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민망한 능력자들>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는 데자뷰를 보는 듯했습니다. 미국에서 2009년에 개봉한 영화라는 건 차치하더라도, 분명 이 영화를 어디선가 봤다는 착각을 지울 수가 없었거든요. 한참을 생각하고서야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푸켓의 한 호텔에서 티비를 통해 <초민망한 능력자들>을 봤습니다. 이런 영화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제서야 개봉하는 걸까요? 이왕 패키지로 수입했으니 버리긴 아까워서 상영하기로 한 건가? 아무튼 <초민망한 능력자들>은 자신이 초능력 부대의 일원이었다는 남자와, 그를 따라다니는 기자가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입니다.

지역신문 기자인 밥은 기삿거리를 찾아다니다가 초능력을 발휘한다는 남자를 만납니다. 네스호의 괴물과도 영혼이 통했다고 주장하면서 초능력을 보여주지만, 밥은 그를 내심 싸이코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시간이 흘러 아내에게 버림받은 밥은 특종을 찾아서 뭔가를 증명하고자 아랍으로 날아갑니다. 이곳에서 이전에 만났던 남자가 최고의 초능력자라고 말했던 린을 보게 되고, 그와 동행하여 이라크 국경을 넘습니다. 하지만 초능력은커녕 얼간이에 가까운 린과 밥은 보기 좋게 납치를 당하고 맙니다. 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린과 밥은 초능력 부대의 창설자인 빌을 만나게 됩니다.

십중팔구 영화제목을 한글로 억지스레 옮긴 건 볼썽사납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초민망한 능력자들>은 꼭 나쁘지만은 않은 케이스입니다. <Paul>이라는 간단한 단어를 <황당한 외계인 폴>로 바꾼 것이나, <The Men Who Stare At Goats>를 <초민망한 능력자들>로 바꾼 것은 영화와 일맥상통하는 나름의 재치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Vicky Christina Barcelona>를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막장 느낌 물씬 풍기는 제목으로 바꾼 것보단 낫잖아요?

실제로 <초민망한 능력자들>을 보면 민망하고 황당합니다. 만약 영화제목이 비속어도 허용한다면 <초허접한 능력자들>이라고 해도 좋았을 정도? 아무리 봐도 그냥 터무니없는 황당한 짓의 연속인데, 막상 그걸 시연하는 자는 진지하기 짝이 없습니다. <초민망한 능력자들>의 웃음 포인트가 바로 이것입니다. 얼마나 웃을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시추에이션 자체가 개그이자 해프닝입니다. 히피정신으로 가득한 남자가 히피의 정반대에 위치한 군대에서 히피정신을 가르치려고 한다는 발상부터가 배꼽을 잡게 하는 넌센스죠. 적어도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초능력 부대 출신이라는 린은 자신이 일명 '제다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밝힙니다. 그러면서 밥에게 이것저것 전수하려고도 하는데, 그 비기가 얼마나 황당한지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캐스팅 덕분에 이 설정조차도 참 재미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밥을 연기한 이완 맥그리거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1, 2, 3>에서 제다이인 오비완 커노비로 출연했습니다)

더 황당한 건, 영화 속의 이야기가 엄연히 실화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민망한 능력자>들은 친절하게 도입부에 "의외로 사실이 더 많다"라는 자막을 내보냅니다. "응? 설마 이게 실화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방면(?)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자막이 없었더라도 완벽한 허구가 아님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일단 <초민망한 능력자들>은 기밀문서를 파헤친 원작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에 구소련과 미국이 초능력 부대의 활용을 계획했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나토 고위직 납치사건 관련 에피소드도 실화입니다) 그 이전에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비롯한 몇몇 영화를 보면 히틀러와 나치가 초능력에 관심이 컸다는 사실 또한 등장합니다. 이것도 참 황당하죠?

이렇듯 <초민망한 능력자들>은 시종일관 시치미 뚝 떼고 허무맹랑한 시선을 유지합니다. 밥을 제외한 주요 캐릭터들은 다 비웃음을 사고, 웬 궤변만 주야장천 늘어놓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쭉 보다 보면, 결국 <초민망한 능력자들>은 스스로 바보이기를 자처하면서 전쟁과 폭력에 대한 풍자를 몸소 보여주는 영화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지금 당신들이 보고 있는 것이 우습게 느껴진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랑과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마냥 일회성 코미디로 치부하기에는 조금 아까운 영화입니다.

★★★☆


덧) 코엔형제의 영화에서 각각 덜 떨어진 캐릭터를 연기했던 조지 클루니와 제프 브리지스의 연기대결(?)도 볼 만합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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