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밴드 본선에 올라온 팀 중에 블루니어마터라는 직장인 밴드가 있다. 16년째 동료들과 밴드를 하고 있는데, 이 밴드 기타리스트는 예선부터 줄곧 아내 개그로 심사위원과 시청자를 묘하게 웃게 했다. 아마추어건 프로건 한국에서 밴드는 결코 쉽지 않다. 프로라도 그런 경우가 있을 법한테 갈수록 가정적인 남편의 위상이 요구되는 시대에 밴드에 빠져있는 것에 환영한 아내는 없기 때문에 기혼자가 밴드하기란 강심장이거나 엄청난 행운아이다. 예선 이전까지는 강심장 남편이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본선까지 진출한 그는 행운아로 운명이 바뀌어가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진짜 행운아는 TOP밴드 애청자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증명한 본선 첫 방송이었다. 분명 본선 이전까지의 예선은 그 많은 밴드들을 거의 누락시키지 않고 보여주려는 친절함 혹은 PD의 애정 때문에 산만한 부분이 있었다. 그렇지만 24팀으로 압축된 본선 첫 무대는 추려진 만큼 확실히 전반적으로 높아진 연주력에 귀를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TOP밴드가 본선 첫 무대에 준비한 것은 오디션도, 서바이벌도 아닌 밴드 페스티벌이고, 참가자들에 대한 코치(멘토)들의 감동적인 태도를 통해 밴드음악에 대한 존경을 보였다는 점이 그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었던 감동을 주었다.

먼저 24개 팀 중 각자 4개 팀씩 맡아 토너먼트로 진행될 본격 본선 서바이벌을 대비한 밴드 티칭을 할 코치는 김도균, 신대철, 남궁연, 정원영, 노브레인 그리고 체리필터 등이었다. 슈퍼스타K로 시작된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어떤 형태로든 멘토와 코칭 시스템은 있어왔다. 그러나 톱밴드의 코치는 시스템을 논하기 전에 참가자들 아니 밴드에 대한 대단히 진지하고 스스로 경외의 태도를 보인 톱 밴드 코치들의 모습은 놀라움을 넘어 감동스러웠다.

톱밴드는 밴드 코치와 참가자들의 결합을 서로간의 선택으로 결정하는 쌍방향성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멘토제로 유명세를 탄 위대한 탄생에 비해 진화된 모습을 취했다. 24개 팀이 각자 100초씩의 무대를 갖는다. 그때 여섯 명의 코치들은 무대를 향해 등을 돌리고 음악을 경청한다. 그러다가 코치가 마음에 들 경우 의자를 돌려 의사를 표시하게 된다. 의자를 돌린 코치가 한 명일 경우는 그대로 관계가 맺어지지만 여럿일 경우는 참가자가 원하는 코치를 선택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코치들과 참가자들의 의사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밴드 각자의 음악적 스타일과 코치들의 색깔 맞추기가 어렵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데이터와 달리 외의의 선택도 없지는 않았다. 보컬 없는 빅밴드 BBA와 김도균의 결합이 그런 경우 중 하나였다. 메탈 기타리스트인 김도균이 브라스밴를 선택했다는 것은 언뜻 의외인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김도균이 선택할 만한 이유를 추측할 수도 있다. 김도균은 앞서 정원이 선택한 2인조 밴드 톡식에 대해서 가야금산조를 듣는 기분이었다는 소감을 말한 바 있었다. 김도균은 한국 로커들 중에서 국악에 가장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이다. 스스로 기타 산조(국악 연주 형식)를 만들어 음반 취입을 할 정도로 애정과 공부 모두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국악밴드들과 협연도 자주 가졌는데, 보통 보컬이 없는 국악밴드와의 경험을 통해서 사뭇 심심해 보이는 BBA의 본선 토너먼트에서의 활로를 찾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그런가 하면 서로의 선택이 맞았음에도 생존을 위해서 생각을 바꾼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허스키한 여성 보컬이 매력적인 라이밴드 경우 코치 남궁연, 김도균 그리고 노브레인 등 총 세 명이 의자를 돌렸다. 애초에 라이밴드가 원한 코치는 노브레인이었으나 이미 그 조에는 쟁쟁한 밴드들이 매칭되어 있어 어차피 각 조별 2팀만 다음 무대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라이밴드는 김도균을 선택해야 했다. 서바이벌에 임하는 솔직하고도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아쉬운 점도 있다. 톱밴드는 가족단위로 시청하기에 대단히 어울리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밴드 음악을 제대로 들으려면 아무래도 볼륨을 많이 높여야 제격인데, 우선 방송되는 시간 밤 10시라 이웃들의 불만이 걱정이 되고 가족들 눈치도 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볼륨을 줄어야 하는데 그러면 밴드의 맛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그렇지만 볼륨을 줄여 음악이 주는 박력은 좀 떨어진다 하더라도 록을 좋아한다면 가슴으로 그 박진감을 충분히 증폭할 수 있다.

록과 메탈을 좋아하지만 나이도 그렇고, 몸매 때문에 클럽에 가기 주저된다면 매주 토요일 밤 톱밴드를 통해서 그 대리만족을 느껴보라 권하고 싶다. 톱 밴드에는 일반 오디션과 다른 재미, 결코 심사할 수 없는 감동이 있다. 그것은 코치와 참가자들 모두에게서 느낄 수 있다. 톱밴드는 히트상품은 아닐지라도 최고의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 누구에게라도 권할 수 있는 방송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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