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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높고 쓸쓸한'- 80년 광주의 여성시민군, 여성의 시선으로 조명한 5‧18[미디어비평] 너돌양의 세상전망대
권진경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19 10:56

[미디어스=권진경]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5‧18 여성 시민군들의 활약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외롭고 높고 쓸쓸한>(2017)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직전, 광주 지역 곳곳의 여성 운동 역사를 추적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영화에 따르면 70년대 말 광주지역에는 지역 여성 노동자들의 생존권 확보와 민주노조 결성을 위해 소그룹 활동을 하고 있던 여성노동자그룹(카톨릭노동청년회JOC, 들불야학)과 '송백회'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운동 그룹이 있었다. 그리고 각 단체에서 활동하던 여성 운동가들은 5‧18 민주항쟁 발발과 함께 계엄군에 맞서 시민군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여성(감독)의 시선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방위로 활동한 여성 시민군, 운동가들의 활약상에 주목한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그 자체만으로 적잖은 의의를 가지고 있다. 1995년 5·18민주화운동을 재평가하고자 하는 여러 움직임과 함께 광주 거리, 전남도청 등 최전선에서 싸우던 시민군들의 명예가 일부 회복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광주 항쟁에 일조했던 이름 없는 시민들, 특히 여성 시민군에 대한 이야기는 5.18에 대한 기록이 정교해지는 것과 다르게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다큐멘터리 영화 <외롭고 높고 쓸쓸한>(2017)

5‧18 이전부터 광주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운동가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국가의 운명이 달린 조국 근대화를 위해 부당한 노동환경도 묵묵히 견뎌야 한다고 믿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희생만 강요하는 독재정권 치하 사회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한 광주지역 여성 노동자들과 사회운동가들은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각종 활동을 이어간다. 유독 광주가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게 격렬히 저항할 수 있었던 것도 독재정권 반대와 노동 운동이 활발하던 당시 광주 분위기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5‧18 거리, 도청 투쟁에 가려진 광주 시민·노동·여성 운동 역사가 재조명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여전히 5.18을 폄하, 왜곡하는 움직임이 상당한 만큼,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거나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이야기가 온전히 복원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5.18에 대한 공식적인 역사가 무장 투쟁에 가담한 남성 시민군을 중심으로 유가족, 피해자들의 증언에 치우쳐있고,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저항 세력의 주체로 제대로 호명되지 않는 점을 고려해볼 때 여성 시민군 관점에서 5·18민주화운동을 재조명하는 일 또한 분명히 필요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외롭고 높고 쓸쓸한>(2017)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 출연한 광주 여성들은 70년대 말 지역 여성·노동 운동에 참여한 노동자와 운동가 외에도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가두방송을 진행하다가 고초를 치른 여성 시민군, 시민군들을 위한 마스크를 만들고 그들에게 도시락, 간식을 전달해주는 방식으로 투쟁에 가담한 이들까지 각계각층의 다양한 삶을 이어오고 있었다.

영화에 등장한 인물들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5월의 광주 여성들 모두 5·18민주화운동의 적극적인 저항 주체 세력이었지만, 그들을 기억하고 관심을 가지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는 5·18민주화운동 공식 기록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여성 저항 주체들의 목소리와 경험들만 묶어 여성의 관점에서 5‧18 광주 민주항쟁을 돌아보고자 한다.

특히 영화의 주요 화자로 등장했던 윤청자(JOC회원, 5‧18 당시 도청 취사조 담당)와 5‧18 당시 가두방송을 진행했던 차명숙,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마지막 항쟁의 가두방송을 이끌었던 박영순이 17일 방영한 SBS 스페셜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그녀의 이름은>에 인터뷰이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다큐멘터리 영화 <외롭고 높고 쓸쓸한>(2017)

5월 광주 여성들이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들 중에는 5‧18 당시 겪었던 고문 트라우마에서 회복되지 못한 생존자도 있고, 5‧18을 비난하고 폄훼하는 일부 사회 분위기로 인해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는 과거가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또 다른 광주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인터뷰에 기꺼이 참여했고, 자신들이 겪었던 80년 5월 광주의 상황과 광주 항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어졌던 활동을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더욱 1980년 5월을 함께했던 광주 여성 동지들은 80년 5월 광주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 사드배치 반대 평화활동 등 제2의, 제3의 광주의 비극을 막기 위한 다양한 연대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주역이지만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던 존재들. 하지만 5·18민주화운동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5월 광주 여성들. 그녀들은 분명 외롭고 쓸쓸해 보이면서도 높았다. 

​​​​​​여성의 시선에서 5‧18 여성 시민군들의 활약을 주체적으로 조명하고, 지금도 여성 운동가로 활동 중인 이들의 현재를 만날 수 있는 다큐 영화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제40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유튜브 공식 채널에서 만날 수 있다. 

* <2019 독립영화 쇼케이스>에 게재된 리뷰를 수정, 편집을 거쳐 재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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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경 칼럼니스트  knud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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