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시절, 유상철은 살림꾼이었습니다. 골키퍼를 제외하고는 안 해본 포지션이 없었을 정도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어느 위치에서든지 제 몫을 다 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면서 유상철은 K리그 뿐 아니라 한국 축구의 대들보 같은 역할을 해 왔습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한국 축구에 새 희망을 안긴 벨기에전 동점골,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의 신호탄을 쏜 폴란드전 쐐기골은 유상철을 한국 축구 최고 수준의 스타 플레이어로 발돋움시킨 계기를 가져다 줬습니다.

그랬던 그가 은퇴한 뒤 2009년, 신생팀 춘천기계공고 감독을 맡았을 때는 다른 스타 출신 감독들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며 주목받았습니다. 통상 프로팀 코치직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다르게 유상철은 아래서부터 한 단계씩 올라가겠다며 고교 팀 감독을 맡고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유상철 감독 덕에 강원도 내에서 하위권에 허덕이던 춘천기계공고는 3위권까지 치솟았습니다.

▲ 프로축구 대전 시티즌 새 사령탑에 유상철(40)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감독이 선임됐다. 대전은 "유상철 신임 감독이 20일부터 공식 업무에 들어가며 23일 강원FC와의 홈 경기에서 공식 데뷔전을 치른다"고 17일 밝혔다.ⓒ연합뉴스
그리고 2년 여 만에 유상철 감독이 프로팀 무대 지도자로 정식 첫 발을 내딛게 됩니다. 그 무대는 최근 바람 잘 날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대전 시티즌입니다. 새로운 경영진이 꾸려진 대전 시티즌 측은 "구단 재창단 의지에 맞는 젊고 패기 있는 감독,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나갈 수 있는 감독, 선수와 소통해 혼연일체가 될 수 있는 감독"으로 유상철 감독을 적임자로 꼽고, 3년간 팀을 맡겼습니다. 위기 수준을 넘어서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 있는 대전 시티즌을 이 스타 플레이어 출신 감독이 어떻게 일으켜 세울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유상철 감독에게 프로팀 감독 도전은 인생 최대의 도전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춘천기계공고 감독을 통해 지도자 생활의 첫 발을 내딛기는 했지만 더 큰 무대에서 모든 선수들을 아우르고 지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 자체만 갖고도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특히 대전은 골키퍼 최은성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인연을 맺은 선수도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여기에 팀 자체도 여러 가지로 문제로 무너져 있고, 최근 2경기에서는 연속해서 7골을 허용하는 결과를 내며 프로팀답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백지 상태에서 모든 걸 다 그리고 완전하게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유상철 감독 입장에서는 정말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유 감독이 춘천기계공고 감독을 맡은 것이 전부일 뿐 프로 감독 경력이 일천한 그가 성공할 것으로 내다보지 않고 있습니다. 선임 자체가 정치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고 보며 이 자체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상철 감독이 만들어 나갈 '새로운 대전 시티즌'이 새로운 흥밋거리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더 기대되는 측면이 많아 보입니다. 초보 감독이기는 해도 이미 선수 시절 많은 것을 경험하고 고교팀 감독을 통해 나름대로 지도 철학도 갖고 있는 유 감독이라면 대전 시티즌에 새로운 길을 제시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아예 백지 상태부터 새로 시작하는 상황에서라면 차라리 유상철 감독같은 새로운 인물이 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되고, 그것이 성공을 거둔다면 아마 영화같은 이야기가 K리그에 남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유상철 감독은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공부하며 발전할 수 있는 감독이 돼야 할 것입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라는 명함을 벗어던지고, 감독으로서 새로 시작하는 도전을 진중하게 받아들이며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완전히 와해되다시피 한 분위기를 추스르고, 이렇다 할 스타 플레이어 없이도 조직적인 축구로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무언가를 유상철 감독은 보여줘야 합니다. 남들보다 더 땀 흘리며 새로운 팀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데 큰 힘을 보여준다면 유 감독은 대전 시티즌 역사상, 아니 K리그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을 감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 감독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모든 게 달려 있는 셈입니다.

유상철 감독의 새로운 도전은 이제 시작됐습니다. 과거,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황선홍 포항, 최용수 서울, 신태용 성남 감독 등과 40대 감독으로서 새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되는 측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세 감독에 비해 처해 있는, 또 해결해야 하는 유 감독의 과제는 산더미같이 쌓여 있습니다. 이 과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모습을 보여주는 '기적의 유 감독'이 될지 많은 팬들은 주목할 것이며, 가능한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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