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말의 경박함으로 곤란을 겪었다. 조중동을 위시로 한 보수 세력은 언제나 그의 말을 문제 삼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그의 말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말의 내용보다는 말의 형식을 비판했다.

반면 그의 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의례를 뛰어넘어 삶의 구체성과 접속하는 그의 화법에 열광했다. 하지만 사실 이건 맞닿아 있는 얘기다. 일국의 대통령으로 품위가 없단 지적은 뒤집어 보면 그의 말이 군림하는 통치의 언어적 형식이 아니란 얘기와 같다.

노무현 이전의 대통령들의 말은 엄숙을 중시했고, 직설을 꺼렸다. 대통령의 의중은 쉽사리 파악되어서는 안됐고, 대통령의 말은 권위로 충만해야 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이 관행을 깼다. 이 낯선 상황에 언론은 당황했다. 대통령의 엄숙을 날아다니는 말로 잡아내야 하는 언론의 입장에서 대통령의 말이 무겁게 깔리지 않고 여론을 향해 직접 날아가는 상황은 불안한 것이었다. 이 불안감을 언론은 대통령을 조롱하는 것으로 해소했다.

경박의 사전적 의미는 '언행이 신중하지 못하고 가볍다'는 것이다. 직접 드러나 있진 않지만 경박이 지칭하는 언행은 형식과 내용 모두를 가리키는 것일 테다. 노무현의 말이 경박하단 지적은 대체로 언행의 형식에 관한 것이었다. 경박한 곤란을 겪었던 참여정부는 내내 형식을 넘어 내용을 봐달라고 호소했었다. 물론, 언론은 듣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경박하다고 매섭게 몰아세우던 언론은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러 급변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건, 언론은 더 이상 경박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기로 한 것 같다.

어제(11일) 이명박 대통령은 외유에서 귀국해 전국을 강타한 장마와 관련해 "이전에 비해 피해가 적은 것 같다"고 얘기했다. 12일 오전 국무회의에선 잇따르고 있는 해병대 사고와 관련해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이 군에 들어가 바뀐 환경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도 앞 뒤 맥락은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국의 대통령으로, 국가 운영을 책임진 입장에서 해야 할 말과 말아야 할 말이 있다. "이전에 비해 장마 피해가 적은 것 같다"는 말은 아마도 4대강 공사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장마로 1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낙동강 일대에 큰 피해가 있는 상황이다. 구미 지역은 올 들어서만 2번의 단수 피해가 발생했다. 해병대 사고 역시 군 통수권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기 보단 신세대 장병의 사회 문화적 태생을 탓하며 문제를 개인적 부적응의 차원으로 폄훼하는 것은 최소한 대통령의 언어여선 곤란하다.

이에 대해 언론은 가타부타 말을 붙이지 않고 있다. 물기 하나 없이 건조하게 대통령의 말을 옮길 뿐이다. 진짜, 경박한 이는 누구인가? 대통령으로 신중하지 못하고 가벼운 언행을 일삼는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인가 아니면 이명박 대통령인가. 가벼운 언어의 형식에 광적인 분노를 보이던 언론은 그러나 가볍디가벼운 언어의 내용 앞에는 나란히 침묵하고 있다. 이명박에 이르러 우리는 경박한 것을 경박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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