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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상실의 시대, 언론이 곱씹어야 할 리영희의 '진실 추구'리영희 10주기 세미나…'실천적 지식인'의 당부는 여전히 유효하다
송창한 기자 | 승인 2020.05.09 12:16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한국 언론에 구조적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후배 기자들에게 무엇을 당부하시겠습니까?"

"첫째는 담당 분야에서 이름있는 전문가가 갖고 있는 지식의 최소한 절반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취재를 한다고 하지만 아무 내용도 본질도 모르고 덤벙덤벙 지나가 버린다고. (중략) 둘째는, 올바른 세계관을 가져야 해요. 광적인 반공주의, 군사독재, 힘의 숭배가 위세를 떨친 박정희 독재시대에서는 평화롭고 미래지향적인 제도와 사상을 갖춰야 했습니다. (중략) 셋째는 인간적 관계인데, 기자는 성실해야 합니다. 하루이틀이야 어물쩍 넘어갈 수 있지만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적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성실하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지요. 마지막으로 가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삶을 꾸려나갈 각오를 해야 합니다. 가난이 좋다는 뜻이 아니라, 기자가 검소하지 않으면 돈의 유혹, 권력의 유혹에 이용당하기 때문이지요." (한겨레 창간 20돌 '리영희 선생에게 듣는 한겨레와 오늘'. 2008. 05. 15)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는 후배 기자들에게 전문성과 올바른 세계관, 성실함과 권력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 위한 검소함을 당부했다. 오늘날 언론에 대한 국민 불신은 어느 때보다 높다. 기자들은 '기레기'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세계는 '가짜뉴스' 홍수 속 '탈진실의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그가 작고한 지 10년,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진실이다. 오로지 그것이다"라는 그의 외침과 당부는 여전히 유효하다. 

리영희 (사진=리영희 재단)

8일 한국언론정보학회, 리영희재단 주최로 서울 중구 뉴스타파 함께센터에서는 <리영희 선생 10주기 세미나 : 진실 상실 시대의 진실찾기>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언론의 위기와 탈진실의 시대에 기자 리영희를 다시 생각한다'는 주제로 박영흠 협성대 교수의 발제가 이뤄졌다.

박 교수는 언론의 위기와 탈진실의 시대가 전통적 언론과 탈언론 사이의 대립과 경쟁상황에서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신문·방송과 같은 전통적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 사회관계망서비스·팟캐스트·유튜브 등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탈언론에 대한 시민의 의존을 촉진시켰지만, 탈언론에서는 지나친 정파성과 음모론, 허위정보 생산 등이 나타나면서 언론 위기와 탈진실의 시대가 도래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박 교수는 "탈언론이라고 하는 것이 전통적 언론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적 공론장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이라면서 '실천적 지식인', 언론인 리영희 선생의 활동과 사상을 바탕으로 오늘날 언론에 대한 시사점을 짚었다. 

박 교수는 크게 '조직의 통제와 낡은 관행에서의 탈피' '비판의 재정립' '기자의 전문성' 등을 언론과 기자들이 곱씹어야 할 '리영희 정신'으로 꼽았다. 

먼저 박 교수는 "사주나 간부들의 지시, 또는 기자실에서 이뤄지는 관행들을 문제의식 없이 따르는 습성을 벗어 던지라는 것"이라며 '객관주의'를 벗어던질 것을 제언했다. 박 교수는 "선생께서 생전에 진실을 추구하는 글쓰기를 강조하시면서 파편화된 사실에 매몰된 미국식 객관주의 기사작성 관행을 비판하신 적이 있다"며 "기자는 도덕적 가치관과 정치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객관주의가 이를 무장해제 시킨다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기자들이 자신의 지식과 양심의 부족함을 객관주의 전략 속에 감추고 예민한 문제에 대해서는 기권하면서 그것이 전문적인 저널리즘인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비판' 개념의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조언은 리영희 선생 비판의 목적이었던 '우상타파'와 오늘날 언론의 비판목적이 동일하느냐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박교수는 "선생께서는 평생에 걸쳐 독재정권, 냉전 이데올로기, 반공주의, 미국숭배, 맹목적 민족주의 등 여러 우상들을 비판하는 데 집중하셨다"면서 "오늘날의 언론도 비판을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진실추구와 우상타파를 위한 비판인가"라고 반문했다. 

