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곳곳에서 분노한 청년들이 독재, 불의, 부정, 부패, 비리, 실업에 항거하고 나섰다. 그 구심점에는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자리 잡고 있다. 금년 1월 튀니지의 가난한 시골에서 한 젊은 채소행상이 여경한테 손수레를 빼앗기고 스스로 몸을 불태워 분노를 말할 때 그것이 재스민 혁명의 시발이 되리라고 세상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분신이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를 타고 나비효과를 일으키며 아랍권에 민중항쟁을 촉발하리라고 말이다. 아랍권에는 알자지라 방송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다. 관제언론이 관급기사만 배급했기 때문이다. 이제 SNS가 진실을 말하자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던 아랍권이 분노하고 연대하고 있다.

분노의 물결이 국경을 넘고 넘어 유럽 전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 5월 스페인 마드리드 태양의 문 광장에는 ‘분노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삽시간에 5만 명으로 불어났다.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를 통해 연대한 청년들이었다. 청년실업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체제의 순응해왔던 그들이 체제의 모순을 인식하고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가 소통의 도구가 되어 형성된 공동체에는 지도부가 없고 비폭력적이다. 정치적 무관심(political apathy)에서 깨어난 그들은 자발적-개인적으로 광장에 나간다. 거기서 정치권력의 부패, 경제정책의 실패를 질타하며 직접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를 말한다. 광장에서는 거대담론만 말하지 않고 이웃으로 다가가 고통을 나누기도 한다. 지난 6월 마드리드에서는 그들이 70대 노인의 집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집값 폭락으로 대출금을 갚지 못해 답보로 잡힌 집이 차압될 처지에 놓이자 그들이 집달리를 막아섰던 것이다.

▲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분노하라'고 외친 소책자가 지금 세계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 20여 쪽의 소책자가 ‘분노한 사람들’을 이끄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 사조의 대맥과 함께 함은 틀림없다. 역설적으로 저자는 20대 청년이 아니라 94세의 노옹이다. 저자 스테판 에셀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저항하여 싸운 레지탕스였다. 1948년 유엔세계인권선언 작성에도 참여했다. 작년 10월 초판 6,000부가 출판되는 가 했더니 프랑스에서만 200만부 넘게 팔리면서 세계적 분노증후군을 일으키고 있다. 유럽을 넘어 미국, 일본, 브라질, 한국에 이어 중국에서도 곧 출판된다. 그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분노가 참여의 기회를 부여하며 무관심이야 말로 최악의 태도라는 것이다. 분노의 동기를 찾되 폭력을 거부하고 분노할 때 투사가 되어 역사에 합류하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한국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이미 2008년 5월 촛불로 나타났다. 어린 여중고생들이 촛불을 들고 나왔다. 먹고 잘 시간도 뺏는 교육정책에 대한 반발쯤으로 치부될 듯했다. 그 촛불이 삽시간에 미친 소 반대로 옮겨 붙어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더니 들불처럼 번지며 밤마다 분노를 태웠다. 수만, 수십만, 백만의 함성에도 권부는 귀를 틀어막았다. 돌아온 메아리는 물대포, 방패, 곤봉, 군홧발, 체포조란 유혈진압이었다. 촛불이 꺼진 다음에도 현장채증 사진을 갖고 끝까지 추적해 처벌했다. 촛불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 검찰, 법원이 결탁해 수천 명에게 수 백 만원씩 벌금을 때렸던 것이다. 촛불저항이 비폭력 시민불복종운동이었지만 말이다.

포털사이트 토론방에서 정보를 나누고 토론하며 촛불을 들었다. 그들은 자발적-개인적 참여자라 운동가요도 지도부도 없었다. 물론 중현(衆賢-smart mob)의 특성을 이해 못한 탓인지 지도부라고 자처한 인사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때 분노한 사람들은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네트워크를 형성한 공동체였다. 족벌신문-관제방송에 대한 불신이 인터넷 생중계, 디지털 기기로 무장한 1인 미디어를 불러내 거짓 없는 생생한 현장을 전달했다. 3년이 지나 지금은 이동성-휴대성이 훨씬 진화된 스마트폰이 등장했다, 그 스마트폰이 소통의 구심점이 되어 트위터, 뉴페이스가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집권세력은 아직도 모를 것이다.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의 천당이라는 분당에서 왜 패배했는지, 대학가가 왜 정치적 무관심에서 깨어나 반값 등록금을 들고 거리로 뛰어나왔는지,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의 반년 넘는 고공투쟁에 왜 박수를 보내며 희망버스를 타고 달려가는지 말이다. 족벌신문-관제방송이 아무리 사실을 왜곡-은폐하더라도 소셜 네트워크는 그 진실을 알고 있다. 트위터의 타임라인은 지금도 분노의 소리를 빠른 속도로 쏟아내며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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