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다고 한다. 불법 도청 때문이다. KBS 얘기냐고? 아니다. 바다 건너 얘기다. 루퍼트 머독의 '미디어제국'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머독의 미디어제국에 '뉴스 오브 더 월드(NoW)'라는 타블로이드 신문이 있다. 영국에서 발행되고, 168년 역사에 독자가 270만 명이나 되는 일요일판 최대 매체라고 한다. 루퍼트 머독은 최근 이 매체의 폐간을 결정했다고 한다. 불법 도청 파문 때문이다.

'뉴스 오브 더 월드(NoW)'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영국군 병사 유족들의 휴대전화 음성메시지를 불법 도청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언론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셌다. 견디다 못한 머독은 결국 매체의 폐간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 불법 도청 파문으로 루퍼트 머독의 '미디어제국'이 흔들리고 있단 내용의 조선일보(21면), 동아일보(20면)기사
데이비드 캐머론 영국 총리까지 직접 나섰다. 캐머론 총리는 의회 발언을 통해 ""모든 의원들과 함께 이 사건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공분을 일으키고 연합정부를 흔든 전화 해킹 스캔들에 대해 공개청문회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자동차 회사인 포드사, 로이즈뱅킹그룹 등 광고주들은 잇따라 광고 게재 중단을 선언했다.

결정타였다. 머독은 경찰조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단 입장을 밝혔다. 영국 의회는 '뉴스 오브 더 월드(NoW)'의 레베카 브룩스 편집장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했다. 이 사건은 머독의 미디어제국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에 영국 당국은 머독이 추진 중인 위성방송의 경영권 인수를 승인하지 않을 전망이다.

오늘 자 일간지들은 이 문제를 일제히 보도했다. 조중동 역시 지면에 실었다. 바다 건너의 해킹 파문은 자세히 알려졌다. 아시다시피 불법 해킹 문제는 바다 건너에만 있지 않다. 오늘(7일) 경찰은 민주당 대표실 불법 도청 혐의로 KBS 장 아무개 기자의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더 심각한건 무엇일까? 단순히 국외, 국내의 차원만은 아니다. '뉴스 오브 더 월드(NoW)'는 타블로이드판 신문이고 KBS는 공영방송이다. '뉴스 오브 더 월드(NoW)'가 주로 유명인의 뒷얘기와 사진을 다루는 매체라면, KBS는 국가를 대표하는 기간 방송이다. '뉴스 오브 더 월드(NoW)'의 도청에 관심을 갖는 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KBS의 도청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단순히 관심을 갖는 정도가 아니라 영국 사회가 '뉴스 오브 더 월드(NoW)'에 가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젠 거세게 KBS를 압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민주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는 가장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로 존중된다. 이 존중이 사회적 의미를 지니기 위해선 언론은 다른 어떤 영역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과 윤리를 갖춰야 한다. 타블로이드판 신문의 취재 윤리 문제에 총리까지 나선 영국 사회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KBS의 도청 의혹에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KBS의 눈치를 볼 일도 아니다. KBS의 국회출입팀 기자가 압수수색까지 받은 상황이다. 명명백백하게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국회와 언론이 문제를 책임져야 할 때다.

그리고 김인규 사장의 직접 해명이 필요하다. KBS가 이 문제에 어느 정도 얼마나 연루된 것인지 스스로 밝혀야 할 때다. 사적 소유인 '뉴스 오브 더 월드(NoW)'는 폐간할 수 있지만 공영방송 KBS는 없앨 수 없다. 공영방송이 씻을 수 없는 불법과 반윤리적 취재 혐의에 휩싸인 것에 대해 김인규 사장은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고, 다른 언론들은 이제 그것에 대한 대답을 KBS에 요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정조사를 해야 할 것이고, 양심적 기업인이라면 불법 혐의가 있는 매체엔 광고를 할 수 없단 선언을 해야 할 것이다.

언론은 사회적 공기라고 한다. 공기가 오염되면 종국엔 모든 것이 죽게 된다. 도청은 철옹성 같던 머독의 미디어제국도 흔드는 중대한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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