박 교수는 "오늘날 관습화된 비판은 도구화된 비판이다. 별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기능적 수단으로서의 비판이 악용되고 있다"며 파편화된 사실을 기반으로 한 권력 비판에 뉴스가치를 부여하고, 언론사의 이해관계를 위한 정파주의적 비판 관행을 지적했다. 

기자의 전문성과 관련해서 박 교수는 기사가 자료가 아닌 취재원의 입에서 나오는 데 주목했다. 박 교수는 "선생의 기자시절 특종보도 대부분은 치열한 자료분석과 학습의 결과물이었다. 오늘날 기자들은 선생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며  "열심히 취재하는 기자들은 많지만 공부하는 기자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기사가 정보가 문서화 된 글보다는 취재원의 입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특종도 대부분 자료가 아닌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기자들에게 중요한 건 인적 네트워크이고, 자신에게만 말을 해 줄 취재원을 많이 보유한 기자가 능력 있는 기자로 회사에서 대우 받는다"며 "이제는 공부하는 기자, 자료를 분석할 줄 아는 기자가 일 잘하는 기자가 되어야 '지식인으로서의 기자'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연장선상에서 탈언론 역시 같은 문제를 동일하게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실증적 저널리즘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진실추구', '우상타파'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탈언론은 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진실을 총체적으로 간파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공통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진영논리에 따라 진실을 상대화함으로써 진실에 대한 열망과 노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면서 "전통적 언론이 낡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반면 탈언론은 낡은 우상을 부수는 대신 새로운 '언론'을 만드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시사점에 대해 최근 뉴스타파 PD로 복귀한 최승호 전 MBC 사장은 리영희 선생의 탐구정신과 시대정신을 기렸다. 최 전 사장은 "선생은 자유인, 언론인으로서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상을 스스로 정확하게 판단하고 기사화하려는 의식이 투철했던 분"이라며 "언론인이자 세계인으로서 시대의 정신을 포착하고 그 시대정신을 독자들에게 알려 현실을 바꾸려는 강력한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의 전문성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또 최 전 사장은 "선생의 전문성은 위험한 시대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과 기사를 지켜내기 위한 정확함, 모든 검증을 거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팩트를 가지고 기사를 써야한다는 의식에서 나왔다"면서 "오늘날 언론인들이 왜 기자가 됐고 PD가 됐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필모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사진=KBS)

한편, 이날 토론에서 KBS 부사장 출신인 정필모 더불어시민당 국회의원 당선인은 21대 국회에서 KBS 지배구조에 시청자 의견을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 당선인은 KBS 이사회 구성, 사장 선출 과정에 지역대표, 시민단체 직능별 대표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겠다고 했다.

정 당선인의 이 같은 발언은 언론개혁이 언론사의 자구노력만으로는 요원하다는 진단과 이에 대한 개선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그는 언론사 내 고착화 된 조직문화와 기자들의 관행이 언론불신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진단, 언론소비자 운동 등을 언급하며 "바깥에서 충격을 주지 않으면 절대 안 바뀐다"고 말했다.

정 당선인은 "경영진이 바뀌고 보도국장이 바뀌어도 안 바뀌는 이유는 오랜 관행 문제"라며 "기자들이 가지고 있는 특권의식, 우월주의, 자기조직보호본능, 조직이기주의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은 쉽게 탈피가 어려워 결국 내부에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 당선인은 "KBS 개혁이 결코 지배구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부조직문화를 바꿔 역량을 키우는 일"이라면서 "특히 KBS는 시청자가 주인이다. 지배구조가 바뀔 때조차도 시청자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을 시사했다. 

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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