을 통한 사원 손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KBS는 그 해 1월, 일제고사 거부 해직교사, YTN 해직자 등을 다룬 프로그램을 기획한 기자에 대해 징계성 인사 발령을 단행했다. 또, 적극적으로 ‘김인규 반대’ 목소리를 냈던 기자에 대해서는 부서를 옮긴 지 3개월 만에 또 다시 다른 부서로 발령했다.

윤도현, 김제동에 이어 코미디언 김미화씨의 출연을 문제 삼는 등 출연자 솎아내기 작업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0년 4월 김인규 사장이 주재하는 임원회의에서는 김미화씨가 다큐멘터리 내레이터를 맡은 것과 관련해 “일부 프로그램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내레이터가 잇따라 출연해 게이트 키핑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발언이 나왔다. 이후, 김미화씨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KBS 블랙리스트’를 처음 언급했고, KBS는 김미화씨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소했다. 결국, 사회적 비판 여론이 들끓자 KBS는 김씨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이후, 배우 문성근, 문화콘텐츠기획자 탁현민,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최상재 등에 대한 출연이 잇따라 취소되면서 블랙리스트에 대한 논란은 한동안 이어졌다.

보도를 통한 정부 정책 홍보도 더욱 노골화됐다.

특히, 2010년 10월 KBS는 정부가 주최하는 G20 정상회의와 관련해 약 3천3백분에 해당하는 60여편의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내부에서도 “일방적인 정권 홍보 방송”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KBS는 노동계의 우려 목소리나 해외 언론의 비판적 반응은 전하지 않았다. 오로지 G20의 성과를 홍보하는 데 열을 냈다.

또, KBS보도와 관련해 KBS가 당시 예산안 날치기 관련 보도를 왜곡했다는 주장도 나왔으며, 연평도 사격 훈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전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KBS는 아울러 민간인 불법 사찰과 UAE 파병에 대해서도 상세히 보도하지 않았다. 4대강 사업을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산 개조 꿈에 비유한 대통령의 발언은 즉시 보도됐지만,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추적60분>은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2주 동안 결방됐다. 그 배경이 청와대의 압력 때문이라는 정황도 일부 드러났다. 이에 KBS 보도국 젊은 기자들은 성명을 잇달아 내어 김인규 사장을 향해 “KBS를 떠나라”고 촉구했다.

▲ KBS 1TV 생방송 심야토론‘TV수신료 인상, 선결조건은?’, KBS에게 득일까, 실일까?에 직접 출연한 김인규 사장의 모습.
물론, ‘수신료 인상’에 올인한 김인규 사장이 수신료 인상 의지를 져버린 것은 아니었다.

김 사장은 2010년 1월4일 신년사를 통해 “수신료 현실화를 위해 사장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기울이겠다”며 수신료 인상을 올해 역점 과제로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여론은 쉽지 않았다. KBS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국회 상정 여부를 놓고 여야 뿐 아니라 언론 시민사회단체 등 여러 입장이 엇갈리면서 수신료 인상 처리는 불투명 해 보였다.

그러나 2011년 3월10일 수신료 인상안이 ‘여야 합의처리’를 전제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 전체회의에 상정되면서 수신료 인상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후, 6월20일 국회 문방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KBS 수신료 인상안은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소속 의원들에 의해 표결·강행처리 됐다. 그러나 전체회의를 앞두고 민주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저지 움직임을 보이자 한나라당은 사실상 ‘강행 처리’ 의사를 포기했다.

이런 가운데, KBS의 한 기자가 민주당 비공개 회의를 불법 도청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수신료 인상 분위기는 더욱 어렵게 됐다. 김인규 사장은 KBS 생방송 토론에 출연해 KBS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열성을 보였으나, KBS 도청 의혹으로 다음을 기약해야 할 분위기다.

그리고 현재, KBS는 친일파 백선엽 장군을 미화하는 방송을 내보내 항일 독립운동 단체, 4.19 혁명단체, 6.25 민간인 희생자 유족 단체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KBS를 규탄하기 위해 ‘친일독재 찬양방송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도 구성됐다. KBS는 당초 오는 8월15일 이승만 다큐멘터리도 내보낼 것으로 알려졌으나 비판 여론 때문에 방송 연기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09년 11월24일 취임할 당시만 해도 KBS 구성원들의 원성의 대상이 되었던 김인규 사장은 이제 내부 뿐 아니라 언론 시민사회 단체, 독립운동 단체, 그리고 시청자들의 ‘공공의 적’으로 급부상 중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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